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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와 타티스 '치욕의 그날' 이후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3.01.05 10:04|조회 : 8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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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가 2000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LA 카운티 공로상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야구 인생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던 ‘그 날’의 치욕을 극복해냈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
↑ 박찬호가 2000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LA 카운티 공로상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야구 인생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던 ‘그 날’의 치욕을 극복해냈다. ⓒ 머니투데이 자료사진

박찬호가 2013년 1월1일, 계사년 첫날 방송된 SBS 2부작 특별 프로그램 ‘땡큐-스님, 배우 그리고 야구 선수’에 출연해 자신이 걸어온 야구의 길, 인생관을 진솔하게 털어놓아 시청자들과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함께 한 배우 차인표는 오래 전부터 박찬호가 절대적으로 믿는 ‘바른 생활의 사나이’로 전성기 시절의 그에게 무엇을, 누구를, 어떤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박찬호는 2004년 입적한 숭산 스님과도 인연을 맺은 바 있는데 프로그램을 함께 한 혜민스님과도 자연스럽게 교감을 나눴다. ‘땡큐’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세 사람이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교롭게도 2012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한국 시간, 미국 12월30일)은 박찬호의 야구 인생에 대 참사(慘事)로 기록된 ‘그 날’과 관계가 깊다.

야구 분석가인 빌 제임스 등에 의해 2004년 서비스를 시작한 메이저리그 뉴스 웹사이트 ‘더 하드볼 타임즈(The Hardball Times)’는 이날을 페르난도 타티스가 박찬호에게 1이닝에 2개의 만루홈런을 터뜨린 후 5000일이 지난 날이라고 특별 기사로 소개했다. 13년도 더 흘렀지만 메이저리그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날’은 미국 LA 현지 시각 1999년 4월23일 금요일이었다.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 병역 문제를 해결한 박찬호(당시 26세)는 1승1패를 기록중인 상태에서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 선발 등판했다.

이날 세인트루이스 중심 타선에는 3번에 마크 맥과이어, 4번에 페르난도 타티스, 5번 제이 디 드루가 포진했다.

마크 맥과이어는 전 년도인1998년 70홈런 고지에 올라서며 1961년 로저 매리스가 작성한 메이저리그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61개)을 갈아치웠다. 그의 홈런 볼은 300만5,000달러에 경매 돼 화제가 됐는데 당시 환율로 28억원에 달했다.

세월이 흘러 마크 맥과이어는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이 밝혀져 명예의 전당 헌액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는 1998년 신기록 행진을 펼칠 때만해도 메이저리그를 넘어서는 세계적 스포츠 스타로 발돋움 했는데 그 모두가 금지 약물에 의존한 것이 밝혀지면서 과연 70호 홈런 볼이 이제는 가치가 있을지도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박찬호보다 두 살이 어린 페르난도 타티스는 세월이 흘러2007년 스프링캠프 때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초청 선수로 참가한 바 있다.

그 때도 그에게는 ‘1이닝 2만루홈런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선수’라는 설명이 뒤따랐고 상대투수가 박찬호였다는 것이 항상 꼬기표 처럼 붙었다. 당시 그의 LA 다저스 입단을 보도한 LA 타임즈는 박찬호의 이름을 기사에 고딕으로 표기했다.

필자는 당시 현장에서 그 경기를 취재했다. 당시 기록지를 살펴보니 LA 다저스가 세인트루이스에 2-0으로 앞선 3회초 수비였다.

박찬호는 세인트루이스 1번 대런 브래그에 우전안타, 2번 에드가 렌테리아는 힛바이 피치드볼, 3번 마크 맥과이어를 우전안타로 진루시켜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1회 2루수 땅볼로 처리했던 우타자 페르난도 타티스를 만났는데 볼카운트 투볼의 불리한 상황에서 던진 공이 실투로 연결 돼 가운데 높은 패스트볼이 되고 말았다. 좌월 역전 만루홈런이었다.

박찬호는 이어 제이 디 드루를 1루수 땅볼로 잡은 뒤 솔로홈런(엘리 마레로)을 내주었다. 투수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LA 다저스 데이비 존슨 감독은 침묵했다.

연속 볼넷과 수비 실책까지 이어져 다시 만루가 됐고 박찬호는 풀카운트 사투를 벌이다가 타티스에게 또 다시 좌중월만루홈런을 허용했다. 구질은 커브였다. 그제야 투수교체가 이뤄졌다.

한 타자가1이닝에 2개의 만루홈런을 쳤다는 사실이 가장 부각됐지만 개인 1이닝 8타점 역시 메이저리그 기록이다.

페르난도 타티스는 1999시즌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대기록을 작성하며34홈런 107타점으로 시즌을 마쳐 단숨에 슈퍼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부상 등이 겹치면서 2004년 3월 탬파베이에서 스프링캠프 도중에 방출됐다. 2004, 2005시즌을 완전히 쉰 그는 2006년 볼티모어에서 겨우 28경기에 출장하며 5개 포지션을 오가기도 했다. 어떤 구단도 더 이상 그에게 주전 3루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페르난도 타티스에게는 ‘1이닝 2 만루홈런’이라는 대기록이 재앙을 불러왔다. 스스로 대단한 선수라고 착각해 훈련을 게을리했고, 쾌락에 빠져 천부적인 재능을 잃게 됐다.

타티스는 이후 뉴욕 메츠에서 힘겹게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2008년 9월 어깨 부상까지 당해 한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부상 당한 알렉스 로드리게스 대신 도미니카 공화국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으나 2010년7월4일 출장을 끝으로 초라하게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통산 기록은 타율 2할6푼5리, 113홈런 448타점이었다.

인연이라는 것은 ‘우연’인지도 모른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해도 타티스와 같은 2010년이었다. 그러나 피츠버그 소속이었던 박찬호는 10월2일(한국 시간) 플로리다전에 구원 등판해 자신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등판에서 일본인 투수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며 아시아 출신 최다승 신기록(124승)을 작성했다.

1999년 4월의 ‘그 날’ 역사적인 치욕을 당했던 박찬호와 대기록의 영광을 누렸던 페르난도 타티스는 이렇게 다르게 야구 인생이 펼쳐졌다. 박찬호는 절치부심해 메이저리그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고 타티스는 오만해지면서 곧 바로 쇠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박찬호는2011년 일본프로야구를 거쳐2012시즌에 고향 팀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에서1년을 활약한 뒤 은퇴를 하고 드디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문득 페르난도 타티스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누가 앞 날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 다만 겸손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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