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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원칙을 죽일 수도 있다

[머니위크]청계광장

청계광장 머니위크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입력 : 2011.06.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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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때 저명한 우리 기업인의 명함이 국내외 기자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그의 명함에 적힌 영문 이름 때문이었다. 영문 중간이름으로 그는 '드러커'(Drucker)라는 이름을 썼다. 우리가 아는 경영대가(management guru) 피터 드러커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 기업인은 그 대가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영문명까지도 그의 이름에서 차용할 정도였다. 국내 기자들 사이에서 그 일은 우리 기업인이 학구열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하지만 외신 기자들은 그 일을 두고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유를 캐물으면 대답이 한결 같았다. 스스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온 한국 기업인들이 개념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벽안의 경영컨설턴트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일을 한국기업가들이 지나치게 경영사조와 기법에 민감하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실전에서 뛰는 기업가들이 지나치게 개념적인 작업을 좋아하거나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실제로 국내 경영자들은 새로운 경영사조와 기법에 사족을 못 쓴다. 신(新)사조와 기법이 하나 수입돼 알려지면 그것은 기업가와 직장인 사이에서 일종의 열풍으로 변한다. 물론 오너나 최고경영자(CEO)가 그것을 알리고 확산하는 주역이다. 임직원은 따라서 공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정작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몇몇 기업만이 채택한 경영사조와 기법을 우리는 거의 모든 기업이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1980년대의 목표관리와 품질관리, 1990년대의 적기생산방식(JIT·Just-In-Time), 2000년대의 6시그마 운동이나 블루오션전략이 대표적이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업계의 이런 풍토를 두고 ‘패션경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영사조와 기법이 일종의 유행이 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최근 자동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3~4개의 완성차업체가 모두 생산을 중단하거나 생산에 차질을 빚을 판이다. 이유는 한 중소 부품업체 때문이다. 80조원이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 자동차산업이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낸, 매출액 2300억원의 한 중소기업에 볼모로 잡혀있다. 유성기업이라는 이 기업은 자동차부품 가운데서도 엔진 필수 부품인 피스톤링을 생산한다.

그런데 이 업체에서 극심한 노사분쟁이 벌어져 부품 생산이 중단됐다. 그 여파로 우리 자동차산업 전반이 일시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완성차업체들은 생산 차질로 인한 피해액을 읊조리며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완성차업체가 왜 이 부품업체에 목을 매달게 됐을까도 한번 따져볼 일이다.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자동차업체들이 모방한 JIT와 관계가 깊다. JIT는 일본 도요타사가 집중적으로 개발해온 생산관리 방식이다. 그래서 ‘도요타 방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존 자동차공장은 공정을 계속 돌리기 위해서 재고를 사들여 쌓아뒀다. 반면 도요타사는 필요한 만큼 부품업체로부터 적시에 공급받는 방식을 개발해왔다.

그렇게 되면 재고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수요에 제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생산 공정을 표준화하거나 불량률을 낮춰주기도 했다. 도요타사는 이 방식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고, 90년대 이후 세계 자동차산업을 휩쓸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기업들이 이 방식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우리 자동차기업들의 특정 부품업체 쏠림 현상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최근 국내 최대 공기업에서 벌어지는 내홍 역시 CEO의 지나친 신경영기법에 대한 집착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흥미로운 것은 도요타 방식으로 인한 폐해가 이 기법의 원산지인 일본에서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의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근 지역 부품업체들의 공급 부족 사태로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엄청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도요타부터 나서서 재고를 쌓아두는 방식으로 도요타 방식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패션경영의 부작용은 금융산업에서도 앞으로 속출할 전망이다. 경제 관료와 금융계 인사들의 메가뱅크(mega-bank)론에 대한 집념과 사모펀드·헤지펀드에 대한 집착의 결과, 그들은 계속해서 나라 안팎에서 ‘거대한 딜’(big deal)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도 일종의 유행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딜들이 실패로 판명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정작 그간 잘해왔던 우리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실패로 끝난 선진국의 사례를 유행처럼 받아들인 탓이다. 그 과정을 통해 경쟁력이라는 원칙을 잊어버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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