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영토 유럽 첫 확장..'위기 이후' 선제적 대응

한국거래소(KRX)의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 인프라를 수출하고 해외 우량 기업의 국내 유치에 잰걸음이다. 이는 최근 유럽 위기에도 글로벌 거래소간 합종연횡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등 시장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지난 15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를 21억6000만달러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봉수 KRX이사장도 편안히 집무실에 앉아 있을 틈이 별로 없다. 그는 2010년 1월 취임 후 30개월 동안 모두 30차례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한달에 한번 꼴이다. 출장일수는 모두 109일. 방문 국가도 중국과 동남아, 중앙아시아,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세일즈'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첨단 거래 시스템 수출은 아시아를 넘어섰다. 해외 기업들이 국내 증시 상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리스 거래소와는 양국 해운사의 듀얼리스팅(동시 상장) 추진하며 위기 이후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 이사장을 만나 '거래소의 세계화'를 포함해 주요 현안에 대한 진행 상황을 들어봤다.

―그리스 사태와 유럽 위기로 시장이 어수선합니다.
▶ 네 그렇죠.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의 경기 둔화 우려가 더해지면서 5월 이후 증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증시가 유로존 재정 위기에 영향에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유로존 정상들이 공조해 해법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등도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경기 부양책을 내 놓지 않을까요.

―해외 기업의 국내 증시 유치도 부진해 보입니다. 곧 성과가 나타날까요.
▶ 현재 유럽발 경제위기 영향으로 KRX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주요 거래소들의 IPO 실적이 전년동기 대비 50%에도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주식시장이 침체되면 IPO도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KRX는 이런 악조건에도 글로벌 우량기업 초청 세미나를 열고 글로벌 투자은행(IB) 등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상장 유치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해외 유수 기업이 국내 증시 상장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세계 주식시장이 급격한 위축되지 않는다면 올 하반기 부터 가시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아테네를 방문해 그리스 거래소 이사장을 만난 것으로 압니다.
▶당시 소크라테스 라자리디스 이사장과 만나 양국 해운사의 듀얼리스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 중 그리스 해운사가 국내 증시에 상장될 겁니다. (KRX는 비상장 국내 해운업체들을 대상으로 그리스 상장 희망기업을 모집하고 있는데 30여개사로 좁힌 명단을 그리스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그리스 거래소도 자국 150여개의 한국증시 상장 희망기업 리스트 작성을 끝냈다. KRX는 비상장 해운사를 중심으로 1차 듀얼리스팅을 완료한 후 뉴욕거래소(NYSE)에 상장된 대형 그리스 해운사의 주식예탁증서(DR)를 국내에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형 거래시스템이 아시아 등에서 인기가 높다고 하던데요, 다른 해외 사업은 어떻습니까.
▶신흥국의 증시 개설을 지원하고, 우리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수출하는 일은 한국의 금융영토를 확장하고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길입니다. 그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 IT 시스템을 수출했고, 라오스와 캄보디아 증시를 개장하는 등 아시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최근 벨라루스 증시 현대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유럽 권역 진출로는 처음이지요.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은 올해 가능합니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 얘기죠? 한국 증권시장은 규모나 유동성 측면에서 선진 시장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글로벌 투자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MSCI는 한국의 외환시장 규제 완화 등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KRX나 정부의 입장입니다. 올해는 (지수 편입은) 다소 불확실합니다. 다만 MSCI 선진지수 편입 여부와 관계없이 글로벌 선진시장으로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대체거래시스템(ATS) 등 거래소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포함된 ATS와 KRX 허가주의 도입은 수십년간 지속된 KRX의 독점체제가 해체된다는 점에서 우리에는 중대한 도전이 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경쟁을 통해 거래비용이 절감되고 투자자 서비스도 높아진다면 자본시장 규모도 커지고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시장 참여자에게 낮은 비용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ATS와 선의의 경쟁을 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난해 공공기관으로 계속 지정된 데 아쉬움이 많으시지요.
▶그 문제는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입니다. 다만 지난 2년여 경영 효율성을 높여 공공기관 지정 사유가 해소됐다고 봅니다. 주변 평가도 달라지지 않았나요?
거래소 IPO도 정부가 판단할 사안이지만 추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세계 대형 거래소간 인수합병(M&A)이나 지분제휴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를 둘러싼 '이상 과열'이 여전합니다.
▶특정 세력이 테마를 형성하거나 루머를 유포해 불공정 거래를 하는 행위에 대해 시장 감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불건전 계좌에 주문 중단을 요구하는 등 사전 예방은 물론 테마주가 꿈틀대는 경우 기획·특별감시를 실시해 신속하게 대처할 계획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도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검찰과 공조체제도 유지됩니다.

- 올해 말이면 3년의 임기가 끝나는데요….
▶기업 CEO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습니다. 더구나 급변하는 자본시장의 중심에 있는 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KRX는 국내 유일의 거래소로 수익 기반을 갖추고 있어 큰 걱정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거래소 간 합종연횡이 진행되는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언제든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그간 해외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인 것은 거래소와 금융시장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것이고, 남은 기간에도 보다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