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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민간인학살(4)] 기고 : 박의원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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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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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뉴스1) =
박의원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대표이사.  News1
박의원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대표이사. News1



1950년 6월 한국전쟁 시기 군경에 의해 부모형제 일가친척이 도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은 지난 63년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한 채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다.

1960년 6월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 만에 유족회를 결성해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탑을 세웠지만 뒤이어 닥친 군사쿠데타로 유족회 간부는 감옥으로 가고 위령탑은 쇠망치로 부서졌다.

그리고는 40여 년간 서슬퍼른 연좌제에 묶여 공직에도 못나가고 해외유학도 못가는 암울한 시대를 인간취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이후 1999년 9월 AP통신이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을 전 세계에 타전하면서 다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학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이 불붙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우리 코발트광산유족회도 2000년 3월 유족회를 결성하고 여의도, 뉴욕, 제네바 등지로 뛰어다닌 끝에 2005년 드디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과거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국가차원의 유해발굴도 시작됐다.

2009년 11월 17일에는 드디어 과거사위원회가 '코발트 민간인 학살은 군경에 의한 학살'이라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우리 유족들은 이제야 한이 풀리는구나 생각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우리가 요구한 유해 추가발굴도, 위령탑 건립도, 국가의 배상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이미 발굴된 유해에 대한 안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건현장 보존과 기념공원 조성은 언감생신, 지자체도 국가도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에서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줘 곧 보상이 이루어질 것 같았으나 이번에는 국가가 항소해 현재 2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에도 여든이 넘은 미망인들은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대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로 살아온 미망인들은 쥐꼬리만한 보상금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국가를 원망하며 떠나고 있는 것이다.

폐광산을 파헤쳐 발굴하던 유해는 아직도 대부분 차디찬 땅속에 묻혀 삭아가고 있다. 그나마 햇빛을 본 유해는 컨테이너 창고에서 한여름 땡볕과 북풍한설에 바스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유족들은 다시 한번 국가에 요구한다.

1. 2심에 계류 중인 민사소송을 조속히 마무리하라.
2. 폐갱도와 대원골 골짜기에 방치된 유해를 조속히 발굴 수습하라.
3. 충북대박물관에 임시보관 중인 유해와 컨테이너 창고에 방치된 유해를 조속히 안장하라.
4. 평산동 코발트광산 현장을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역사평화공원으로 조성하라.

<저작권자 뉴스1 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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