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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 취소에 부쳐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3.05.03 19:05|조회 : 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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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년만의 강추위라 했다. 1950년 12월 3일의 황해도 재령은 그렇게 추웠고 그렇게 눈도 많았다. 사립을 나서기 전 어린 누이동생은 물색도 모른 채 툇마루 기둥 옆에서 말끄러미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처럼 시린, 하얀 어머니의 머릿수건이 먼저 눈에 든다. 어머니는 마치 아들을 잡고 싶은 마음을 단속이라도 하듯 한 팔로 툇마루 기둥을 그러안고 계셨다. 어머니의 동그란 눈이 슬퍼보였다. "얘야 이번엔 조심하거라"

벌써 예닐곱 번이나 치른 행사인데 새삼스런 어머니의 노파심이 거북했다. "별 일 있겠어요? 한 이틀 있다 올게요." 어쩐지 부담스런 어머니의 눈길을 피해 집 나서는 걸음을 재촉했다. 산중의 인민군이 징치고 내려오면 하루 이틀 옆 마을로 피해있다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일이 아니었다. 60년이 훌쩍 넘도록 돌이키고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 길로 종내 이별이라니... 인민군과 맞총질을 해가며 피해간 해주 바닷가에서도, 운 좋게 얻어 탄 보급선에 몸 싣고 연평도에 정박한 미군 LST에 몸을 실었을 때도, 3~4일 망망대해를 지나 부산항에 내렸을 때도, 다시 무슨 줄인지도 모른 채 따라가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도 며칠 전 그 순간이 종이별이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통신병으로 육군본부에 배속 받아 남은 전쟁을 치르고 1953년 7월27일 군사기밀 암호전문을 예하부대에 타전했을 때, 그리고 타전 내용이 "7월27일 22시를 기해 모든 전투행위를 중단한다" 라는 휴전전문임을 확인했을 때 모두가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틀을 기약하고 떠나 3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집에 갈 수 있다. 어머니의 동그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럼 됐다. 그랬었는데..

지난달 30일 개성공단 잔류인원 50명 중 최후의 7명을 남기고 43명이 귀환한 날 아침, 오는 8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 쇼'가 취소됐다. 취소이유는 "관객 중 상당수가 실향민인데, 개성공단 철수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 상황을 앞두고, 노래하고 춤추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 쇼' 는 지난 2011년 9월12일 장충체육관에서 시작, 대구 전주 부산 대전 안동 광주 창원 의정부 수원 울산 제주 등 12개 지역에서 26회의 전국 투어를 돌았고,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즌 2' 로 새롭게 출발, 다시 대전 인천 부산 대구 경주 등 5개 지역 14회 공연을 무사히 마친 후 어버이날인 8일 출발지인 서울로 재입성, 대장정의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의 마지막 정열, 그 대미, 마지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심경이 궁금해 2012년 6월 22일 방영된 KBS 2TV '여유만만' <6.25특집 송해의 고백쇼>를 다시 봤다. 그 자리서 그는 말했다.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총이 있건 뭐건 어머니 곁을 지키겠노라고. 또 말했다. "1천만 실향민이 6백만이 됐다. 한이라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흐릿한 어머니의 얼굴을 송준일 화가가 그려냈을 때 그는 그림을 품에 안고 통곡도 했다.

얼마전 퇴근길 지하철에서 경로석 가장 구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 바로 옆 할아버지는 시선을 정면에 두고 잔뜩 신경을 도사린 채 그를 의식하는 기색이었고 한자리 건너 노인네는 틈 날 때마다 그를 흘끔이는 게 눈이라도 뜰라치면 득달같이 말을 붙여볼 기세였다. 그는 내가 잠원역에서 지하철을 내리도록 그 자세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서분서분 구수한 국민 형님, 국민 오래비답지 않은 침묵을 그는 고수했다. 당시는 이미 남북관계가 가파르게 악화되던 시점였다. '송해 빅쇼'가 취소됐다고 하니 어쩐지 그날 그의 침묵이 이해되는 기분이다.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고 다시 아침이면 피는 나팔꽃이 꼭 우리네 인생 같아 작명했다는 '60년 나팔꽃 인생', 다시 피기까지는 어쩐지 시간이 퍽 걸릴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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