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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태권브이보다 센 나의 아버지

CEO에세이 머니투데이 진양곤 하이쎌 회장 |입력 : 2013.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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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태권브이보다 센 나의 아버지
깜깜한 겨울 아침의 정적을 깨는 알람소리. 떠지지 않는 눈,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많지 않은가, 출근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겨울날 아침 이불과 승강이 하다 보면 가끔씩 지난날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옛날 아랫목에서 솜이불 돌돌 말고 아버지께 출근 인사하던 까까머리 아이의 게슴츠레한 눈엔 언제나 같은 시각 겨울 새벽을 뚫고 나서는 아버지의 등이 정말 커 보였다. 나의 우상 로봇 태권브이보다 더 크고 위대해 보였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극락이구나'(고은 '아버지')라고 했듯, 자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큰 기쁨이었기에 혹한의 추위에도 웃으며 나설 수 있으셨던 게다. 내가 그때의 내 아버지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월급날엔 어김없이 구성진 노래를 부르시며 두 손 가득 과자를 사 들고 오셨다. 나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머문 저 검은 비닐봉지 속 물건을 차지하려면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에 얼른 뽀뽀를 해야 했다. 따가운 수염 사이로 풍기는 술 냄새.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겐 아버지를 닮아서 술을 분해하는 DNA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아버지의 마음')라는 시구에 눈길이 머문다. 아버지의 힘드셨을 지난 삶이 떠올라 눈물겹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같은 모습이었나 보다. 아버지를 얘기한 시에 내 가슴이 아리고, 아버지를 추억할 때면 그 쓸쓸한 당신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난 것은 위대한 지도자 덕도, 위대한 민족성 때문도 아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 보는 걸 극락으로 여기고, 눈물 담긴 술을 마시며 자식 외엔 모든 꿈을 끄고 살았던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들 덕분인 게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가난을 이겨내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 온 이 땅의 아버지들이 구조조정의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청춘 다 바쳐 뼈 빠지게 일하고선, 이제 퇴직하게 되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자식세대는 고루한 보수라며 손가락질한다. 심지어는 노령연금과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없애자고도 한다.

진보적 입장에 있었고 그래서 결과에 허탈해 했던 나로서도 이건 아니다 싶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 세대가 겪었을 모진 풍랑과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결과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대가 지금 겪고 있을 허탈함과 외로움에 대해 따뜻한 미소와 손길로 답해야 한다. 과거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 어찌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있을 수 있는가.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열린 2013 CES. 올해도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호텔 커피숍에서 한국인임을 단박에 알아 본 한 아주머니는 "1974년에 한국을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가난했던 한국이 세계최초로 100인치 규모의 TV를 만들었다는 뉴스를 봤다"며 "내가 가본 그 한국이 만든 게 맞다면 어메이징한 스토리다"라고 말한다. 그 아주머니의 기억 속에 있는 가난한 한국과 지금 세계 IT와 문화를 주도하는 한국, 그 세월의 간극을 우리 아버지들의 땀과 눈물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인을 보면 어디서든 '강남 스타일'이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젊은 세대, 아버지세대 할 것 없이 실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그래, 생각난 김에 글로벌 스타 싸이 노래 한번 불러보자. '한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고 /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 아빠는 수퍼맨이야 얘들아 걱정마'(싸이 '아버지') 이 가사에 잠시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면, 후렴구처럼 해보는 게 어떨까.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이제 다음 달이면 새로운 정부가 5년을 이끌 것이다. 지지했건 안 했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가자. 내 아버지를 추억하듯 우리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들이 보낸 세월에 감사해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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