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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기부 박찬호, 야구 갑부의 파격적 귀향

[장윤호의 체인지업]프로 19년차 연봉 0원... 6억 통큰기부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1.12.24 10:30|조회 : 4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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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했다 ⓒ 임성균 기자
↑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했다 ⓒ 임성균 기자
◇ 박찬호 프로 19년차에 연봉 0원 선수된다

박찬호(38)가 또 한번 야구 팬들, 나아가 국민들까지 놀라게 했다. 그가 1994년 한국인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메이저리거의 높은 장벽을 처음으로 넘어섰고, 텍사스와 5년 총액 6,500만달러 초대형 빅딜을 했고,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통산 최다승인 124승을 달성했다는 등의 이유가 아니다.

박찬호는 고향 공주의 연고지팀인 한화로 금의환향하면서 보장 연봉 4억원, 인센티브 2억원까지 최대 6억원에 이르는 자신의 2012년 연봉을 모두 유소년과 아마야구 발전 기금으로 내놓고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만 해도 덥수룩하던 수염을 말끔히 깎은 모습으로 20일 공식 입단식을 했다.

총액 6억원의 몸 값도 구단과의 협상을 통해 정한 것이 아니다. 13일 열린 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에서 박찬호 특별법이 통과된 후 박찬호는 처음으로 19일 한화 노재덕 단장과 이상군 운영팀장을 만나 연봉을 ‘백지 위임’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가 ‘박찬호는 연봉을 백지 위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을 썼다가 일부 팬들로부터 호된 공격을 당한 바 있는데 정작 본인이 그대로 해버렸다.

연봉 2,400만원에 대한 오해가 있어 설명한다. 박찬호는 연봉 2,400만원도 받지 않는다. 다만 한국야구위원회에 선수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규정상 프로야구 최저 연봉 2,400만원은 받는 것으로 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연봉은 2,400만원으로 기록된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박찬호의 연봉은 보장된 4억원에 인센티브 2억까지 최대 6억원인 것이 맞다. 다만 그것을 모두 야구발전 기금으로 내놓는 것이다. 기부자는 박찬호 개인이 아니라 한화가 구단 차원에서 하기로 하고 사용처는 한화 구단이 박찬호와 협의한다. 그러니까 한화 구단은 박찬호에게 연봉 자체를 지급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액수를 구단에서 적립해 가지고 있는 방식이다.

↑ 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해 자신의 등번호 61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 임성균 기자<br />
↑ 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해 자신의 등번호 61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 임성균 기자

↑ 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해 한대화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있다. ⓒ 임성균 기자
↑ 박찬호(38)가 지난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해 한대화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있다. ⓒ 임성균 기자


◇ 백지 위임은 프로와 모순된다

백지위임은 사실 ‘프로’에 어울리는 방식은 아니다. 필자는 그래서 ‘프로’인 박찬호가 백지위임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박찬호가 구단과 정상적인 연봉 협상을 벌여 상식적인 선에서 합의를 이루고 그 후 ‘기부’ 등을 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만도 10년 가까이 옆에서 현장 밀착 취재를 한 필자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박찬호를 ‘프로’라고 인정하는 일화가 있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가 돈을 벌기 시작한 시기는 1998년부터이다. 1997년 연봉 27만달러를 받은 그는 시즌 후 2년간 총액 300만 달러 계약을 했다.

당시 그의 에이전트는 스티브 김이었다. 스티브 김은 1998시즌을 앞두고 플로리다 베로비티 다저타운에서 열린 스프링 캠프 기간 중 치밀한 작전을 펼쳐 2년간 300만 달러 계약을 이끌어냈다.

박찬호는 그 때 다저타운 내에서 숙소생활을 했는데 훈련 후 방으로 돌아온 그에게 스티브 김이 ‘2년 간 300만달러에 계약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박찬호는 대뜸 ‘왜 300만 달러이냐? 한국의 신문에는 500만 달러까지 가능하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아버님이 전화하셨다.’고 물었다.

스티브 김이 계약 배경과 풀타임 메이저리그 3년차가 2년 다년계약을 한 것, 300만달러의 가치, 다른 선수들의 계약 사례 등을 설명해주자 납득을 한 후 ‘형 고생했어’라고 악수를 건넸다.

↑박찬호가 LA 다저스 시절이었던 1999년6월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MBC 허구연 해설위원(현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 시절이었던 1999년6월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MBC 허구연 해설위원(현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 1998년 수재의연금 1억원 통큰 기부

박찬호가 야구팬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을 처음으로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은 1998년 8월14일 벌어졌다. 당시 한국에 최악의 수재가 났는데 박찬호는 이날 느닷없이 LA 총영사관에 1억원을 의연금으로 기부했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한 것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일간스포츠 미주 특파원으로 박찬호를 취재하며 LA의 코리아 타운에 있는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사무실에 매일 출근했다. 그런데 박찬호가 수재의연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는 했으나 얼마를 낼 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본인과 에이전트는 웃기만 할 뿐 극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성질 급한 필자는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작심하고 ‘1억원을 낸다’라고 일간스포츠에 기사를 송고했다. 기사 나간다고 해도 스티브 김은 맞다 틀리다를 얘기해주지 않았다.

기자로서 사실 확인을 못하고 써서 부끄러웠고 틀리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는데 마침 다음 날 박찬호가 ‘원래는 10만 달러를 내려고 했는데 1억원이라고 기사를 쓰셔서 그대로 했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다. 1998년 연봉이 70만달러(1,000원으로 단순 환산해도 7억원)에 달했다고 해도 25세의 청년이 1억원을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시즌 후 롯데 포수였던 강성우가 “돈이 있으니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서 “돈이 있어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대답을 해줬던 적이 있다.

이후 박찬호는 2001년 로스앤젤레스에 박찬호 드림 재단(Park Dream Foundation)을 설립했고 약 73만달러를 출연해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박찬호가 1998년 수재의연금 기부 이후 조국에서는 뚜렷한 사회 환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야구에 몰두하고 텍사스로의 이적, 부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 시기였다.

25세의 나이에 1억원을 내놓았던 청년 박찬호가 38세의 나이에 자신이 내년 한국프로야구에서 처음으로 받게 되는 연봉 최대 6억원 전액을 아마야구 발전기금으로 기부하면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1993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극비리에 LA로 떠나 거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 쥐고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마침내 돌아온 박찬호가 앞으로 더 많은 기부와 선행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솔선수범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장윤호는...
서울 중앙고등학교 시절 고교야구의 전성기를 구경했으나 그 때만 해도 인생의 절반을 야구와 함께 할 줄 몰랐다. 1987년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롯데와 태평양 취재를 시작으로 야구와의 동거가 직업이자 일상이 됐다. 한국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취재를 거쳐 1997~2002년까지 6년 동안 미국특파원으로 박찬호의 활약과 메이저리그를 현장에서 취재하고 귀국한 후 일간스포츠 체육부장, 야구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3년 MBC ESPN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을 했고 2006년 봄 다시 미국으로 떠나 3년 동안 미 프로스포츠를 심층 취재하고 2009년 돌아왔다. 현재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스타뉴스(Starnews)' 대표,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야구발전연구원이사,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06년 3월 '야구의 기술과 훈련(BASEBALL Skills & Drills)'을 번역 정리해 한국야구 100주년 특별 기획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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