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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

[웰빙에세이] ‘조금 더’의 함정, ‘다음에’의 덫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2.10.23 12:15|조회 : 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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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를 문 채 고깃배 옆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어부를 보고 어느 사업가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 다 잡았소."
"왜 더 잡지 않소?"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더 벌어야지요. 그러면 배에 모터를 달아서 더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잖소. 그렇게 되면 나일론 그물을 사서 고기를 더 많이 잡고 돈도 더 많이 벌게 되지요. 당신은 곧 배를 두 척이나 거느릴 수 있게 될 거요. 아니, 선단을 거느릴 수도 있겠지. 그러면 당신은 나처럼 부자가 되는 거요."
"그런 다음에는 뭘 하죠?"
"그런 다음에는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거지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40대 중반의 어느 날 나를 일깨운 일화 한 토막이다. 그것이 존 레인이라는 분이 쓴 <언제나 소박하게>라는 책에서였다. 오랜만에 이 책을 찾아 펼쳐보니 간단한 메모가 있다. <우연히 발견한 책- 안양 대동서적에서 2004. 1. 2>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2003년 마지막 날. 진한 망년회를 하고 새벽녁에 타고 가던 택시가 집 근처 사거리에서 사고를 냈다. 교통신호를 어긴 채 좌회전하다가 마주오던 차와 충돌한 것이다. 그 일로 2004년 벽두부터 사흘간 병원 신세를 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사고를 반겼다. 크게 다친 데 없이 병원 침대에 누우니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그 즈음 일이 몹시 버거운데다 연말연시 술자리가 많아 고단하던 차에 며칠간의 병가를 얻은 셈이 됐다. 누구나 앓아눕는 것 이외에는 머리에 이고 어깨에 메고 등에 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없을 때가 있으리라. 인정사정 없이 굴러가는 일상의 쳇바퀴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을 때가 있으리라.

아무튼 사흘을 쉬고 퇴원하는 길에 눈에 띈 곳이 대동서적(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방은 안양에서 꽤 유명하고 유서 깊은 서점이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다)이고, 그 책방에서도 외진 구석에 단 한 권 꽂혀 있는 책이 <언제나 소박하게>였다. 그 망년회와 그 택시와 그 사고와 그 병원과 그 책방 등 여러 개의 우연이 겹쳐 내 손에 들어온 책. 일상의 루트에서는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그 책이 내 눈에 뜨인 건 순전히 보물찾기 같은 행운이었다.

그 책의 맨 앞에 실린<어부 이야기>는 이후 비슷한 버전을 여러 번 봤지만 나는 지금도 이것이 가장 좋다. 그것은 지난 10여 년간 내 머릿속의 화두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무엇이든 욕심이 앞서 더 하고, 더 벌고, 더 이루고, 더 챙기고, 더 쟁이려 할 때 나는 묻는다. "더 해서 뭐하게?"

혹시 요즘 같은 첨단 세상에 <어부 이야기>가 고리타분하다면 최신판으로 바꿔보자. 먼저 <샐러리맨> 버전.

그날의 업무를 마치고 쉬고 있는 직원을 보고 사장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일을 안 하나?"
"다 했는데요."
"더 찾아서 해야지"
"더 해서 뭐하게요?"
"성과를 높여야지. 그래야 남보다 앞서고 승진도 하지. 승진해야 임원도 하고 사장도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성공하고 연봉도 올라 부자가 되지."
"그 다음에는 뭘하죠?"
"그 다음에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거야"
"제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요즘에 이런 간 큰 직원은 없겠지. 다음은 <가게 주인> 버전

밤늦기 전에 장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는 주인에게 손님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벌써 문을 닫아요?"
"오늘 다 팔았어요."
"왜 더 팔지 않죠?"
"더 팔아서 뭐 하게요?"
"돈을 더 벌어야죠. 더 벌면 가게를 늘릴 수 있고, 몇 개 더 낼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 백화점 사장 같은 갑부가 될지 어찌 알아요."
"그 다음에는 뭘하죠?"
"그 다음에는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거죠."
"제금 지금 무얼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요즘에 이런 덜 떨어진 가게 주인도 없을 것이다. 다음은 <학생> 버전

그날의 공부를 마치고 책을 덮는 학생에게 선생님(아니면 엄마가)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공부를 끝내나?"
"다 했는데요."
"더 해야지."
"더 해서 뭐하게요."
"성적을 올려야지. 성적이 올라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직장을 잡아야 성공하고 돈도 벌지."
"그 다음에는 뭘하죠?"
"그 다음에는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거야."
"제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요즘에 이런 얼빠진 학생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누구에게나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은 '오늘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맨 나중에 큰 부자가 되어서 할 일이다. 아니면 갑자기 죽을 날을 받아 들고 빈 종이에 써보는 '버킷 리스트'에나 올릴 일이다. 그 옛날의 어부든, 오늘날의 샐러리맨이든, 가게 주인이든, 학생이든 예외는 없다.

'더 하는 것'의 함정은 넓고 깊다. 아차 하면 빠진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완전히 푹 빠지면 그곳이 함정인지도 모른다. 내 삶은 "조금 더, 조금 더". "나중에, 나중에", "다음에 다음에"를 외치다가 종친다. 노는 것도 나중, 쉬는 것도 나중, 사랑도 나중, 여행도 나중, 잘 먹고는 것도 나중, 나중, 나중, 나중, 나중……. 대학에 들어간 다음, 취직한 다음, 결혼한 다음, 내 집 마련한 다음, 애들 다 키운 다음 다음, 애들 시집 장가 간 다음, 손자 손녀 돌본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그러니 무엇이든 선을 긋지 못하고 자꾸 더하려 할 때 되물어 볼 일이다. "더 해서 뭐하지?" 그것의 마지막 답은 언제나 "느긋하게 인생을 즐긴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즐겨라. 하고픈 것을 지금 당장 하라. 그러지 않으면 나는 '조금 더'의 함정에 빠진다. '나중에'의 덫에 걸린다. 나는 더 갈 필요가 없는데 자꾸 간다. 무작정 가면서 삶을 바쁘게 한다. 복잡하게 한다. 버겁게 한다. 고단하게 한다. 낭비한다. 소모한다. 삶은 다음이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 바로 여기다.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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