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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편하면 행복하지 않다

[웰빙에세이] 120만원에 한달 살기-6 : 불편한 진실과 즐거운 불편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2.09.03 12:15|조회 : 18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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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켄세이. 1961년생. 기자. 나랑 동갑이다. 직업도 같다. 다만 그는 지금도 열심히 뛰는 현역이다.

그가 '즐거운 불편'이란 실험을 했다. 기간은 199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이다. 자신이 앞장서고 아내와 두 딸이 함께 하는 4인의 가족 실험이다.

◆불편해서 즐겁다

즐거운 불편!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하는 불편, 더 큰 즐거움을 위한 불편, 진정한 기쁨을 위한 불편…. 이런 뜻이다. <자발적 가난>과 다르지 않다. <120만원에 한 달 살기>도 같은 취지다.

그렇다면 후쿠오카 켄세이가 즐긴 불편은 어떤 것일까? 아래는 간추린 목록이다.

 1. 자전거로 통근한다.
 2.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3. 도시락을 갖고 다닌다.
 4. 원칙적으로 잔업을 하지 않는다.

 5. 외식하지 않는다.
 6. 자동판매기에서 음료수를 사지 않는다.
 7. 커피, 홍차를 마시지 않는다.
 8. 컵라면이나 가열식품을 먹지 않는다.
 9. 제철 채소나 과일이 아닌 것은 먹지 않는다.
 10. 수입과일,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앓는다.
 11. 된장, 매실짱아찌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12. 설거지할 때 뜨거운 물을 쓰지 않는다. 대신 고무장갑을 낀다.
 13. 알루미늄 호일, 일회용 접시는 씻어서 재활용한다.
 14. 전기밥솥으로 보온은 하지 않는다.
 15. 음식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한다.

 16. 목욕과 빨래는 원칙적으로 이틀에 한 번 한다.
 17. 샴푸, 린스, 식기용 세제를 쓰지 않는다.
 18. 티슈를 쓰지 않는다. 콧물도 손수건으로 해결한다.
 19. 전기청소기를 쓰지 않는다. 카펫이 깔린 아이들 방만 예외다.
 20. 다리미를 쓰지 않는다.
 21. 고장이 나면 최대한 수리해서 쓴다.

 22. 밭을 빌려 무농약 채소를 기른다.
 23. 논을 빌려 무농약 오리농법 쌀을 자급한다.

나는 어떤가? 솔직하게 따져보자.

1~4번은 직장 일이다. 그는 13.5㎞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전철로 가면 30분인데 자전거로 가면 한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를 피하는 것은 취재할 때도 같다. 나는 아직 자전거보다 차, 계단보다 엘리베이터가 우선이니까 내가 그보다 훨씬 편하게 산다. 직장 다닐 때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잔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세운 바 없다. 세워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5~11번은 먹는 일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대체로 지키는 것들이 많다. 외식하는 일이 별로 없다. 자판기 음료, 홍차, 컵라면은 즐기지 않는다. 된장은 올해 집에서 담갔다. 짱아찌도 이것저것 꽤 많이 담갔다. 소고기는 비싸고, 체질에도 맞지 않아 먹지 않는다. 삼겹살은 좋아하는데 먹는 일이 많이 줄었다. 다만 커피는 많이 마신다.

12~15번은 주방 일이다. 고무장갑은 나도 애용한다. 고무장갑을 끼면 겨울에도 찬물 설거지를 할 만하다. 일회용품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하지만 쓴 다음에는 대충 버린다. 음식 찌꺼기는 EM이란 미생물 발효액을 섞어 퇴비로 활용하는 방법을 써보는 중이다. 전기밥솥으로 밥만 하는 것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밥을 며칠씩 보온 상태로 두는 것은 삼가야겠다.

16~21번은 집안일이다. 목욕은 하루나 이틀 걸러, 빨래는 최대한 모아서 하려 한다. 소소한 청소는 빗자루로 한다. 다리미는 요즘 쓸 일이 없다. 샴푸, 식기용 세제, 티슈는 애용한다. 이걸 금하는 불편을 즐길 수 있을까?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쓰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구석에 밀쳐놓고 잊어버린다.

22~23번은 농사일이다. 텃밭이야 우리 집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논을 빌려 쌀을 자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는 100여 평의 논을 빌려 논농사에 도전한다. 품앗이로 모내기를 한 다음 무논에 오리를 풀어 잡초와 해충을 없앤다. 벼도 낫으로 직접 베어 말린다. 직장 일을 다 하면서 쌀을 자급한다.

