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머니투데이

"군인의 氣와 기업인의 魂을 가진 박태준"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군인의 氣와 기업인의 魂을 가진 박태준"

머니투데이
  • 유현정 기자
  • VIEW 9,076
  • 2011.12.13 17:57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image
"군인의 기(氣)와 기업인의 혼(魂)을 가진 사람이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 대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남긴 말이다. 불굴의 집념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철강업계의 전설인 그 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한국의 근대 정치경제사를 파란만장한 한 인생에 오롯이 담은 그의 질곡 많은 인생은 '포스코'라는 그가 남긴 작품에 이미 녹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전세계적으로도 탄생되기 힘들만큼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파란만장한 인생= 고 박 명예회장은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시 기장군)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제철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44년 17세 때. 일본 육사 입교 권유를 거부하고 와세다대학 공대 진학을 결심, 일본의 소결로 공장에서 노력봉사 대원으로 배치되면서부터다.

1948년 귀국 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6기 생도로 선발됐다. 그곳에서 나중에 그의 인생 전체를 바꿀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제2중대장으로서 탄도학을 강의했으며 박 명예회장의 그의 수업을 듣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5.16 군사쿠데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 등을 맡았다. 이후 1964년 12월부터 대한중석 사장을 맡아 적자덩어리의 회사를 1년만에 흑자로 돌려세우는 기업가의 기질을 발휘한다. 1967년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철공장을 세우라"는 특명을 받고 포항제철 건설에 나선다.

그는 대일청구권자금 7370만달러와 일본 은행차관 5000만달러를 합한 1억2370만 달러를 들여와 포항제철 건설의 길을 뚫었다. 1969년 8월 제3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사업을 지원키로 함으로써 포항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됐다.

종합제철건설 자금조달을 위한 한일 기본협약이 체결된 1969년 이후 포항제철 건설은 급물살을 탄다. 1970년 포항1기 건설착공 및 열연공장, 중후판공장 착공 등이 진행된다. 1973년에 제1고로 첫 출선이 성공하고 일관·종합제철소 공장이 완공(연산 조강 103만톤)된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며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초대회장에 취임하고 제 2제철소를 광양에 세울 계획을 수립한다. 포항공과대학교와 포항제철 고등학교를 세우는 등 당시 작은 어촌마을 포항을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에게도 수난이 찾아온다. 자민련 대통령 후보로 정치생활을 한 그는 3당합당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1993년 해외유랑을 하며 도쿄에서 13평 아파트을 얻어 생활하기도 한다. 당시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뤄지면서 본인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적 비자금 조사도 이뤄졌다.

1997년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포항 북구 보궐선거에 당선된다. 이후 김영삼 정권의 경제적 실정에 대해 비판하고 자민련 총재 등을 역임한다. 73세인 2000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한다. 이 때는 포항제철의 민영화가 완료돼 국민기업인 포스코로 거듭난 해이기도 하다.

2001년 뉴욕 코넬대학병원에서 폐 밑 물혹 제거수술을 받은 후 중국발전연구기금회 고문으로 초빙되기도 하는 등 활동을 이어오다 2005년에는 포스코청암재단 확장 설립했다.

◆한국의 철강왕= '철강왕'이라 불린 미국의 앤드류 카네기는 생전에 조강 1000만톤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합쳐 21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그가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신화창조자(Miracle-Maker)라는 칭송을 받는 이유다.

그는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라는 좌우명 아래 포스코 역사 40년 중 26년을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철강국가의 반열에 끌어올렸다. 외국 5개 유수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우리나라에서 훈장 7개, 외국에서 훈장 10개를 받았다. 특히 1987년에는 철강의 노벨상인 베세머 금상을, 1992년에는 세계적 철강상인 윌리코프상을 수상했다.

1978년 당시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이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는 반문을 들어야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중국에서 박태준 연구 열풍이 불기도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 설비가동 첫해인 1973년 매출액 416억원에 당기순이익 46억원을 기록한 뒤 1992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매출액을 149배(6조1821억원), 순이익을 40배(1852억원) 이상으로 늘렸다"며 "이것은 포스코가 설비가동 이후 현재까지 단 한번의 적자 없이 흑자행진을 지속하는 기틀이 됐다"고 말했다.

박 명예회장이 이룬 신화는 그의 강력한 추진력에서 왔다.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도 뜰 수 없는 포항제철소 공사현장에서 그는 임직원들에게 "선조들의 피와 땀(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할 경우는 '우향우'해서 동해 바다에 몸을 던지자"고 외친 일화는 유명하다.

1970년 가장 먼저 착공한 열연공장 건설이 지연됐을 때는 '열연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행정·사무직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을 공사현장에 투입시켰다. 이를 통해 외국의 다른 회사들이 통상 4~5년 만에 완공하는 제철소를 3년 만에 완공할 수 있었다. 1977년 포항 3기발전송풍설비 구조물에서 부실공사가 발견되자 80% 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도 "부실공사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며 즉각 폭파를 지시한 적도 있다.

◆"나는 교육혁명가다"= 고 박 명예회장은 올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철의 사나이가 내 별명이지만 나 스스로는 교육혁명가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텍을 만들 때 재미 물리학자 김호길 박사를 초대총장으로 모시기 위해 그에게 '당신 같은 뛰어난 학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혼자 잘되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 나라를 생각하고 후배를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 한국에 가서 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셔온 뒤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포항제철소 설립 초기 철강 기술을 배워오기 위해 일본의 철강서적을 모아다가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다 찢고 번역을 한 뒤 관계자들에게 나눠주며 철강 지식을 쌓도록 독려했다. 힘들게 기술을 배워온 그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를, 이듬해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했다. 포항공대 졸업생들에게는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를 본 따서 만든 박태준의 창립 신화가 신입생들에게 전설로 내려온다.

1971년에는 제철장학회를 설립해 임직원 자녀들의 교육 지원을 비롯해 지역사회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2개 학교를 세워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사학으로 육성했다. 제철장학회는 최근 포스코청암재단으로 확대 재편돼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복지장학문화 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의 꿀팁

  • 띠운세
  • 별자리운세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메디슈머 배너_비만당뇨클리닉 (1/25~)
남기자의체헐리즘 (1/15~)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