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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車는 '프리우스'밖에 없다?

[김신회의 터닝포인트]<1>토요타 '프리우스'...뚝심으로 이룬 혁신

김신회의 터닝포인트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입력 : 2013.04.22 06:00|조회 : 6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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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세계적인 기업들이 겪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일종의 '케이스스터디'라고 해도 좋겠네요. 위기를 황금 같은 기회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토요타 프리우스(ⓒ블룸버그)
토요타 프리우스(ⓒ블룸버그)
라페라리(LaFerrari).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가 지난달 열린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의 이름이다. 950마력의 괴력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슈퍼카'다.

주목할 점은 950마력 중 161마력이 별도의 전기모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심장을 두 개 가진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셈이다.

수백만 달러짜리 슈퍼카와 하이브리드라. 언뜻 보면 이상한 궁합이지만, 페라리는 이 하이브리드 괴물에 선뜻 제 이름을 내줬다. 하이브리드가 대세임을 선언한 것이다.

1997년 10월 일본 자동차업체 토요타가 '프리우스'의 첫선을 보였을 때 하이브리드 차를 접한 시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쓴다는 것 자체가 영 이상했다. 프리우스의 테스트드라이버조차 시동 걸기를 망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험 주행 당일 비가 내려 혹시나 감전이라도 당할까봐 잔뜩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냉랭했다. 당장 프리우스 첫 모델의 외관이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인테리어에 조그만한 게 영락없는 '일본제 싸구려 차' 같다는 평가였다.

소비자들은 뭣보다 어림없는 가격에 코웃음 쳤다. 토요타가 보기에 프리우스는 간판 중형 세단인 '캠리'와 동급이었다. 그러니 2만달러는 더 받아야 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코롤라'보다도 작은 이상한 차에 그만한 돈은 쓸 생각이 없었다.

지난 2007년 7월 뉴욕타임스(NYT)에는 프리우스에 대한 기사 한 꼭지가 실렸다. 프리우스 공개 10주년에 즈음한 기사였다.

NYT는 기사 첫 머리에서 대뜸 '수수께끼'라며 질문을 던졌다. 프리우스가 그동안 미국에서 40만 대 넘게 팔렸는데, 다른 하이브리드 차가 고전하는 사이 토요타의 프리우스만 성공을 거둔 비결이 뭐냐는 거였다.

NYT의 대답은 명쾌했다. 프리우스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는 차가 하이브리드라는 걸 모두가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프리우스가 하이브리드 차의 대명사가 됐다고 에둘러 극찬한 것이다. 엄청난 반전이다.

프리우스는 이후에도 줄곧 가속페달을 밟았다. 2007년 100만 대를 돌파한 전 세계 누적 판매대수는 최근 500만 대를 넘어섰다. 지난 3월 말 현재 정확히 512만5000대가 팔렸단다. 오토데이타가 집계한 2월 말 기준 미국 하이브리드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토요타가 62.2%로 절대적이다.

일종의 '도박'으로 여겨졌던 토요타의 프리우스 개발사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자동차의 연료 효율을 강조하며, '차세대 자동차를 위한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자국 업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미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된 토요타는 연료 효율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자체적으로 저연비 차량 개발에 착수했다.

토요타를 둘러싼 환경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토요타는 여전히 싸구려에 남의 것을 베끼는 카피캣(copy cat)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큰돈을 들여 연료 효율이 좋은 자동차를 개발해도 소비자들이 믿고 사줄지가 의문이었다.

더욱이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이미 관련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힘이 달리는 전기 자동차를 반기지 않았다. 급기야 GM은 2002년 전기차 'EV1'을 포기했다.

비밀 프로젝트를 책임졌던 와다 아키히로 토요타 부사장은 소비자들에게 토요타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특히 혁신 이미지에 방점을 찍었다. 경쟁사들이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나선 이유였다. 와다는 연료 효율을 100% 개선한다는 목표로 1995년 도쿄 모터쇼에 새 차의 프로토타입(원형)을 내놓기로 했다.

엔지니어 1000명이 매달렸고, 10억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됐다. 선례가 없는 기술과 디자인 관련 문제가 연구진을 괴롭혔다. 토요타 내부에서조차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실현가능한 것이냐는 회의론이 제기됐지만, 와다는 마침내 1997년 10월 프리우스를 공개했다.

그러나 웬걸. 2000년 7월 프리우스가 미국시장에 데뷔했지만, 코롤라보다 못하다는 혹평 일색이었다. 설상가상 국제유가 하락으로 연료 효율에 대한 관심은 부쩍 줄었고, 하이브리드 차 '인사이트'(Insight)를 먼저 선보인 혼다와 경쟁해야 했다. 토요타는 할 수 없이 프리우스의 가격을 2만 달러 밑으로 낮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환경문제에 민감해진 사람들은 프리우스의 진가를 알아봤다. 토요타가 외부 평가에 아랑곳 않고 비용절감과 기술혁신에 힘쓰는 사이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독특한 외형이 일종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캐머런 디아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프리우스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프리우스의 성공으로 토요타가 혁신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평가한다. 또 프리우스가 성공한 배경에는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 끈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기술 장벽과 회사 내부의 회의론, 소비자들의 저항도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혁신은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뚝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토요타가 1993년 처음 가진 비전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내놓은 3세대 프리우스부터다. 근 20년 만에야 맺은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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