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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삼성-애플 특허전 평결의 가벼움

박종면칼럼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입력 : 2012.08.28 06:17|조회 : 7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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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Kitsch)'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얄팍하고 피상적이고 천박하다는 뜻을 가진 독일어다. 광고인 겸 작가 박웅현의 키치에 대한 실증적 설명이 흥미롭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 악보에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자필메모가 적혀있다. 베토벤에게 돈을 빌린 사람이 정말 갚아야 하는지를 묻자 베토벤이 꼭 갚아야 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베토벤이 음악으로써 인류에게 그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 하나의 예는 스탈린의 아들이 전쟁 중에 죽은 것과 관련해서다. 스탈린의 아들 아이코프는 독일군 포로가 돼 수용소에 갇혀 죽게 되는데, 그가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쓰는 것을 두고 영국군 포로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화가 치밀어 자살을 해버린 게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스탈린의 아들이 포로수용소에서 파시스트와 싸우다 장렬하게 죽었다는 식으로 포장돼 버린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키워드도 키치다. 주인공은 안정적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의 길에 나섰다가 죽는데, 사실 그의 죽음은 역사적이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죽은 게 아니라 혁명을 위해 길을 가다 만난 깡패와 싸움이 벌어져 그의 칼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이고 위대하고 혁명적이고 대단한 것으로 포장되는 데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천박하다는 게 키치라는 단어의 속뜻이다.

#지난 주말 미국 애플 본사에서 가까운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법원 배심원들이 보여준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소송 평결은 키치의 전형이다.

사이클링애호가 엔지니어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9명의 남녀 배심원들의 평결은 너무 가볍고 피상적이다. 졸속으로 시작해 졸속으로 끝났다.

무려 700여개에 이르는 쟁점들이 채 하루도 안되는 22시간만에 처리되고 말았다. 이번 사안보다 훨씬 단순했던 과거 구글이나 오라클 특허소송의 경우도 일주일정도 걸렸는데 말이다. 또 평결지침이 109페이지에 이르고, 평결양식이 20페이지 33개항이나 되는데도 판사에게 질문사항 하나 없었다.

배심원들은 판사가 특허침해 대상에서 제외시킨 모델을 심사목록에 넣는가 하면 침해하지 않았다고 결정한 모델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매기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외신은 애플에는 잘못이 없다는 배심원들의 확신과 선험적 판단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판결을 빨리 끝내고 요트를 타면서 캘리포니아의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까지 전한다. 그야말로 '키치'고, '참을 수 없는 배심원들의 가벼움'이다.

#키치와 얄팍함은 배심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키치다. 스티브 잡스를 혁신의 선구자, IT혁명의 선도자로만 알지만 그와 그가 만든 세계 최강기업 애플의 또 다른 얼굴을 봐야한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온다'는 피카소의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과거 제록스의 알토라는 컴퓨터를 베껴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애플은 삼성전자를 '카피캣(Copycat)'이라고 조롱하지만 카피캣의 원조는 잡스와 애플이다.

그런 흉내쟁이의 원조 잡스와 애플은 빌 게이츠가 자신들의 매킨토시를 모방해 윈도우를 개발하자 도둑질을 했다며 격분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하청업체였고 자국기업이었기 때문에 격노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번에 애플은 이국기업 삼성전자에 대해 핵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IT와 인터넷 생태계의 기본정신은 공유와 소통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 IT와 인터넷의 세계중심지 실리콘밸리 배심원들은 스마트 폰과 태블릿PC 시장을 통제하고 독점하려는 애플에게 미국시장을 내주는 평결을 내렸다.

아울러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오픈된 기업에서 다른 기업을 괴롭히고 IT기기 이용을 제한하는 데 자신들의 엄청난 기득권과 자금을 사용하는 기업임을 선언해 버렸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얼마나 얄팍한가.

그러나 삼성의 지적처럼 시장에서 혁신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않고 특허라는 수단으로 경쟁사를 누르려고 한 회사가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없다. 시장과 소비자들은 혁신하는 쪽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삼성은 분노할 필요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물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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