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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예르비가 들려준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박종면칼럼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입력 : 2012.06.18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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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를 앞둔 아이와 함께 초여름 밤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21개월간 학교와 집을 떠나는 아이를 격려하기 위해 콘서트홀을 찾았지만 아이는 섭섭해 하는 아버지를 위해 저녁 시간을 낸 듯 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명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전반부에는 미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고, 후반부에는 이날의 메인 메뉴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됐습니다.

아이는 예상대로 인형같이 생긴데다 옷까지 깜찍하게 차려입은 힐러리 한이 연주한 감미로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몰입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말러 교향곡 5번에 빠져들었습니다. 트럼펫 소리로 시작하는 1악장의 ‘장송행진곡’은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을 연상시키지만 말러 음악답게 황량하고 암울합니다.

말러가 폭풍처럼 맹렬하게 연주하라고 했던 2악장에서도 곳곳에 고독함과 우수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왈츠와 ‘렌틀러’라는 시골춤곡이 번갈아 등장하는 긴 스케르초의 3악장이 끝나면 귀에 익숙한 4악장 아다지에토 악장이 등장합니다.

4악장은 9.11테러사건 같은 국가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텔레비전 등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추모곡이지만 원래는 말러가 아내 알마에게 바친 사랑의 맹세였습니다. 말러는 알마에게 편지 대신 이 악장을 보냈고, 어떤 글도 씌어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말러가 하고 싶었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4악장을 단순히 사랑의 약속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브루노 발터나 노먼 레브레히트 같은 말러 연구가들의 지적입니다.

이들은 4악장을 사랑에 대한 음악인 동시에 사랑의 포기에 대한 음악이고, 아내에 대한 사랑의 선언이면서 아울러 고독에 대한 침잠이라고 해석합니다. 사랑에 대한 음악이자 사랑의 포기이며, 삶의 환희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상념을 포기하지 못했던 말러의 이중성을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러 음악의 핵심사상 같은 게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지요.

말러 음악만이 아니라 말러의 삶이 실제로 그랬습니다. 말러는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악장을 통해 아내 알마에게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하지만 알마는 젊은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밀애를 즐기는 등 말러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교향곡 5번만이 아니라 말러 음악 곳곳에서 나타나는 삶과 죽음이, 사랑과 상실이, 행복과 비극이 하나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들 현실 삶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절망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설령 실패하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러가 자신의 연적인 젊은 건축가를 만나서도 냉정함과 품위를 잃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세상만사가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고, 비극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며, 실패가 반드시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말러 교향곡에 담긴 깊은 뜻을 아이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아이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판단도 했습니다.

이게 세상을 오래 살아보지 않고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음악회에 같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초여름 늦은 밤 예술의 전당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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