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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그 이후'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머니투데이 김준형 경제부장 겸 금융부장 |입력 : 2013.01.08 10:02|조회 : 1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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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개봉한 뮤지컬영화 ‘레 미제라블’ 관객이 400만명을 돌파했다.
사람 모이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화제가 되고 있는 '레미제라블'의 흡인력은 음악이나 연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폭력적 역사의 소용돌이에 삶이 걸쳐 있는 40대 이상 세대들은 시대적 배경과 역사의 무게가 주는 울림이 더 컸을 듯 하다.

이참에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산업혁명 전후 프랑스의 역사를 되돌아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역사의 '데자뷰(기시감)'가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느낌도 많은 이들이 공유했을 듯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40여년이 지난 1832년 6월초. 수백명의 공화파 청년들이 구불구불한 골목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작은 항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무리 지형 지물을 이용한들 이들은 2만명이 넘는 정규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당시 프랑스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앞서 규격부품을 이용해 머스킷(장총)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이 발전했다. 이를 통해 군대의 무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의 머스킷 제조방식은 프랑스 대사였던 토머스 제퍼슨을 통해 미국에 전파돼 근대적 자본주의 기업 생산방식의 초석을 놓는다.)

2열종대로 늘어선 군인들의 머스킷이 불을 뿜자 허술한 바리케이드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청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결정적인 순간에 시민들은 창문을 닫고 돌아서 숨을 죽였다. 어느 기록은 이날 항쟁으로 2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적고 있다. (진압이 끝난뒤 굴비처럼 줄 맞춰 누워있는 영화 속 시신들의 모습...우리 현대사에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공화파 청년들이 승산없는 '6월 항쟁'에 나서게 만든 것은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그 자체였다. '독재자'와 '시대정신'의 양면성을 지녔던 나폴레옹의 시대가 가고, 1814년 '빈 체제'로 들어선 복고왕정도 1830년 7월 혁명으로 무너졌지만, 민중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7월혁명 이후 혼란기 과도정부로 들어선 루이 필립 국왕은 과거의 독재자보다 한 술 더 떴다. 부자들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것은 물론, '정치풍자 금지법'을 만들어 작가들까지 잡아 가뒀다. '6월 항쟁'이후 권력이 다시 민중의 손으로 1848년 2월혁명까지는 1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1980년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진 권력릴레이가 끝나는 1997년까지 걸린 시간은 17년이었다.)

1848년 2월 혁명을 통해 처음으로 (비록 남성들 만이지만) 보통선거가 도입됐다.
하지만 혼란을 두려워한 프랑스 국민들은 '안정'을 택했다. 900석 의석 가운데 온건 공화파가 800석을 차지한 것.
이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해외에서 '집권 수업'을 해온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질서당' 대표로 나서 700만표중 550만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프랑스 첫 대통령이 된다. (지난 12월 선거에서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은 루이 나폴레옹에 비하면 오히려 득표율이 부진한 셈이다.)

'대혁명'의 성과를 왕족에게 바치고, '독재자' 나폴레옹의 조카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선택이 역사책에 두고두고 '어리석은 일'로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선택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든 그 선택의 궤적에 맞춰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레 미제라블'에 담긴 프랑스 역사는 우리 대통령 선거로 생채기가 생긴 사람들에게줄 수 있는 '힐링(healing)'이라면 이런 대목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경계해야 할 역사는 '레미제라블' 그 다음이다.
루이 나폴레옹은 '큰 아버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당선된지 불과 4년뒤 나폴레옹처럼 스스로 또 황제가 된다. 나름대로 개혁 정책을 펴기도 하지만, 전쟁으로 권력을 이어간 끝에 프로이센에 패해 몰락하고 만다. 그 여파는 파리 시민 3만여명이 학살되는 '파리코뮌'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행여라도 루이 나폴레옹의 역사까지 닮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는 위안보다는 교훈이 필요하다. 새 정부를 이끌어갈 인사들이 '레 미제라블'이후의 역사까지 읽어봤으면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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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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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jhjhkimkim  | 2013.04.08 09:18

그렇지. 한반도를 핵 앙화의 구덩이로 밀어넣은 만고역적 개대중이의 집권까지 17년이 소요되었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역적 핵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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