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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바지를 입고 하늘나라로 가겠다

[웰빙에세이] 미리 쓰는 웰다잉 유서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장 |입력 : 2011.12.15 12:10|조회 : 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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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바지를 입고 하늘나라로 가겠다. 위에는 하얀 티셔츠가 좋겠다. 기왕이면 내가 즐겨 쓰던 모자를 씌우고, 즐겨 신던 운동화도 신켜 달라. 평생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수의를 입히지 말라. 서걱대는 삼베옷을 입고 엉거주춤하게 가지 않겠다.

나를 어두운 땅에 묻지 말라. 벌레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다. 내 몸은 불로 태워 달라.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달라. 그 재를 내가 심은 느티나무 아래 뿌리고, 내가 사랑한 개울에도 뿌려 달라. 그리고 남은 것은 모두 바람에 날려 달라. 조금도 남기지 말라.

내 몸에서 쓸 만한 것은 다 재활용해 달라. 조심조심 아껴 쓰다가 가겠지만 낡은 것들이 쓸 만할지 모르겠다. 내 몸에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관이 필요하다면 가장 싼 것으로 해 달라.

나는 내 방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 돌발적인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나를 병원에 두지 말라. 병원은 삶을 예우하는 곳이지 죽음을 예우하는 곳이 아니다. 나는 첨단기계가 없는 곳에서 죽겠다.

나는 억지로 삶을 늘리지 않을 것이다. 주사바늘을 줄줄이 꽂고 꼼짝없이 누워서 약봉지에 싸인 채 죽지 않겠다. 병에 걸렸다면 그 상태를 숨김없이 알려 달라. 나는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 속에 죽지 않겠다.

나는 가능하다면 의식이 깨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겠다. 고통이 심하면 진통을 해 달라. 진통 여부를 놓고 의견이 다르면 나에게 진통제를 달라. 내 스스로 약을 조절하겠다. 의식이 밝지 않으면 그중 밝았을 때의 판단에 따라 달라. 이미 의식이 없다면 무의미한 생명유지 조치와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내 뜻을 존중해 판단해 달라. 산 자를 위해 가는 자를 붙잡지 말아 달라.

역시 가능하다면 나는 환자로 죽지 않겠다. 그냥 늙어서 죽겠다. 늙어서 죽는데 이런저런 병명은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음을 증명하는데 반드시 병 이름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때가 되어서 돌아갔다고 해 달라. 죽음만큼은 의사가 아니라 자연의 안내를 받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음식을 물리면 그 결정을 존중해 달라.

장례도 집에서 했으면 좋겠다. 가족과 아주 친한 친지들만 왔으면 좋겠다. 그 숫자가 많아야 20~30명 이내면 좋겠다. 나는 신을 믿는다.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믿는다. 그러나 특정 종교의 의식에 따라 장례를 하지 않기 바란다. 집에서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불편하다면 편 한대로 하라. 그러나 웬만하면 내 뜻을 따라 달라.

내가 가는 길이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우면 내가 즐겨듣던 음악을 틀어 달라. 나는 미지의 차원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아니 설레는 마음도, 한 가닥 미련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갈 것이다.

내 물건들은 한 번 더 솎아서 태우고 버렸으면 좋겠다. 남 줄 수 없는 잡동사니는 남기지 말고 다 태워 달라. 나는 맑은 정신으로 이 당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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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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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seobee_  | 2011.12.15 13:58

정말 마음에 들게 잘 쓰여진 유서입니다. 마지막 부분 집에서 상을 치러달라는 것만 빼면 저에게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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