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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함께]히딩크가 말하는 '즐김'의 마법

김삼우의 감독과 함께 머니투데이 김삼우 기자 |입력 : 2012.04.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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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 선수들이 곧잘 쓰는 표현이 있다. “축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그들에게 축구는 심각한 것이었다. 죽기 살기로 뛰고 패스하고 그리고 결과에 울고 웃어야 하는. 물론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축구를 시작했고 대부분 직업으로써 축구를 하고 있지만 ‘즐기는’것 과는 거리가 있었다. 감독의 질책을 걱정해야 하고, 선배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즐긴다는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감독과 함께]히딩크가 말하는 '즐김'의 마법
더듬어보면 한국 선수들에게 ‘축구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게 한 이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직후 발간된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 ‘마이웨이’에 선수들이 되돌아 본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가 있다.

이영표(밴쿠버 화이트캡스 FC)기억의 한 대목은 이렇다.
“우리에게 항상 경기를 즐기라고 말했다. 경기에 이겼을 때는 ‘오늘 만은 즐겨도 좋다’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이겨도 승리에 맘껏 취해보지 못했다.”

최태욱(FC 서울)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히딩크를 잊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를 가족처럼 대했고, 직업으로 축구를 즐기도록 가르쳤다.” 최태욱은 더 나아가 “한국 감독들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국에선 그렇게 되기 힘들었다면서. 형들도 감독 눈치보고 할 말을 못하는 위계질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영국의 스포츠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경제학자 스테판 지만스키와 공저한 ‘사커 사커노믹스’라는 책에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러시아 대표팀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있다. 경기는 네덜란드와의 8강전. 러시아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후보로 꼽히던 네덜란드를 3-1로 격침시키고 4강에 뛰어 올랐다.

당시 상황을 쿠퍼는 “그날 사람들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광경, 즉 러시아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날의 수훈 선수 안드레이 아르샤빈이 ‘어느 뛰어난 네덜란드인 감독’에 대해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울어버렸다”고 했다. 그 뛰어난 네덜란드인 감독은 히딩크였다.(히딩크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를 사상 첫 16강에 진출시킨 뒤 절친한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요청으로 러시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가는 나라마다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하는 ‘히딩크 매직’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2002년 태극전사들처럼 러시아 선수들도 축구를 즐기게 했고, 또 한번의 매직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한국과 러시아 대표선수들이 축구를 즐기게 한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그들을 옥죄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선후배간, 그리고 선수와 감독간 철저한 위계질서에 지배되고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은 감독을 두려워했다.

히딩크 감독이 처음 왔을 때 한국 대표팀 후배는 고참의 식판을 치워주기도 했고, 고참은 그라운드에서 후배들에게 지시했다. 여기에 “감독이 말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식의 피동적인 자세도 보였다. 러시아 선수들은 쿠퍼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 지프차를 훔쳐간 마피아마냥 감독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쉬운 횡패스만 했다. 그러면 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고, 감독에게 야단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과 러시아 선수들의 플레이는 융통성이 없었고, 창의성과 자율성이 떨어졌다. 포메이션을 지킨다고, 상대 스트라이커 한명을 막겠다고 수비수들이 잔뜩 뒤에 처져 있거나, 공격수는 전방에서 어슬렁거렸다. 패스는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효율성도 없었다. 질책을 의식하다보니 축구가 즐거울 리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선배나 감독에 주눅 들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이끌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드리블과 패스를 하고, 감독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포지션을 바꿔가며 뛰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한국 선수들에게 그라운드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숙소 방을 배정할 때는 고참과 어린 선수를 묶는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한 방을 쓰도록 했다. 공 등 축구 장비를 선후배가 같이 나르게 했다. 히딩크 스스로 공자루를 들고 버스를 오르내리고, 선수들과 함께 골대를 옮기기도 했다.

경직된 러시아 선수들과는 벽을 없애려고 애썼다.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 받았고 훈련장에서도 웃음꽃이 피도록 했다. 훈련 중에 벌을 줄때 공을 엉덩이에 맞혀 나머지 선수들이 웃게 하는 식이었다. 예전 러시아 감독들처럼 경기 중 공을 빼앗겼다고 호통을 치지 않았다. 최태욱은 이런 이야기도 썼다. “히딩크 감독에겐 의문을 표하거나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히딩크는 ‘축구계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부숴 버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처럼 히딩크 감독이 한국과 러시아 대표팀에 내린 처방은 비슷한 면이 많다. 우선 위계질서 등으로 경직된 팀 분위기를 바꿨다.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서 갇혀 있던 그들의 한계를 깨도록 한 것이다. 자연스레 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살아났다. 그리고 축구를 즐기면서 하게 됐다. 덩달아 최상의 결과가 따랐다.

구성원을 행복하게, 자유롭게 해야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야 목표도 이룰 수 있다. 축구팀뿐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지도자는 그들이 그럴 수 있도록 꼼꼼하게 살펴보고 소통해야 한다. 자신이 질곡이라면 스스로 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들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성패가 가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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