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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 10년 전과 이것이 달라졌다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2.05.19 10:15|조회 : 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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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두산과의 잠실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한화 박찬호(39)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때 설레임과 함께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지난 연말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한번 만났지만 실제로 한국 무대에 복귀해 던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1996 시즌 장기 출장부터 시작해 첫 좌절을 맛본 2002년 텍사스 이적 첫해까지 그가 마운드에 오른 사실상 전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고 취재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일간스포츠로 복귀했는데 박찬호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2006년 봄 다시 미국으로 떠나 3년 간 특파원을 하며 샌디에이고에서 장출혈로 고생하던 모습, 친정팀 LA 다저스로 복귀해 4승4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을 거두며 재기하는 과정도 보게 됐다.

이후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로 이적하며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 했다. 통산 476경기에서 124승을 거두고 일본 무대로 옮겼다. 필자는 그의 메이저리그 등판 경기 중 350경기 정도는 현장에서 취재했던 것 같다.

박찬호의 한국 복귀에 맞춰 여러 방송 특집이 제작됐는데 필자는 인터뷰에서 ‘어떤 경기가 가장 인상에 남아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문득 생각해보니 아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많이 본 탓인 듯했지만 난감했다. 엉뚱하게도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을 당시 환호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박찬호는 그 금메달로써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적 스타’로 메이저리그에서 장수할 수 있었다.

한국 무대 복귀를 앞두고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으로 곧 바로 돌아오지 않고 먼저 일본 도전을 택한 그는 오릭스 1군 7경기에서 1승5패, 평균 자책점 4.29로 부진했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상당해 한국의 많은 야구인, 관계자들이 그의 한국 야구 복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박찬호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박찬호는 그런 친구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자신이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메이저리그를 정리할 때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 전 야구를 통해 큰 부(富)와 명성을 이룬 그가 야구 때문에 거듭 좌절하고 쓰라린 실패를 맛볼 이유가 없었다. 깨끗하게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처음으로 좌절했을 때가 2002시즌이었다.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초대형 빅딜로 텍사스와 장기 계약한 첫해 그는 햄스트링과 허리 통증 등으로 9승8패, 평균 자책점 5.75에 그쳤다. 2001년 15승 투수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투수 랭킹 1위였던 위용이 무색했다.

그 시즌 마지막 등판을 마친 박찬호를 인터뷰했을 때 텍사스 알링턴 구장 라커룸에서 그는 느닷없이 ‘청산유수(靑山流水)’라고 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흐르듯 세월이 가 필자도 처음으로 박찬호가 한국 마운드에서 던지는 것을 보게 됐다.

놀라기는 했다. 지하철 잠실 역에 6시쯤 도착하니 예상보다 많이 붐볐고, 구장도 3루 쪽을 한화 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과거 잠실 한화 경기라고 하면 상당 부분이 비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50대로 보이는 남자 세 분이 한화 유니폼 상의 저지를 입고 가는데 등 뒤에 씌어진 이름이 두 분은 박찬호, 한 분이 류현진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함께 일했고 현재 야구 칼럼을 쓰는 대니얼 김이 필자에게 다가와 ‘얼마 만에 박찬호 던지는 것 보시는 거죠?’라고 물었다. 오랜 만이라는 기억 밖에 나지 않았다.

마침내 1회말 박찬호가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 정수빈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1실점했다. 어렵게 시작한 경기를 그는 7이닝 1실점으로 끌고 갔다. 그 과정을 정면으로 지켜보며 ‘역시 박찬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7회 등판을 마치고 걸어 들어올 때 박찬호를 연호하는 기립박수가 나왔는데 예상대로 8회에는 등판하지 않았다.

1973년생인 박찬호는 첫 좌절을 맛본 2002년 29세였다. 한국 무대에 데뷔한 올해 그의 나이는 39세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공의 빠르기 등등 야구적인 부분을 배제한다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감정 표현의 변화였다.

어려운 승부 끝에 볼넷을 내주고 크게 아쉬워 하던 모습, 삼진을 잡은 뒤 오른 손을 불끈 쥐고 좋아하던 동작, 더블 플레이를 펼쳐준 내야수들을 기다려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과정, 포수에게 전해주는 격려 등등, 박찬호는 청산유수를 얘기하던 도인(道人)에서 이제는 형(兄)이 돼 있었다.

아 그렇구나. 알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은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살아남아야 했기에 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렵고 힘들어도 미국이라는 다민족 사회의 구조 상 차갑고 냉정한 경쟁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조국 한국은 다르다. 가족은 물론 선 후배, 형 동생들이 든든하고 따뜻하게 존재한다. 잠실구장까지 매진 시킨 그는 어디를 가도 따뜻한 에너지를 느낀다고 했다.

박찬호에게 새로운 야구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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