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잡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한민국에 '정리' 열풍이 불고 있다. 정리와 관련된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고, '정리 컨설턴트' '수납 컨설턴트' '출장정리서비스'까지 생겨나는 등 '정리 산업'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리법을 알려줘'…책 찾는 사람들
지난 4일 낮 12시30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점. 평일 오후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책을 보는 직장인 등으로 매장은 붐볐다.


이 가운데 '정리'와 관련된 베스트셀러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경제경영부문 베스트셀러 4위와 12위(7월4일 기준)를 차지했다. 모두 '정리'와 관련된 책. '하루 15분 정리의 힘'과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구매한 40대 직장여성 김모씨는 "책에 관한 서평을 보고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사러 왔다"며 "주변정리도 하고 또 주위에 정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들에게도 주려고 두 권을 샀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본점 관계자는 "지난 3월 출간 된 이래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올라있는 상태"라며 "6월 중 진행된 '하루 15분 정리의 힘' 저자 강연회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설명했다.


'인생이 빛나는 마법'은 TV와 저술 활동 등으로 유명한 일본인 '정리 컨설턴트' 곤도마리에가 썼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일본 아마존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곤도는 책에서 "정리를 하고 싶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생활을 더 좋은 상태로 바꾸고 싶다는 의식 수준이 높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리 출장 서비스까지…관련사업도 '꿈틀'
서적뿐 아니라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교환하며 '정리' 활동을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인터넷 커뮤니티인 '정리력; 정리 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cafe.naver.com/2010ceo.cafe)에는 정리정돈에 도움을 얻고 싶어 하는 직장인부터 정리전문가를 꿈꾸는 지망생까지 1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100일 정리 프로젝트'에 도전해 '완료'한 김모씨는 후기를 통해 "(정리를 하면서) 내가 어떤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나와의 약속을 하나씩 이행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인생을 점점 더 계획성 있게 살 수 있게 된다고 생각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7세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회원은 "정리관련 서적을 읽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어서 가입하게 되었다"며 "직장에 들어가면서 인맥 및 일 정리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었다"고 가입동기를 설명했다.

출장정리서비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의 저자이기도 한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현재 기업체 강연, 개인 정리 상담에서 나아가 '출장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며 "정리 컨설턴트와 함께 정리법을 배우면서 끝이 안보이는 집안 정리정돈을 하루 안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대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정리 컨설턴트'는 15명 정도. 그러나 '수납 컨설턴트'가 자격증으로 등록이 됐고 현재 2300여 명의 교육생 및 지망생들이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정리 컨설턴트가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고 윤 대표는 분석했다. 이와 함께 '한국정리·수납컨설턴트협회'와 '한국정리정돈협회'의 관련 단체도 최근 발족했다.

◇정리가 필요한 이유는
정리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는 '바쁜 생활'과 '지나치게 풍요로운 사회'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 대표는 "직접 찾아가서 정리를 해주는 출장정리서비스의 경우 고객들이 직장생활에 바쁜 직장인, 워킹맘이 많다"며 "직장생활과 육아 등으로 지치다 보니 자신의 공간을 통제하지 못해 끊임없이 스트레스만 받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소비'가 손쉽게, 빈번히 일어나는 반면 물건이나 불필요한 정보 등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쌓여가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소해 보이는 '정리'가 개인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주변 공간을 정리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 '삶을 잘 조절하고 주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며 "이같은 '통제감'이 삶의 전반적인 인간관계, 업무 등의 자신감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결국은 '자기관리'의 연장선"이라고 풀이했다.

또 현재 정리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웰빙'의 또 다른 형태로도 해석됐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는 큰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만 정리에 대한 관심도 지나치면 '강박'에 달할 수 있으므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감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지나친 '집착'은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