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칼럼]'국민행복시대'의 조건

어떤 한 단어의 가치는 반대말을 떠올리면 아주 선명해진다. 삶이 뭐냐고 하다가도 죽음을 떠올리면 그 소중함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요즘 화두인 행복은 어떤가. 사회적으로 만연된 불행을 보면 그저 편안하게 작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행복으로 그리게 된다.

한국 사회가 불행하다는 건 이젠 새삼스러운 말은 아니다. 굳이 행복의 성적표가 세계 하위권이라든가 하루에 40 명이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가슴 아린 사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같이 척박한 현실을 반영해 행복은 이번 대선에서도 메인 메뉴에 올랐다. 새누리당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가동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쉽고도 어려운 본질적 질문을 던져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가진 것을 욕심으로 나눈 게 행복이라고 한다. 가진 게 많을 수록, 또는 욕심이 작을수록 행복해진다는 얘기. 가진 게 많아도 욕심이 더 크면 불행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행복 방정식'의 분자인 '가진 것'은 재산이나 소득 같은 물질이다. 반면 분모인 욕심은 마음의 문제. '국민 행복'은 어느 한 쪽만이 아닌 둘 다 조화를 이룰 때 실현될 수 있다.

유엔은 지난해 7월 회원국들이 사회 경제적 발전을 추진할 때 행복을 더 중시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가 '행복한 국가'로 손꼽히는 부탄의 사례를 근거로 쓴 '행복의 경제학'은 새 정부가 귀담아 들을 조언들을 담고 있다.


삭스는 먼저 경제발전, 즉 성장의 중요성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의미 있는 일자리가 공급돼야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고용률을 경제운용의 목표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성장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제시하지 않은 성장률 목표치는 경제운용의 한 목표로서 공표되는 게 맞지 않을까?

다음으로 일방적인 GDP 추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삭스는 힘주어 말한다. 미국의 경우 지난 40 여 년간 GDP가 크게 늘어났지만 하층민이 늘어나는 등 행복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결함 때문에 부탄은 국민총행복(GNH)을 경제 운영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사르코지 집권 시절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등 석학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GDP가 잘못된 지표임을 입증하고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 지표를 모색해왔다. 새 정부는 국민 행복을 국정 운용의 목표로 삼은 만큼 이를 측정할 적절한 지표의 개발과 활용에도 주력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고 본다. 지표는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는 처방전을 제시하게 하는 중요한 향도이기 때문이다.

삭스는 또 행복은 사회와 개인이 삶에 대해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물질적 필요가 충족돼도 가족, 친구 등과 같은 건강한 공동체적 관계, 내적 균형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말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면 족하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문화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 이슈에 뒷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행복의 인프라인 문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 또한 간과돼서는 안 된다.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여유로운 삶의 여백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 그 꿈의 깃발이 올려진 만큼 말이 아닌 꾸준한 실천의 발걸음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