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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영화는 멘토다] 11. 아무르..사랑은 상대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

영화는멘토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입력 : 2012.12.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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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내 앞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단/ 얼굴들일세'. 일본의 대표적 '하이쿠'(俳句) 작가인 마쓰오 바쇼의 시다.

그렇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병으로 인한 죽음의 목전에서 받는 고통에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때엔 그렇게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사실 자체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다.

예전 어느 설날 무렵이었다.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노환으로 심장이 너무 안 좋으셔서 막 입원하셨다. 거동조차 힘드셨다. 사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외할머니 곁을 지키던 이모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대신 그날 엉겁결에 대신 수발을 했다.

외할머니는 소변을 병상에서 보셔야 했다. 손자가 잡아드리는 데도 팔순의 외할머니는 그게 너무나 싫으셨나 보다. 한번 그러시더니 다음번에 화장실을 굳이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부축을 해드리고 힘겹게 화장실을 다녀오셨다.

하지만 심장에 무리가 갔다. 물을 달라고 하셔서 드렸는데 한 모금 드시더니 조금 후 의식을 잃으셨다. 의사를 급히 불렀다. 의사는 이리저리 해보더니 중환자실로 옮겨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으라고 했다. 외할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것을 자책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굳센 외할머니에겐 편한 용변보다는 손자에게 험한 꼴 안보이겠다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아무르>는 제목처럼 노부부의 사랑에 관한 헌사이자, 존엄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앞서 이미 칸에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거장 미카엘 하네케가 감독했다.

영화엔 실제 80대인 노배우들이 출연한다. 반신마비와 치매가 온 아내를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다. 남에게 자신의 바닥을 보이기 싫어 병원에 보내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을 남편은 끝까지 들어준다. 남편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아내의 자존감을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끝내 지켜낸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고, <타임>지가 뽑은 '2012년 최고의 영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년 1월 예정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남편의 무덤한 표정과 눈빛엔 아내와 함께 보낸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삶의 자취는 이 노부부의 깊게 패인 주름에 오롯이 묻어 나온다.

남녀 간의 사랑에는 삶의 단계별로 여러 형태와 종류가 있을 텐데, 그 중에서도 상대와 약속을 지켜내고 이를 통해 상대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내 생명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나부터 누구에겐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사랑하다 간다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함석헌님의 시구가 머리를 스친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족. 이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데 별 의미가 없다 여겨 별도로 언급은 안 했지만 그래도 소개는 해야 하겠다. 남편 조르주 역할을 맡은 노배우는 사랑 영화의 고전 '남과 여'의 주인공인 장 루이 트랭티냥이다.

할머니 안느 역은 누벨바그의 고전 <히로시마 내 사랑>의 주연 에마뉘엘 리바가 맡았다. 긴 세월 속에서 멋진 신사는 온화한 할아버지가 됐고, 아름다웠던 여인은 고고한 할머니가 됐다. 이 두 노배우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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