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117.77 694.55 1130.50
▼6.84 ▼1.07 ▲2.4
-0.32% -0.15% +0.21%

박정희 쿠데타에 맞섰던 이한림 장군 별세

뉴스1 제공 |입력 : 2012.04.30 14:44
폰트크기
기사공유
(서울=뉴스1) 김정욱 기자=
News1
News1

이한림 전 건설부 장관(사진)이 29일 오전 0시 30분 향년 91세로 별세했다.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1군 사령관으로 재임했던 고인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정치개입을 반대하다 강제 예편됐다.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으로서 '이 장군'으로 통하던 그는 함경남도 안변에서 태어났다.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주 신경군관학교, 일본 육사 동기생으로 해방 이후 국방경비대 중대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전쟁 당시 9사단장을 맡아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퇴하면서 '철의 삼각지대' 확보에 큰 역할을 했다.

휴전 후인 1954년 6군단장 재임 시절 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여당 후보인 이기붕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그 때 6군단의 이기붕 득표율은 35%였다. 군인은 여권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던 당시 군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의 정치적 중립은 항거로까지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보복성 짙은 인사조치로 현직 군단장임에도 국방대학원에 입교되기까지 했다.

1960년 1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 전 장관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서 자신의 친한 친구인 박정희에 대항했다. 쿠데타 진압을 계획했던 그는 내전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계획을 포기했고, 같은 해 8월 24일 강제 예편됐다.

강제 예편 뒤 미국으로 추방되기도 하고 또 한국으로 돌아와 감금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1963년 그는 박정희의 요청에 따라 수자원개발공사 사장을 맡았고, 1968년 진해화학 사장, 1969년 건설부 장관, 1972년 관광공사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60~70년대 경제발전에 일조했다. 이후 1974년부터 1980년까지는 터키와 호주 대사를 지냈다.

29일 노환으로 별세한 이 전 장관의 유족으로는 이승훈 경수고속도로 대표이사 등 1남 3녀가 있다. 이 전 장관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전화 02-3010-2265)이며, 발인은 5월 2일 오전 7시다.

<저작권자 뉴스1 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

남기자의체헐리즘 (1/15~)
대한민국법무대상 (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