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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이 3조원 주고도 못 살 하루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2.11.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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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떠난 여행길이다.
고2짜리 둘째가 바다도 보고싶고 조개구이도 먹고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서울시내 면허가 지겨워 고속도로를 달리고픈 큰놈의 부추김이 곁들여진 건 눈치로 감잡았다. 네 식구가 인제로 접어들 때까지 하늘은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백담사입구에 차를 세우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갠다. 베테랑 드라이버가 모는 셔틀버스는 백담사 계곡의 풍광을 롤러코스트타듯 다이내믹하게 전해주었다. 백담사에서 네식구 오랜만에 기념촬영도 ‘한 컷’ 했다.

고속도로 첫주행이 제법 만족스러워 큰아들에게 운전대를 내처 맡긴 후 ‘다음 스케줄은 운전수 맘대로’ 했더니 살풋한 잠결에 지 엄마와 도란도란 상의해가며 어딘가를 찾고 있다. 한잠 까무룩한 후 차가 멈춰 내려보니 예전에 한번 왔던 속초 청호동 아바이순대마을의 음식점앞이다.

“조개구이 먹자며?”했더니 그건 지 동생 기호고 저는 순대국이란다. 그래 먹자. 오징어순대, 순대국, 회냉면을 먹고 해변을 좀 걸었다. 집사람이 월정사 전나무숲 산책이란 아이템을 들고나와 다시 부지런히 주문진으로 내려갔다.

주문진에서 조개구이를 먹는데 작은 놈이 거의 흡입한다. 제딴엔 해묵은 소원이었단다. 순식간에 3만원짜리를 독판 비워놓고는 입을 쩝쩝한다. 이미 도루묵구이도 먹어놓고... 불과 시간반 전엔 회냉면도 먹어놓고... 속으로 간당간당한 지갑사정을 헤아리며 “더 먹을래?” 물어본다. 다시 3만원짜리 한판 시키니 녀석이 신이 났다. 큰 놈도 쌩쌩해 보이는 게 귀경길도 맡길만하다. 에라 나도 소주 한병이다. 작은 놈이 못해치운 관자들을 긁어가며 소주 한병을 비우니 기분이 좋다.

이미 해가 뉘엿한지라 집사람 스케줄 전나무숲 산책은 포기하기로 했다. 진고개를 넘어 진부로 들어서니 거기 사는 친구 목소리라도 듣고싶다. “그냥 지나가련다” 전화하니 부득불 들르란다. 친구가 대접하는 커피 한잔씩 마시고 두 아들놈은 친구가 쥐어준 5만원짜리를 용돈으로 챙겼다.

돌아오는 길. 날도 어두어져 볼 것도 없고 자멘깨멘 생각해보니 참 행복한 하루였다 싶다. 툭 치면 푸른 물이 주르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있었고 손이라도 담갔다간 파란물이 들어버릴듯한 바다도 보았다. 무엇이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였나? 백담사의 단풍, 옥류, 조개구이 흡입하는 작은 아들 입, 고개를 꺾어가며 운전에 열중하는 뜸직한 큰 놈, 종알종알 대며 애니팡에 몰두하는 마누라 뒷통수, 친구의 환대, 그리고 소주 한병의 얼큰한 자취...

그 순간 3조 5천억원 삥땅친 조희팔이란 위인이 떠오를 건 뭐람. 삶의 바닥을 훑는 구차함과 옹색함이 훅 끼쳐온다. 3만명을 울리고 돈을 훔쳐냈으니 참 잘도 살겠다. 중국땅에서 죽었다더니 위장이란다. 조선족 조폭의 보호를 받고있고 성형했단 말도 돈다. 돈 받아먹고 비호한 부장검사가 잡혀들어가면서 수사도 재개된 모양이다.

제 얼굴 들고 살 수 없는, 살아도 죽었달 수밖에 없는 구차함이 어떠한가? 3조원 돈꾸러미를 이 계좌 저 계좌 꿍처놓고 절절매는 옹색함은 또 어떤가? 어둠과 그늘만 골라 돌아다니며 어쩌다 대명천지에 나섰다간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을 심사인데 절세가인 끼고 루이 14세를 마시면 뭐할란가 싶다. 장담하건데 조희팔이 숨겨논 전 재산을 내걸어도 오늘 내가 보낸 하루를 사지는 못하리라. 그렇게 나는 오늘 3조원짜리 하루를 보냈다.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이 ‘足不足’이란 시를 썼다. 그 시 중에 ‘求在我者無不足 求在外者何能足(구재아자무부족 구재외자하능족)’이란 시구가 있다. “내게 있는 것을 구하면 족하지 않음이 없지만 밖에 있는 것을 구하면 어찌 능히 만족하리” 이어지는 구절에서 ‘一瓢之水樂有餘 萬錢之羞憂不足(일표지수낙유여 만전지수우부족)’ “표주박 한바가지 물로도 즐거움은 남아돌고 값비싼 진수성찬으로도 근심은 끝이 없네” 라고 노래했다.

하기사 정작 그런 시를 지은 구봉조차 노비신분을 떨치고 양반복귀하고자 정여립을 고변하여 기축옥사를 일으켰으니 인심(人心)이야말로 난측(難測)이다. 조희팔이 그러거나 말거나 구봉이 그랬거나 말거나 당장의 시간이 고맙고 같이 한 가족이 새삼 애틋해짐을 느끼며 그날 하루를 마감했다. 제 멋에 스스로가 황제였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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