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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저주가 누군가에게 꽂힐 때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45>‘보스턴 테러’와 ‘대기업임원 기내사건’에 비친 SNS 명암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입력 : 2013.04.29 06:00|조회 : 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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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용의자로 오인됐던 서닐 트리파시는 23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abc뉴스 동영상 캡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용의자로 오인됐던 서닐 트리파시는 23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abc뉴스 동영상 캡처
1831년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브로톤 다리가 무너졌다. 당시 다리 위로는 절도있는 행군으로 유명한 영국 보병부대가 발맞춰 지나가고 있었다. 병사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의 다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행군이 이어지면서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병사들이 똑같이 발을 맞춰 걸을 때 발생한 주파수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주파수를 맞추어 한 개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비난하고, 희롱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사자와 그 가족은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이다. 특히 그 공격이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의해 이뤄지고, 당사자는 이를 방어할 어떤 권력도 가지지 못한 경우라면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어떤 매체보다 집단화가 쉽고 전파력이 강한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브라운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한 인도계 청년은 보스턴 폭탄테러 직후 FBI가 공개한 테러 용의자의 사진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소셜네트워크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집을 나간 상태였기에 더더욱 미심쩍은 눈길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신상은 트위터와 여러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악성댓글들로 도배됐다. 그의 집 앞으로 언론사 차량들이 몰려들었고, 가족들의 휴대폰으로 기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의 누명은 다음날 FBI가 사진 속 용의자의 이름을 공개하면서야 비로소 벗겨졌다. 그리고 며칠 후 이 청년의 주검이 발견됐다. 그의 죽음이 누명의 충격 때문인지 우울증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가족들은 “끔찍하고 공격적인 언어들 때문에 참담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소셜네트워크가 이 청년에게 일제히 저주를 꽂았을 때, 소셜네트워크는 더 이상 ‘소셜’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사회적이었다.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이 라면 때문에 항공기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비행기가 분식점도 아닐진대, 라면 맛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약자(승무원) 대한 잔인한 공격적 태도임에 틀림없다. 세상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공항에서 출국조치를 당했고, 해당 항공사는 업무상 방해 등의 이유로 고소를 검토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안전비행이 최우선 되어야 할 공간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행패를 부린 사건에 대해 그렇게 조치되는 것은 당연히 옳다.

하지만, 이 사건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퍼지자, 순식간에 그의 실명과 얼굴사진까지 공개되었다. 그의 이름과 얼굴사진을 합성해 만든 라면포장지 패러디까지 퍼졌을 때는 섬뜩할 정도였다. 소셜네트워크는 일제히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를 비난했고, 조롱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유명 지식인들까지 트윗을 날렸다.

그가 받았을 고통은 그의 죄값이라고 치자. 그러나 그의 가족이 겪었을 고통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한국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꽤 오랜 시간 지옥 같을 것이다. 길을 나서면 "저 사람의 아버지가, 저 사람의 남편이…”라는 수군거림이 이어질 것이고, 이런 꼬리표는 오래오래 따라 붙지 않겠는가. 소셜네트워크가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서 또 하나의 아픈 가족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광장이 되려면 광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분노의 조절이다.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를 진보시킬 때조차도, 그 분노는 조절이 돼야 한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수많은 흑인들의 분노를 조직화하면서 미국역사를 바꾸었다. 그런데,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그의 연설은 많은 경우 이렇게 조용한 어조로 시작했다. “I believe(내가 믿는 것은)…”

같은 믿음으로, 같은 발걸음으로, 같은 곳을 향해 행군할 수 있다면 이는 엄청난 위력의 아름다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만, 그 행군의 목적은 변화이지, 분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병률기자 트위터 계정 @bryu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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