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 쥔' 김택진, 지분매각 진짜 이유는?

↑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173,600원 ▲3,100 +1.82%) 대표가 회사 최대주주 지위를 전격적으로 넥슨에 넘긴 이유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주식을 시세보다도 싸게 판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엔씨소프트가 최근 자금에 쪼들린 것도 아니다. 최근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지분매매는 소수의 고위급 인사를 제외하면 양사 관계자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며 "이번 매각의 속뜻은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만이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며 결코 이번 지분매매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 주식 321만8091주(14.7%)를 주당 25만원에 취득했다. 이는 지분매각 발표가 난 8일 엔씨소프트의 종가 26만 8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넥슨은 주식매입 금액 8045억원을 김 대표에게 현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현금자산 1조8000억원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다. 양사는 협력 강화를 위한 지분거래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김택진 대표가 보유한 현금으로 다시 넥슨의 지분을 구입하는 주식 교차 보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애널리스트는 "아직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엔씨측에서 넥슨재팬이나 넥슨 계열사 쪽으로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며 "양 사의 중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의 시가총액은 8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 5조8639억원보다 크다. 그래도 김 대표가 보유한 현금으로 NXC가 보유한 넥슨의 주식, 혹은 김정주 대표가 보유한 NXC 지분을 매입할 경우 합병 수준에 준하는 양사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이번 딜은 지난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과 비슷하다.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이해진 NHN (183,700원 ▲3,600 +2.00%) 의장과 한게임을 창립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이자 삼성SDS 입사동기로 친분이 두터웠다.

당시 충분한 투자자금이 있지만 다음, 라이코스, 야후 등에 뒤처졌던 네이버는 대중적 인지도 확산 및 안정적 수익모델이 필요했다. 한게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회원수를 감당할만한 자금력이 필요했다. 양사의 이해와 각 수장의 친분관계가 합병을 만들어냈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두텁다. 더욱이 양사는 협력 관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넥슨이 안정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수합병 등을 통해 성공적인 게임 유통(퍼블리싱)을 이어가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2개의 대작 게임을 내놓은데 이어 리니지 시리즈 후속작 등 신작을 줄줄이 출시할 예정이다. 향후 공격적인 대작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현재 수준 이상의 자금력이 필요하다. 넥슨은 기존 캐주얼 게임을 뛰어넘는 대작게임까지 아우르는 게임 포트폴리오를 갖춤으로써 세 확장을 할 수 있다.

다른 관측도 있다. 김택진 대표는 그동안 수년 간격으로 대작게임을 출시하면서 큰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07년에는 대작게임 타뷸라라사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블레이드&소울과 길드워2의 개발과정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이들 게임 개발이 마무리된 만큼 이미 자리를 잡은 엔씨소프트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김범수 의장도 NHN USA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며 NHN과 인연을 끊고 휴식을 취했다. 그 이후 카카오톡을 앞세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택진 대표 역시 8045억원을 밑천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다.

김택진 대표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바일게임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엔씨소프트가 모바일게임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대작게임 위주의 조직 구성상 이 같은 변화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엔씨소프트 내부에서 모바일게임 담당으로 인사가 난 한 간부급 직원은 "2선으로 밀렸다는 박탈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정계진출설도 제기된다. 앞서 김택진 대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택진 대표가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인데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의 인재영입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는 점에서 대선캠프 합류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관련 엔씨소프트 이재성 홍보담당 상무는 "다양한 설들이 난무하지만 특히 정계진출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면서 "지분매각은 어디까지나 사업적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며 (김대표가) 엔씨소프트 대표직을 수행하는 만큼 사업에 충실할 것이고 현금자산 투자역시 다양하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