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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궁', 야하면서 야하지 않은 이유

[아저씨의수다]4. 후궁..영상미는 좋지만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부족해 보여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입력 : 2012.06.15 12:43|조회 : 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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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궁', 야하면서 야하지 않은 이유
#. 영화 '후궁 : 제왕의 첩'이 인기라네요. 지난 6일 개봉 이후 열흘도 안 돼 누적관객수가 130만 명을 넘었답니다. 특히 20대가 아니라 30, 40대 중년층이 전체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네요.

하지만 이렇게 흥행 가도를 달릴 만한 매력을 영화 자체에선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영상만큼은 꽤 예쁘긴 합니다만. 좀 뜬금없긴 한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예전에 떠돌던 인터넷 유머가 갑자기 떠올랐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과도 관련이 있으니 내용을 일단 소개해보겠습니다.

교수가 '귀족적'인 요소와 '성'적인 요소를 함께 넣어 작문을 해오라는 과제를 냈다. 한 학생이 이런 글을 냈다. '공주가 임신했다.'

기가 막힌 교수는 학생에게 그렇다면 'SF' 요소도 넣어보라고 했다. '별나라 공주가 임신했다.'

오기가 발동한 교수는 '미스테리' 요소도 가미해보라고 했다. '별나라 공주가 임신했다. 누구의 아이일까?'

갈 때까지 가보자 생각한 교수. '종교적'인 요소도 추가해보라고 했다. 학생은 이내 답을 냈다. '별나라 공주가 임신했다. 오 마이 갓! 누구의 아이일까?'


영화 '후궁'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에로틱 스릴러 궁중사극' 쯤 될 텐데요, 각 장르별 특성이 소개한 이 인터넷 유머처럼 좀 허무하게 이 영화에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선 여배우의 노출부터 따져 볼까요.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10대 사춘기 소년이 아니라면 영화의 섹스 장면은 과히 야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배우가 벗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들은요. 만약 그리 생각했다면 관객 모독입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정사 장면이 야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 노출 그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감정이입' 때문입니다. (참, 야동 마니아의 경우는 제외하고요) 그리고 감정이 그만큼 이입되려면 그럴만한 스토리가 섹스 장면 뒤에 있어야 합니다.

절실하게 사랑하는 데도 주변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남녀가 하는 섹스, 착한 남편이나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마음이 이끌려서 하는 외도, 금전이나 권력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육체관계 등을 스크린 뒤에서 지켜보며 사람들은 야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정사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습니다. 신 참판댁 딸 화연(조여정 분)이 궁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권유(김민준 분)과 달아나 산속에서 정사를 나누게 된 배경으론 그들이 뜰에서 다정하게 대화하는 장면뿐입니다. 그러니 정사 장면에서 절절한 사랑의 애절함이 관객에게 전달될 리가 없겠지요.

성원대군(김동욱 분)이 화연에게 집착하게 되는 과정도 제대로 묘사돼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번 훌쩍 보고 첫 눈에 반했다는 정도죠. 형수가 된 화연을 탐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권력에 집착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 독살당한 형에 대한 죄책감, 정쟁에서 느끼는 권력무상 등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지나가지만 그다지 설득력있게 구성돼 있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원대군이 왕이 된 이후 중전이나 화연과 나누는 정사에 제대로 된 감정이입이 될 리 없고, 수위가 높은 노출에도 야하다는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 거죠.

#. 이 영화가 그리 재밌진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스포일러가 너무 많아지네요. 보려는 분들에게 폐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스릴러적 요소나 궁중 사극적인 매력이 높지 않았다는 설명은 다른 방식으로 해보겠습니다.

문학 용어 중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갑작스런 기적으로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구성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신이 나오는 종교극을 제외하고는 관객을 허무하게 만드는 바람직하지 않은 구성입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저서 '시학'에서 "결말은 어디까지나 그 이야기 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할 정도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모든 갈등 구조가 갑자기 해결됩니다. '팜므파탈'로서 화연의 치밀한 면모나 궁중 내부의 치열한 정치적 암투,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과정 등이 변죽만 울리고 휙 지나갑니다.

설득력 높지 않은 복선만 잠깐 보여주고선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돼 버리지요. 또 미술적인 아름다움은 있지만 시대 불명의 궁궐이나 중국 서태후를 연상시키는 대비의 복장 등도 아주 어색합니다. 이러다 보니 가슴 조리는 스릴적인 재미도, 궁중 사극적인 요소도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는데도 영화 '후궁'의 개봉 초반 흥행이 괜찮은 진짜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요즘 시대 중년의 성적 억압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이런 저런 억압도 많습니다. 이러다보니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행복지수도 소득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당연히 성적 욕망도 함께 억눌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엔 치열한 경쟁을 강요받으면서 자연스레 성적 욕망도 짓눌리게 됩니다. 더구나 기혼자라면 맞벌이에 가사로 피곤한 아내에게 섹스 하자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기 힘듭니다.

여성의 경우도 예전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많이 올라왔다지만, 아직도 여성상에 대한 편견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영화 '후궁'은 '왕의 동생이 왕이 된 후에 형수를 탐한다'는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억눌린 성적 욕망을 또 다른 방식으로 채워줄 만큼 자극적이지요. 물론 그 소재가 그다지 맛있게 버무려져 있진 못하지만요.

그래서 영화 '후궁'의 흥행 페이스가 더 강렬하고 길게 이어지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 마디로 이 영화에 대한 제 감상평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스릴러가 되려다만 에로사극'. 좀 더 재밌는 한국 영화가 더 많이 나와서 우리의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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