◆진정한 쾌락은 불쾌와의 경계선에 존재한다

그가 이런 '불편한 실험'을 한 것은 에너지와 물자의 소비량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불편한 진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명을 버리고 원시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그는 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물질(정보나 쾌락, 편리라는 이름의 상품을 포함한) 가운데 대부분은 실제 인간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게 아니라 단순히 중독처럼 사용하는 것들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건 나도 묻고 싶다.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은 행복인가, 중독인가? 후쿠오카 켄세이는 "우리가 물질이 주는 안락이나 쾌락에 빠져 중독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면 약물중독자가 불행한 것처럼 우리도 행복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추운 문 밖에 있다가 난방이 잘 된 따뜻한 방으로 들어왔을 때는 안락과 쾌락 모두가 만족되지만, 계속 따뜻한 곳에서 지내다 보면 안락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쾌락은 아니게 된다. 또한 휴식은 언제나 안락하기는 하지만, 지쳐 있을 때의 휴식이야말로 진정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충분한 안락 안에서는 육체적 혹사 등의 자극이야말로 쾌락의 원인이 되고, 그 뒤에 오는 평온함도 또 다른 쾌락이 된다. 즉 '불완전하고 단속적인 안락에서 진정한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완전하고 지속적인 안락은 쾌락과는 양립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현대인은 너무 편해서 탈이다. 너무 편해서 쾌락 불감증에 걸렸다. 그러니 조금 덜 편하게 해보자. 불편할 때가 있어야 편할 때 편한 걸 알 것이다. '진정한 쾌락은 불쾌와의 경계선에 존재한다!' 편안은 불편과의 경계선, 상쾌·통쾌는 불쾌와의 경계선, 행복은 불행과의 경계선에 있다. 불편할 때 이걸 넘어서면 편안이 오고, 불쾌할 때 이걸 넘어서면 상쾌·통쾌가 오고, 불행할 때 이걸 넘어서면 행복이 온다는 걸 정녕 모르시는가.

"다수의 편리함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은, 이미 안락의 측면에서는 거의 완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안락의 추구로는 더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더욱 강한 자극, 즉 쾌락을 요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편리함을 적당하게 줄임으로써 안락을 불완전하고 단속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그때 발생하는 불편으로 인한 자극을 쾌락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쾌락의 증가량에서 안락의 감소량을 뺀 값이 최대치가 되도록 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에너지나 물질의 소비를 줄여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지고, 나아가서는 인간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즐거운 불편'은 '1타2피' 짜리다. 한 개의 불편으로 두 개의 快를 잡는다. 지구는 상쾌하고, 나는 통쾌하다. 후쿠오카 켄세이의 '즐거운 불편'은 그래서 정말 즐거웠을까? 다음은 그의 소감이다.

"먹을 양식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고생이 따랐으며, 고층빌딩을 계단을 이용해 오르고, 비 오는 날 편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춥다. 산다는 것은 이 정도로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 지금처럼 불손해진 것은, 아마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작업이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 그런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즐겁기도 하다는 것, 사람들과 몸으로 부딪혀가며 이웃이 되기도 하고, 오감을 다 동원하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걸 보다 선명하게 실감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는지? 부담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폭염에 겨울을 대비하다

8월은 정말 더웠다.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나는 더위에 갇혔다. 시골에서는 에어컨을 잊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무실, 카페, 서점, 마트, 버스, 전철…. 도심 곳곳의 서늘한 바람이 그리웠다. 그러나 무더위의 불쾌를 참아내기로 했다. 산다는 것은 그 정도의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니까.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 추워야 봄에 더 따뜻하고 가을에 더 상쾌할 테니까.

한 여름에 에어컨의 유혹을 떨치고 보일러 기름을 한 드럼 넣었다. 200리터에 26만5000원이다. 5, 6, 7월 석 달 동안 가계를 압박하던 자동차 보험료를 다 냈고 그 외에 별 다른 씀씀이도 없어 모처럼 여유가 있었다. 이 기회에 겨우살이 대비를 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반 드럼만 채우려다 여력이 돼 한 드럼으로 늘렸다. 그래도 수지가 맞는다. 내가 69만6000원, 동생이 49만7000원을 썼다. 합해서 119만3000원. 딱 7000원 남는 균형 가계부다.

한 달 120만원에 지낸지도 반년이 지났다. 여섯 달 가운데 다섯 달 한도를 지켰으니 성공이다. 여섯 달 전체로도 720만원 한도에 713만원을 써 7만원을 남겼다. 살림은 빠듯했지만 마음은 빠듯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적당히 부지런하고, 적당히 게으르게 살았다. 큰 걱정이 없었다. 평안했다. '한 달 120만원'이란 불편이 가져온 '安'이다. 그 '安' 에 안주해 '快'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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