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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이양에 최소 30년··혼란 장기화 우려

[금융아나키시대]美신용등급 하향 후 패권 위축..유로·엔·위안 등 다원체제 가능성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입력 : 2011.08.09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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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0년~1914년 전세계 교역량의 60%가 영국 파운드화로 결제됐다. 1913년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48%가 파운드화 채권이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영국 파운드화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 무기 수입을 위해 자국 내에 비축해뒀던 금을 상당부분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달러화가 새로운 기축통화로 공식 인정을 받은 것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고정환율 체제)의 출범 때부터다. 파운드화가 달러화로 기축통화 권력을 넘겨주기까지 30년이 걸린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영국이 사실상의 세계 경제패권을 잃은 시점을 1890년으로 본다. 이 경우에는 권력 이양에 무려 54년이 걸린 셈이다.

미국계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5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것은 미국의 달러 패권이 저물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달러화와 함께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이 기축통화의 지위를 나눠갖는 '다원체제'로의 이양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가 당분간은 유지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근거는 크게 3가지다.

달러 패권 이양에 최소 30년··혼란 장기화 우려

◆美 국채 발행규모 9조달러= 첫째 유동성이다. 전세계 어디에도 미 국채를 대신할 정도로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이 없다. 7월말 현재 미 국채 발행잔액은 9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46%를 해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국채는 1조9000억달러에 불과하다. 일본 국채의 경우 발행 규모는 미 국채에 필적하지만 대부분 자국내 투자자들이 갖고 있어 해외에서 유통되는 물량이 거의 없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고루 외환보유고에 채워넣으려면 미 국채 정도의 발행 규모는 돼야 하는데, 당장은 이를 대체할 자산이 없는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금 미 국채만큼 구하기 쉬운 자산이 어디있느냐"며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입할 자산의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달러화 만큼 전세계에 풍부하게 풀려있는 화폐도 없다. 기축통화라면 전세계 교역 결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해외에 그 화폐가 충분히 풀려서 돌아다녀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경상수지가 적자라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상수지가 적자라야 해외로 돈이 넉넉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세계 최대 경상수지 흑자국이다. 당분간은 엔화와 위안화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넘겨받기 어려운 이유다.

◆유럽·일본·중국 믿을 수 있나?= 둘째 정치적·지적 리더십이다. 기축통화는 정치적, 지적 리더십 측면에서 국제적인 신뢰를 받아야 한다. 비록 미국이 최근 연방 부채한도 인상 협상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유럽 일본 중국도 그다지 나을 것은 없다.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그리스 등에 대한 구제금융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일본도 오랜 정치적 리더십 부재에 시달려왔다. 변동환율제를 운영한 경험이 없는 중국은 지적인 리더십이 부족한 상태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경제학 석학들로부터 나오는 지적 리더십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며 "금융 분야에서 지금의 미국 정도의 지적 리더십을 가진 나라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美의 최강 하드 파워(Hard Power)= 마지막으로 군사력이다. 기축통화의 안정성은 해당 국가의 군사력을 근간으로 한다. 헤게모니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나라의 국채로 외환보유고를 채우고 싶은 나라는 없다. 원유의 주요 결제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이같은 논의를 중단한 것은 기축통화국의 군사력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은 "군사력 뿐 아니라 인구구조(잠재성장률), 과학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을 대신할 나라가 출현하기는 어렵다"며 "과거 역사적 사례들을 봐도 기축통화가 바뀌기까지는 3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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