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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함께]최강희, 반 바스텐과 같은 처지가 됐지만...

김삼우의 감독과 함께 머니투데이 김삼우 기자 |입력 : 2012.05.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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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국가대표 감독/대한축구협회 제공
최강희 국가대표 감독/대한축구협회 제공
승리에 대한 열망은 모든 감독들이 공유한다. 종목이나 국가의 다름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이유 자체가 승리이기 때문일 터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고 싶은 게 이들의 공통된 심정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에닝요(전북) 귀화’ 논란을 보면서 6년 전 네덜란드가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 ‘토털사커’로 세계 축구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뒤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늘 우승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다. 우리에게는 히딩크의 나라로 익숙하겠다. 2006년, 이곳에서 ‘에닝요건’과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은 세계적인 스타 출신의 마르코 반 바스텐이었다. 그도 최강희 감독처럼 한 외국 선수의 귀화를 추진했다. 당면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위해서였다. 당시 20세였던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살로몬 칼루. 송종국이 활약했던 페예노르트에서 발군의 공격력을 과시하며 네덜란드 최우수 유망주에게 주는 요한 크루이프상을 2005년 수상했다.

하지만 그도 귀화요건이 문제였다. 2003년 네덜란드에 온 탓에 최소 5년간 네덜란드에 거주해야 한다는 요건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반 바스텐은 '탁월한 문화적인 장점을 가진 이는 5년 거주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근거로 칼루 귀화에 앞장섰다.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도 힘을 보탰다. 최강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가 에닝요 특별 귀화를 추진한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결과는 같았다. 에닝요는 대한체육회가 기각했고, 칼루는 네덜란드 이민국 장관이 반대했다. 대한체육회는 에닝요가 국적법 제5조에 명시된 국어능력 및 풍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네덜란드 이민국은 칼루가 네덜란드 언어 및 문화적 소양 테스트(우리로 말하면 귀화적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칼루는 테스트에 응시했다 떨어진 바 있다.

‘칼루 케이스’는 법정 소송으로까지 이어졌으나 독일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해결되지 않자 칼루 스스로 귀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칼루가 네덜란드 귀화에 성공했다면 그는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친형과 맞서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될 뻔했다. 그의 형 보나벤처가 네덜란드와 같은 조에 속한 코트디부아르대표팀으로 출전했기 때문이다.(칼루는 지난 20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첼시의 공격수로 활약했다.)

‘칼루 케이스’는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서도 핫이슈였다. 네덜란드까지 전력 강화를 위해 특별‘귀화’에 눈을 돌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90년대부터 몰아친 세계화의 물결과 맞물려 축구계도 ‘순혈주의’가 흔들린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귀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많았다. 단지 성적을 위해서 남용 된다는 이유였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그야말로 ‘돈’과 '국가대표'라는 자리를 앞세워 이렇다 할 연고도 없는 브라질 등 축구 강국 출신의 선수들을 귀화시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히는 무리수가 지적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 선수가 새로운 대표팀에 뛰기 위해선 ▲해당국에서 태어나거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해당국에서 태어나야 하며▲18세 이후 해당국에 최소한 5년을 지속적으로 거주해야 하고 ▲이전 국가에서 국가대표로 뛰었을 경우 귀화 후 대표 발탁에 제한을 두는 등 까탈스러운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돈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를 급조하려는 움직임을 제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항전에 나서는 대표팀에는 그에 못지않게 국민정서가 크게 작용한다. ‘돈’을 좇아 수시로 소속팀을 바꿀 수 있는 클럽과는 다른 차원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순혈주의’를 탈피한, 다인종· 다문화의 성공 사례로 제시되는 국가들의 속내를 살펴봐도 그렇다. 1998년 월드컵을 제패한 프랑스 대표팀. 당시 우승의 주역들인 지네딘 지단(알제리) 마르셀 드사이(가나) 릴리앙 튀랑(과달루페) 패트릭 비에이라(세네갈) 다비드 트레제게(아르헨티나) 등 주전들의 다양한 인종과 출신지 때문에 '인종의 용광로'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지단은 프랑스에서 독립한 알제리에서 가족이 이주해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트레제게도 아버지가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이면서 출생지는 프랑스였다. 또 세네갈처럼 프랑스의 피식민지 역사를 가졌거나 과달루페처럼 현재도 프랑스령인, 그래서 공용어가 프랑스어인 국가(지역) 출신도 있다. 드사이는 4살 때 프랑스로 이주한 케이스다. 프랑스 특유의 관용도 작용했겠지만 그들 대부분 프랑스를 대표할 만한 선수로 받아들일만한 나름의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또 루트 굴리트,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에드가 다비즈 등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활약한 흑인 선수 대부분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계 또는 수리남 출신이다. 1975년 독립한 수리남의 공용어도 네덜란드어다.

에닝요 귀화를 추진하면서 대한축구협회가 예로 든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후이 라모스, 와그너 로페스, 툴리오 등 주로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 전 일본에 10년 이상 살면서 일본어를 무리없이 구사할 정도 동화되거나, 일본 혼혈이거나, 일본에서 태어난 이였다. 일본인들의 거부감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 최초의 흑인 국가대표로 주목을 받았던 게랄트 아사모아도 가나출신이지만 12세 때 가족이 독일로 이주한 경우였다.

최강희 감독은 “클럽과 달리 국가대표팀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대한체육회의 기각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월드컵 최종 예선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마땅한 판단이다. 지난 일에 연연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특히 그가 우려한 것처럼 에닝요 귀화 등의 문제 탓에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선수들을 빨리 하나로 다잡는 게 중요하다.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K리그를 제패하면서 보여줬던 그의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시점인 셈이다. 그래야 ‘최강희 리더십’의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승리의 확률을 높이는 수단은 선수 하나를 보태는 것 외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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