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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첫경험 ‘남자 2인1실’의 의미

[장윤호의 체인지업]한화 美전훈서 공주고 18년후배 안승민과 한방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2.01.21 10:15|조회 : 2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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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가 재기에 성공한 2008시즌,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확정 지은 뒤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축하파티에서 샴페인에 흠뻑 젖은 채 기뻐하고 있다.
↑ 박찬호가 재기에 성공한 2008시즌,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확정 지은 뒤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축하파티에서 샴페인에 흠뻑 젖은 채 기뻐하고 있다.

박찬호에게 소속 팀 한화의 애리조나 전지 훈련은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 왔을 것이 분명하다.

전지 훈련 본진이 한국 시간으로 17일 저녁에 도착하는데 박찬호가 하루 앞선 16일 애리조나 투산의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에 합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주고를 졸업하면서 고향팀 한화의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한양대에 진학했던 그는 1994년 태평양을 건너 LA 다저스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17시즌 동안 아시아 출신 최다승인 124승98패 평균 자책점 4.36을 기록했다.

2001시즌을 마치고 자신의 ‘제2의 고향 팀’이기도 한 LA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뉴욕 메츠, 휴스턴 애스트로스, LA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거치며 ‘저니 맨(journey man) 생활을 한 그는 지난 해 일본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겨우 7경기 출장 기회 밖에 얻지 못한 채 1승5패, 평균 자책점 4.29에 그치고 말았다. 그에게 더 이상 나아갈 야구의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조국과 고향이 그를 안았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는 2007년 뉴욕 메츠, 휴스턴을 거칠 때 찾아왔다.

뉴욕 메츠에서 조기 방출 당한 박찬호는 휴스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재기를 꿈꿨으나 한 차례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에서 끝나고 말았다.

↑ 박찬호가 1994년 LA 다저스에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된 사진이 다저스타디움 메인 홀에 전시돼 있다.
↑ 박찬호가 1994년 LA 다저스에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된 사진이 다저스타디움 메인 홀에 전시돼 있다.

그런데 LA 다저스가 시즌 후인 2007년 11월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번 박찬호에게 기회를 줬고 그는 보란 듯이 2008시즌 54경기에 출장해 4승4패2세이브, 평균 자책점 3.40을 거두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만약 이 때 LA 다저스에서 부르지 않았다면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2007시즌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찬호가 2008시즌 LA 다저스에 복귀했을 때 스프링캠프지가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이었다. 글렌데일은 한화의 전지 훈련지인 투산에 인접해 있다. 이처럼 애리조나는 그에게 ‘재기의 땅’이었다.

1월 초 시무식을 마치고 먼저 LA로 출국한 박찬호는 ‘마리나 델 레이’에 있는 자택에 머물며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투산으로 이동했다. 투산은 6시간 거리이다. 끝없이 사막 길을 달린다.

박찬호(39)는 이번 캠프에서 모교인 공주고의 까마득한 후배인 투수 안승민(21)과 한 방을 쓴다. 무려 18살의 나이 차가 난다. 말 그대로 2인1실인데 ‘남자(男子) 2인1실’이다.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이번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처음으로 2인1실을 경험하게 됐다. 마이너리그의 경우 형편 때문에 비용을 아끼기 위해 외부에 거주할 때 룸 메이트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기도 하지만 구단의 공식적인 숙박에서 2인1실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구단이 돈이 많아서도,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도 아니다. 필자도 전혀 몰랐는데 오래 전 스프링캠프 때 박찬호의 말을 듣고 알게 됐다.

1997년 특파원으로 메이저리그 취재를 시작했을 때 출장비가 넉넉치 않았다. 그래서 한 방을 얻어 가까운 특파원과 함께 방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뉴욕에서는 무조건 2인1실을 써야 했다. 미국에서도 호텔에서 시내 전화는 대부분 무료인데 뉴욕은 그것까지 돈을 받는다.

그 때도 기억에 플로리다 베로비티의 LA 다저스 스프링 캠프였다. 박찬호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며 특파원들이 머문 호텔을 찾아왔는데 필자와 모 특파원이 한 방에서 나오자 ‘같이 방을 쓰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박찬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미국에서는 남자 2명이 같은 방을 쓰면 ‘게이(gay, 주로 남자 동성애자)’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미국의 호텔에서 침대 2개인 방을 달라고 할 때 ‘더블(double)’이라고 하면 안 된다. ‘더블’은 2명이 잘 수 있는 침대 하나인 방이다. 침대 2개인 방은 ‘트윈(twin)’이라고 하거나 ‘투 베드 룸(two bed room)’이라고 해야 한다. 남자 둘이 가서 ‘더블’ 달라고 하면 한 침대에서 자는 사이로 의심 받는다.

미국은 피겨스타 김연아와 듀엣 연기를 했던 남자 스타 조니 위어가 오는 7월 동성과 결혼식을 올린다고 발표할 정도로 ‘게이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게이들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시장이 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게이들의 도시이다.

한국은 ‘게이 문화’가 거의 없어 누구도 ‘남자 2인1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찬호는 ‘남자 2인1실’로 한국 프로야구 문화에 접속을 시작했다. 까다롭기도 하지만 워낙 현실 적응력과 친화력이 강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윤호는...
서울 중앙고등학교 시절 고교야구의 전성기를 구경했으나 그 때만 해도 인생의 절반을 야구와 함께 할 줄 몰랐다. 1987년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롯데와 태평양 취재를 시작으로 야구와의 동거가 직업이자 일상이 됐다. 한국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취재를 거쳐 1997~2002년까지 6년 동안 미국특파원으로 박찬호의 활약과 메이저리그를 현장에서 취재하고 귀국한 후 일간스포츠 체육부장, 야구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3년 MBC ESPN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을 했고 2006년 봄 다시 미국으로 떠나 3년 동안 미 프로스포츠를 심층 취재하고 2009년 돌아왔다. 현재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스타뉴스(Starnews)' 대표,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야구발전연구원이사,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06년 3월 '야구의 기술과 훈련(BASEBALL Skills & Drills)'을 번역 정리해 한국야구 100주년 특별 기획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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