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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 장군, 정병주 장군, 김오랑 소령, 백영옥여사...그리고 이병호 여사

[김재동의 틱, 택, 톡]12.12사태 희생자들의 30년 묵은 부음... 우린 정녕 치유되고 있는가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2.01.18 18:21|조회 : 2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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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자 소인이다.
우리는 지금 30년도 훨씬 전에 띄운 부고장을 이제야 받아들고 있다.

17일 오전 9시15분께 고(故)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의 부인 이병호(78)여사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2010년 7월 장 장군이 세상을 뜬지 1년 6개월여만이다.
이제 장장군의 가족이라곤 딸 장현리(50)씨와 사위 박용찬(51)씨만이 남았다.

경찰은 이여사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 투신자살로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여사를 죽음으로 내몬 우울증은 이미 1979년부터 뿌리를 내려 이여사를 갉아먹고 있었다.

12.12 군사쿠테타.
정권을 잡은 신군부측은 진압군을 이끌던 장태완 장군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패장으로서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고초를 당한 장태완 장군은 결국 강제전역 당했다.

장태완 장군이 끌려가던 모습이 TV를 탔나보다. 그 부친은 그 모습을 보곤 곡기를 끊고 막걸리만으로 울화를 죽이다 생을 달리했다. 1980년 4월이었다.
그 슬픔이 채 가시기전 서울대 자연계를 수석 입학했던 자랑스런 아들 성호(당시 20)씨가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경북 왜관 낙동강 근처의 산기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982년 일이었다.
당시 경찰은 자살로 결론내렸다.

장태완 장군 내외의 부고는 이미 그때 씌여졌을 것이다.

또 다른 부고에 대한 기억이 있다.

1989년 3월 4일 토요일였다.
입사 갓 3개월 차인 견습기자는 낡은 녹음기를 거푸거푸 리와인드 해가며 라디오 뉴스를 모니터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신문은 일요일자를 만들지 않았다. 스포츠신문만이 토요근무를 했을 것이다.
초판 마감이 2시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뉴스는 정오뉴스였을 것이고...
속보를 따라잡을 재간없는 스포츠 신문의 사회면은 그렇게 라디오뉴스를 모니터해 만들던 시절이었다.

낡은 라디오, 낡은 녹음기 특유의 노이즈 속에서 뉴스를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흐릿했다.
"12.12 당시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병규(?)씨가..."
다시.
"12.12 당시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병규(?)씨가..."

그렇게 초판이 나갔다. 된통 깨졌다.
"견습 놈한테 시켜놨더니 정병주를 몰라서 정병규라 하지 않나..."
'저 12.12때 중3였거든요'란 가소로운 항변은 결코 목울대를 넘지 않았다.

데스크에 걷어차이다시피 달려간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다),

정장군이 목을 맸다는 나무는 너무 가늘었다. 올가미를 건 가지 역시 높지 않았다. 시신만 서둘러 치운 탓인지 소주병은 남아있었다.(3개로 확인됐다.)

후속기사를 쓰며 마주친 사연.

그는 특전사령관였다.
12월13일 새벽 그를 쏜 것은 직계 부하인 박종규 중령의 3공수 병력이었다. 그는 부하가 쏜 총에 왼팔 관통상을 당했다. 이후 두차례 수술을 받아야했고 강제전역 당했으며 1988년 국회청문회에선 그 비열한 배신의 순간을 증언하려 애썼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정원을 거니는 동안 이름 없는 야산에서 죽어갔다.

그날 새벽 총알은 그의 왼팔을 관통했지만 배신의 비수는 여지없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권총 한 자루로 사령관을 지키려다 죽은 군인도 있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육사 25기)이다. 김오랑 소령 역시 육사 1기 선배이자 관사 이웃인 박중령의 명령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나이 35세.

그 부인 백영옥씨는 남편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이듬해인 80년 시신경 마비증세로 실명했다. 그도 결국 1991년 6월 경찰이 자살로 판정한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남편을 죽인 총성을 관사에서 듣던 그날 그 새벽, 이미 그녀의 인생도 끝장났음에 틀림없다.

몇 년 전 동작동 국립묘지 내의 한 절을 방문했다가 장군묘역에서 정병주장군의 묘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옛 생각에 가볍게 묵념하고 묘를 돌아봤다.
앞면에 '육군소장 정병주의 묘'라 적혀있고 뒷면엔 '一九八九년 三월 四일 경기도 고양군 산중에서 별세'라고만 적혀있었다. (감회가 남달라 자료를 찾아봤다.)
묘비기단의 까만 묘지석엔 단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가 느낀 유구무언의 참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병호 여사의 부음.
80노인이다. 신이 부를 날을 기다릴 만도 한 나이다.
하지만 몸을 던졌다. 30년 전 어느 날 이미 아들과 함께 신의 품에 안겼기 때문인 듯 싶다.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픈 이들이 있다.
무덤덤해진 우리들도 있다.

그래서 우린 정녕 치유되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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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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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홍석범  | 2012.01.19 12:09

어제 이털남에서 스토리를 알게 됬는데 다시 읽어 보니 마음이 진짜.... 그 29만원짜리 인생은 지금 토실토실 배부르게 잘 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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