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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맏형, 그가 139일간 외도한 까닭은?

[송정렬의 중기人사이드]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지독한 가난에서 피어난 벤처정신

송정렬의 중기人사이드 머니투데이 송정렬 기자 |입력 : 2013.05.13 07:00|조회 : 1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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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일.' 그가 지난해 외도한 기간이다. '평생 기업가'를 외치며 정치 입문에 대해선 손사래를 쳐왔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정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난 못한다고 계속 버텼지. 근데 다른 위원 다 뽑아놓고 나 때문에 발표를 이틀반이나 늦추는데 이걸 버틸 재간이 있나."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오고초려' 앞에 그는 결국 고집을 꺾고 '자의반 타의반' 한시적인 정치 외도에 나섰다. 이후 4.11 총선에서 대승을 일궈내는 등 그의 정치 인생은 성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그의 표현대로 '딱 139일만'에 외도를 접고, 다시 자신의 자리도 돌아왔다. 국내 벤처 1호 주인공이자 벤처업계 '맏형'으로 불리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의 이야기다.

벤처 맏형, 그가 139일간 외도한 까닭은?
짧지만 굵었던 정치 외도를 통해 조 회장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뭘까. "그동안 디지털사회에선 부족한 실력으로 열심히 일하면 회사와 국가를 망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똑똑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더라. 똑똑한 사람도 1표, 그렇지 못한 사람도 1표다. 모든 국민을 다 안고 가야하는 것이 정치더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다."

하지만 한 번의 외도로 인해 "정치색에 물들었다는 평가는 평생 지고 가야하는 짐"이라고 조 회장은 말했다. "그래도 비대위원을 맡으면서 약속했던 연대보증 폐지,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 이공계 가산점 등은 다 이뤘다"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1983년 인하대학교 3학년에 다니던 청년 조현정이 창업한 국내 벤처기업 1호 비트컴퓨터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창업 당시 한달에 60만원에 달하는 비싼 방값을 감수하면서도 숙식을 한꺼번에 해결하며 최대한 많은 시간을 일하기 위해 서울 청량리역 앞 맘모스호텔방에 사무실을 차린 일화는 유명하다.

조 회장은 자신의 벤처정신은 어린시절 지독한 가난에서 잉태됐다고 설명한다. 경남 김해 시골마을 땅부자집 둘째아들로 태어난 조 회장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누구나 못살던 그 시절 또래 친구들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 그는 운동화를 신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 회장이 6살 때 선친이 돌아가신 이후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고, 어머니와 조 회장 3형제는 당시 서울 변두리였던 이문동에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살아야했다. 어머니의 삯바느질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기에 조 회장은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전파사들이 자체적으로 못고치는 TV나 라디오를 고쳐주는 곳에 취직을 했죠. 재미도 있었고, 2년반동안 정말 하드트레이닝을 받았죠. 70년대 초반엔 귀했던 컬러TV를 고칠 정도로 상당한 기술수준을 갖췄죠."

기술자 생활을 하다보니 공부에 대한 갈증이 찾아왔다. 조 회장은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인하대 공대에 입학했다. 교수님들도 손을 못대는 방사능 측정기를 척척 고쳐내는 '걸물' 공대생은 한 학기 학비가 50만원이던 시절 연 400만원의 전액장학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개인연구실, 교직원버스 이용 등 다양한 특혜를 누렸다. 이런 조 회장이 다른 친구들과 달리 금성사나 삼성전자 입사라는 안정된 길 보다는 벤처창업이라는 도전을 택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비트컴은 설립 이후 지난 30년간 한 눈팔지 않고 의료정보솔루션이라는 한우물을 파며 테헤란벨리 1회 입주 벤처기업, 병역특례 1호 지정업체 등 국내 벤처의 역사를 써왔다.

비트컴의 지난해 매출액은 328억원, 영업이익은 13억원이다. 벤처분야에서의 상징성에 비해선 사실 코스닥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규모다. 조 회장은 "아마도 목표지향적으로 실적 위주의 경영을 했다면 비트컴이 더 컸거나 망했을 수도 있다"라며 "하지만 애초부터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생활에서부터 경영까지 '항상 지나침을 경계한다'는 것이 조 회장의 철학이다. 모교에는 건물을 쾌척할 정도로 통 큰 조 회장이 정작 자신의 몸에는 그 흔한 명품 하나 두르지 않고, 자동차 애호가이면서도 외제차 한 대 굴리지 않는 절제된 삶을 사는 이유다.

요즘 세간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 '창조경제'에 대해 물었다. 한동안 뜸을 들이던 그는 "지난 20년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기존 사업의 뿌리가 흔들리거나 뽑히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생태계를 창조경제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생태계 내에 있는 입법, 행정, 과학기술, 산업, 학생, 국민 등 모두가 그 변화와 혁신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이 그런 공감대속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교육이다. 사실 조 회장이 사업 보다도 더 '사명감'을 갖고 챙기는 것이 바로 인력양성과 장학재단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함께 남들과는 다른 창조적인 삶을 살아온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조 회장은 2000년 벤처기업가로는 처음으로 개인기부금 20억원으로 조현정재단을 설립했다. 그동안 230여명의 학생들에게 고교 2학년부터 대학 2학년까지 4년간 장학금을 후원했다. 지난해에는 사법고시 합격생이 4명이나 나왔다. 또 1990년 설립한 비트스쿨은 국내 SW업계를 이끄는 실력파 고급개발자들의 산실이다. 그동안 8600여명의 개발자들이 비트스쿨을 거쳤다.

"모든 학생들에게 SW를 가르치자는 것은 비록 SW엔지니어가 되지 않더라도 논리적인 사고는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에세이를 쓰면서 논리적 사고를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치에 나설 가능성을 물었다. 조 회장은 답 대신에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사진들을 보여줬다. 사진속 그는 벤처기업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 옆에도, 청와대에서 벤처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옆에도, IT기업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도 벤처업계의 대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권이 좌든 우든 내 자리는 그대로다. 한 분야에서 이름이 난다고 모두 정치로 가야겠냐. 기업가로 남아있겠다." 조 회장이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구루(Guru)다. 그가 다신 외도를 하지 않고, 국내 벤처 분야의 '영원한' 구루로 남아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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