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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오성제자고'(상주본)는 국민의 재산이다

[김재동의 틱, 택, 톡] 국보70호 간송본보다 가치있는 유물, 돈으로 자존심으로 훼손치말라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2.02.0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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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해례본' 소이(신세경)는 죽어가며 치마폭에 머릿속에 담긴 한글 해례본을 자신의 피로 남긴다.
그렇게 완성된 훈민정음을 세종(한석규)이 반포한다.
역시 피를 흘린 채 죽어가는 똘복(장혁)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본다.

지난해 12월 22일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막을 내렸다. 한글창제 과정을 보여준 드라마다.

한글은 세종이, 집현전의 학사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후손을 위해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값지고 귀한 선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조선 세종 28년(1446년) 발간된 한글(훈민정음)의 해설서다. 전체 33장의 목판본이며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의미·사용법 등을 담고 있다. 처음 발견된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국보 70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008년 7월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50) 연구원은 뜻밖의 제보에 상주행 차에 몸을 실었다.
국내 유일의 훈민정음 해례본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의 해례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임연구원은 당시 별로 큰 감흥은 없었다고 말한다. 여전히 간송본이 유일한 해례본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북한에서 자료로 보관 중 풀린 영인본의 복사본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임연구원의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은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란 책 제목이었다.
유일한 해례본으로 국보 지정된 간송본의 경우 발견 당시 겉표지가 찢겨있어 일제시대 복원과정에서 ‘훈민정음’이란 제목을 붙였던 것인데 이 상주본엔 온전히 제목이 남아있었다.

임연구원에 따르면 “세종께서 해례본을 만드시곤 보관용 외에 몇몇 학자들에게 나눠주셨을 것이다”며 당대에는 표제 없이 책을 찍어내는 것이 관례고 표제는 책을 받은 사람이 써서 붙이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제목은 일률적이지 않고 받는 이들의 해석대로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이다. ‘간송본’의 경우도 원제가 '훈민정음'인지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주본엔 ‘(아설순치후) 다섯음으로 만든 글자에 대한 고찰’이란 명백한 제목이 붙어있었다. 간송본보다 종이상태가 양호한 것도 좋았고 몇 페이지 건너 빈 공간 마다 세필로 적혀있는 후대 독서인의 주석이 특히 돋보였다고. 주석은 대충 ‘0자에는 이런 설명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정도의 간략한 인상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책을 점검하던 임연구원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중간에 10여 장이 비어있었다. 제공자 배 모(49)씨에게 물어보니 그는 “워낙 귀한 책이라 분실가능성이 높아 해체해 보관했는데 그 열장도 그런 경우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들이닥친 국학계의 많은 학자들은 배씨의 거부로 책을 구경도 못하고 발을 돌려야 했다고. 그렇게 임연구원은 그 귀한 상주본의 거의 대부분을 목도하고 섭렵한 유일한 연구원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오성제자고의 존재가 언론에 공개된 지 10일 만에 또 다른 ‘주인’이 나타났다.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67)씨. 조 씨는 “배 씨가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함께 넣어 몰래 가져 갔다” 고 주장하고 나섰다.

나중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이 책은 당초 경북 안동시 광흥사의 나한상(羅漢像) 뱃속에 들어 있던 복장(伏藏) 유물이었는데, 1999년 문화재 도굴 일인자로 알려진 서모(51)씨가 훔쳐 조 씨에게 다른 고서들과 함께 500만원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배씨는 “우리 집에서 나왔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절도와 무고 등으로 맞고소를 했고 물품 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이어졌다. 형사 사건은 소유권이 결정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됐다.

민사소송은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배씨가 훔친 것이니 조씨에게 돌려 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씨는 요지부동. 그 사이 해례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 배씨 집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배씨의 입은 여전히 닫혀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결심 공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9일 오전 10시 배씨 사건에 대해 선고한다. 이날 판결은 상주본의 운명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

조상의 선물이 그저 15년 형을 감수할만한 돈으로 치부되는 세태, 씁쓸하다.

"정말 제가 유일한 증인이 되는 일은 없겠죠?" 묻는 중년 연구원의 떨리는 목소리.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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