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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아름답다

[웰빙에세이] 그 길은 아름답다-1 /나의 길 외에 다른 길은 미련의 길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3.01.15 12:01|조회 : 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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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아름답다>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시 <그 길은 아름답다>. 신경림 시인의 시다. 나는 이 시를 아들·조카와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묵은 민박집에서 처음 보았다. 그 집 한쪽 벽면에 큼지막하게 걸개해 놓은 시가 너무 좋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뜻을 헤아렸다. 가난이 싫어 떠난 시골, 욕망이 들끓는 도시, 외진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같은 삶, 설움과 향수, 그것을 넘어 터벅터벅 가는 길…. 그렇게 산 분들이 많으리라. 인생길이 바로 그러했으리라. 험하고 모질었으리라. 꼭 그와 같진 않더라도 누구나 젊어서 밖으로 나돌다가 나이 들어 돌아가는 길을 따라 황혼에 이르리라.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아름답다
우연히 다른 책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한 편 더 만났다. 그런데 이 시도 떠도는 인생길을 노래한 것이다. 외진 우체국에서, 삭막한 간이역에서, 좁은 골목에서, 지저분한 저잣거리에서, 쓸쓸한 나룻가에서 서성이고 기웃대고 머뭇거리는 삶. 시인은 항상 길에서 삶을 떠올리나 보다. 길에 특별한 정서가 있나 보다.

<떠도는 자의 노래>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는 인생길이 전생에서 이승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져 있다. 삶의 여행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가 아니다. 그것은 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이 아득하다. 시인은 "지금도 끝도 시작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 꿈을 꾸다가 땀에 흠뻑 젖어 깨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는 틈만 나면 돌아다닌다. <민요기행>이란 두 권의 책도 전국을 누비며 발로 썼다. 그의 장시 <남한강>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에게 길은 삶이고, 시고, 문학이다. '길은 그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살던 시골은 충주에서 서울로 오는 옛날 국도변에 있었습니다. 대구를 거쳐 상주, 문경을 지나면 충주를 통과하게 되는데 바로 그 국도변에 집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만 해도 국도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가량 영남에서 오는 소장수는 우리 집 앞을 지나서 서울로 올라갔어요. 밤중이나 새벽에도 소 떼가 10마리 20마리 줄지어 지나가는 걸 보며 '나도 저 길을 따라가서 여기서 벗어나 저 멀리 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행이라는 게 제 문학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 것 같아요."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중에서

앞의 시 <그 길은 아름답다>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 시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뭐라 할까?

"그런데 도시에 나가 살면서 다시 길이라는 게 멀리 나가는 것 뿐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라는 개념이 생기더군요. 그 길을 통해서 다시 고향에 돌아가 살고자 하는 게 한 때 제 꿈이 되기도 했는데, 결국 제 문학도 길에서 생겨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시인만 그럴까. 나도 그렇다. 나에게 삶은 길이다. 긴 여행길이다. 나는 그 길을 어떻게 가고 있나? 걷고 있나, 뛰고 있나? 걷다가 지쳐 쉬고 있나? 뛰다가 숨차 헐떡대고 있나? 걷지도 못해 기고 있나? 뛰는 것도 마땅찮아 날아가고 있나? 돌부리에 채여 넘어져 있나? 다리를 다쳐 울고 있나? 나는 걷는다. 웬만하면 달리지 않기로 했다. 꼭 달리고 싶을 때만 달리기로 했다. 남들이 달린다고 덩달아 달리지 않기로 했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맨 앞에 서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 않기로 했다. 무턱대고 경주하지 않기로 했다. 몸이 걸으면 마음도 따라 걷기로 했다. 인간은 '걷는 동물'이지 '달리는 동물'이 아니니까.

걷는 데 짐은 얼마나 되나? 가벼운가, 무거운가? 차림은 어떤가? 간편한가, 불편한가? 짐은 많이 덜었다. 돈 걱정, 집 걱정, 몸 걱정, 일 걱정, 자식 걱정, 사랑 걱정…. 그 동안 참 많은 것을 이고 지고 메고 들고 다녔다. 그렇게 이고 지고 메고 들고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이젠 많이 가벼워졌다. 차림도 편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도 무겁다. 거추장스럽다. 이런저런 미련에 자꾸 이고 지고 메고 들려고 한다. 가리고 그리고 매달고 붙이려 한다. 빈손과 빈 몸을 허락치 않는다.

뛰고 또 걸어 지금 어디쯤 가고 있나? 이승으로 기준으로 하면 3분의2 쯤 오지 않았을까. 종착점은 이제 3분의1 남았다. 위치는 도시의 골목과 거리를 지나 시골의 산길 들길이다. 마라톤이라면 반환점을 돌아 원점을 향해 가고 있다.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면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걷는 길은 누구의 길인가? 내 길인가, 네 길인가? 내 길도, 네 길도 아닌 한 무리의 길인가? 나를 위한 길인가? 당신을 위한 길인가? 한 무리를 위한 길인가? 나는 내 길을 걷기로 했다. 네 길이 아닌, 무리의 길이 아닌 오직 내 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내 안에서 가라는 길이면 된다. 내가 진정 걷고 싶은 길이면 된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걷지 않았다. 남들이 가라는 길로 갔다. 남들이 가는 길로 갔다. 부모가, 선생이, 세상이 가라는 길, 그들이 무리지어 가는 길로 갔다. 그 길이 가장 큰 길이었다. 가장 붐비는 길이었다. 가장 안전해 보이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길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나의 길, 나를 위한 길을 간다. 내 안에서 흘러나와 나를 드러내는 길을 간다. 이 길이 당신을 위한 길이면 좋겠다. 여러 무리를 위한 길이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할 수 없다.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아름답다. 당신에겐 당신만의 길이 아름답다. 그 외의 다른 길은 다 떠도는 길이다.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고,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아 서성이고 기웃대고 머뭇거리는 미련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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