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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5월, 전율의 무대서 울고 웃다

[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5·18 민주화운동' 소재 연극 <푸르른 날에> <짬뽕>

이언주의 공연 박스오피스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입력 : 2013.05.24 18:00|조회 : 7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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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의 달(月)은 서술적이면서도 시(時)적이다. 아라파호족은 5월을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부른다. 우리 역시 5월이 되면 기쁨과 감사를 나누고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곤 한다. 한쪽에서는 가슴 속에 묻어둔 응어리도 잠시 꺼내보며 슬픔을 나누기도 하니, 우리의 5월도 그들과 상통하지 않을까. 청명한 5월의 하늘은 때론 참으로 역설적이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5월의 '그날'을 다룬 두 편의 공연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 웃을수록 가슴 속은 더욱 뜨거워진다. 터져 나오는 웃음과 울음이 한데 어우러져 뒤범벅되는 순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며 가슴이 뻥 뚫린다. 그날, 1980년 5월 18일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와 <짬뽕>을 봤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속에서 꽃핀 남녀의 사랑과 그 후 30여 년의 인생 역정을 그린 연극 <푸르른 날에>.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작품을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라고 정의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속에서 꽃핀 남녀의 사랑과 그 후 30여 년의 인생 역정을 그린 연극 <푸르른 날에>.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작품을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라고 정의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연극 '푸르른 날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여기저기 저 가을 끝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막이 내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기립박수를 보내는 게 얼마만인가. 앞사람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무대가 안보여 일어나는 것 말고.

연극 '푸르른 날에'는 그랬다. 공연을 본 날이 마침 그날(5월18일)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대와 객석 모두 33년 전 그곳으로 거슬러 간듯했고, 공연장 가득 흐르는 전율을 배우와 관객, 스태프들이 분명 함께 느꼈을 테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젊은 관객들까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지역에서 발생한 슬픈 현대사를 연극적으로 훌륭하게 그려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사람'이 주제이고,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기 때문에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토록 비극적인 날을 묘사하면서도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과장된 몸짓으로 슬랩스틱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웃음과 해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과거와 현재, 회상과 현실을 오가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인생의 가장 푸르른 날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잊기도 하고, 때로는 애써 기억해내기도 하면서 웃음만은 놓지 않고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이 역설적이고 도발적인 연출은 관객에게 먹혔다. 정극과 신파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극이 아닌 유쾌한 통속극으로 풀어낸 점, 인물 하나하나에 감정이입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만든 진정성과 인간애, 시대정신이 연극이라는 장르 안에 쫀쫀하게 응집돼 있는 듯 했다. 사실감 있게 표현한 고문 장면은 섬뜩하고 불편함을 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감성으로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게 한다.

2011년 5월 초연 한 연극 <푸르른 날에>의 원작은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으로, 그해 국내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평단의 고른 호평을 얻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2011년 5월 초연 한 연극 <푸르른 날에>의 원작은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으로, 그해 국내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평단의 고른 호평을 얻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연극 '짬뽕'= "아, 진짜 이런 일이 있었을 지도 몰라!"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인 1980년 5월 17일 광주의 시내 한 중국집에서는 내일 소풍갈 준비, 하루빨리 돈을 모아 서울구경도 하고 결혼식도 올릴 꿈을 꾸는 소소한 서민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마치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인 얼큰하면서도 속풀이로 딱 좋은 짬뽕 한 그릇 같다.

연극 <짬뽕>은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이웃 이야기를 그린 슬픈 코미디극이다. /사진제공=극단 산
연극 <짬뽕>은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이웃 이야기를 그린 슬픈 코미디극이다. /사진제공=극단 산
중국집 배달원 만식은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주인장에게 떠밀려 배달에 나선다. 잠복근무 중인 군인들을 만나 음식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빨갱이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 다음날 TV에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오자 만식은 자신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당한 설정이 실제로 공연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한다. 순수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게 그날의 사건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공연 내내 객석에는 웃음이 터졌지만 언제부턴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슬프다는 걸 알면서도 빵빵 터지는 웃음코드는 관객을 무장해제 시킨다. 과장된 연기도 밉지 않을뿐더러 그 속에서 오롯이 드러나는 진정성과 순수함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깨끗하게 해주는 듯하다.

2004년 5월 초연한 이후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연극 <짬뽕>은 이제 5월이면 관객들이 먼저 찾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됐다. 웃음 뒤에 가슴을 툭 치는 아픔을 담담하게 그리며, 짬뽕의 매콤함처럼 코끝 찡한 감동을 남겨준다.

공연 말미에 읊조리는 남자 주인공의 독백은 가슴 속을 파고들며 결국 눈물을 흘리게 했다. "또 그날이 왔구마니라. 오늘은 이 동네 곳곳이 제사 날이요. 이놈의 봄만 되면 미쳐 불겄어. 봄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요. 맴이 휑 혀요."

해마다 돌아오는 이토록 푸른 5월에, 하루쯤은 그 휑한 가슴을 나누는 것도···.


"내 얼굴 들어 간거요? 뭐 아무렴 어떻소. 나도 그때 죽은 거나 마찬가진디. 그래도 보기 좋지 않소? 얼굴들이 다 훤 허니 행복해 보이지 않냐 그 말이여라!"  -연극 <짬뽕>의 주인공 신작로의 마지막 대사 中 /사진제공=극단 산<br />
"내 얼굴 들어 간거요? 뭐 아무렴 어떻소. 나도 그때 죽은 거나 마찬가진디. 그래도 보기 좋지 않소? 얼굴들이 다 훤 허니 행복해 보이지 않냐 그 말이여라!" -연극 <짬뽕>의 주인공 신작로의 마지막 대사 中 /사진제공=극단 산

연극 '푸르른 날에'=다음달 2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작 정경진, 각색·연출 고선웅, 출연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이명행 조영규 조윤미 김정현 호산 등. 티켓 2만5000원(일반), 1만5000원(청소년·대학생). (02)758-2150.

연극 '짬뽕'=다음달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달빛극장. 작·연출 윤정환, 출연 윤영걸 김원해 최재섭 김준원 이건영 정수한 정태민 등. 티켓 2만5000원(일반), 1만2000원(청소년·대학생), 1만원(월요일 전석). (02)6414-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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