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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의 은퇴가 아쉬운 이유

'팝' 살아있는 패스트볼 여전했는데 왜?... 은퇴후 복귀 양키스 앤디 페티트 생각나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3.06.15 11:30|조회 : 9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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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의 은퇴가 아쉬운 이유

뉴욕 양키스의 좌완 앤디 페티트가 지난 9일 시애틀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7 1/3이닝 3피안타 1실점 역투로 시즌 5승째를 올리며 자신의 통산 250승째를 기록했다.

앤디 페티트는 1972년생으로 우리나이로 42세이다. 1995년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3시즌을 보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뉴욕 양키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앤디 페티트의 승리 소식을 접하며 부질없게도 ‘왜 박찬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은퇴를 단행했을까?’라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

박찬호는 1973년생으로 앤디 페티트보다 한 살이 어리다. 그는 앤디 페티트보다 1년 빠른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2012시즌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는데 겨우 한 시즌만 뛰고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물론 프로에서만 무려 19시즌의 오랜 여정이었다. 프로야구 선수의 단점 중 하나가 가족과 오래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는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더 뛸 수 있는 나이에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현역에서 물러나는 선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의 부인은 단지 자신의 남편이 메이저리거 라는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법원은 부인의 손을 들어준다. 왜냐하면 부인이 이혼 사유로 ‘남편이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라는 근거를 내놓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지난 해 11월30일 은퇴 기자 회견을 했다. 은퇴를 결심한 11월29일은 박찬호가 7년 전이었던 2005년 11월29일 미국 하와이에서 아내 박리혜씨와 결혼을 한 날이었다. 같은 날 그는 자신의 눈물과 땀이 서려있는 마운드에서 영원히 내려오는 결정을 내렸다.

박찬호를 오래 취재한 필자는 당시 정말 놀랐다. 너무도 의외의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힘만 있다면 계속 마운드를 지키겠다. 45세까지도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여러 번 얘기 했다. 박찬호는 은퇴 기자 회견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구성돼 있는 것이 팀인데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했고, 한편으로 “제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부상”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국 성적은 5승10패 평균 자책점 5.06이었다.

그런데 박찬호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는 샌디에이고 시절이었던 2006년 8월24일 그 부위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장출혈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출혈이 계속됐다면 생명도 위험할 수 있었는데 그는 끝내 마운드로 돌아왔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에는 부상 등으로 성적을 내지 못해 수많은 비난을 들었으나 견뎌 냈다. 주위에서는 큰 부(富)와 명예를 이미 모두 얻었는데 ‘왜 힘들게 야구를 계속하느냐. 편하게 살지’라는 권유도 많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박찬호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막지 못했다.

박찬호가 가세한 한화는 지난 해 팀이 최하위에서 허덕이자 8월28일 자진사퇴 형식으로 한대화 감독을 경질 했다. 페넌트레이스가 30여 경기 남은 시점이었다.

한용덕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친 한화는 오랜 기간 현장을 떠나 있던 김응룡 전 삼성 사장을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후 한화 구단은 코칭스태프 구성과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등으로 혼란스러웠고 마무리 훈련에 불참했던 박찬호의 예상치 못한 은퇴까지 이어졌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박찬호는 분명히 더 던질 수 있었다. 체력에 문제가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 선발 등판 시키면 된다. 플레잉코치로 활용해도 팀 전력에 확실히 보탬을 줄 수 있다.

그가 메이저리그 일본 한국을 거치며 19년 동안 쌓은 경험은 대단한 것이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나서게 된 것도 박찬호가 옆에서 불어넣어준 자신감과 전수한 노하우가 크게 작용했다.

박찬호는 우리 나이로 40세였던 지난 시즌에도 시속 140km 후반의 패스트볼을 던졌고 투수 이론적으로 패스트볼에 가장 중요한 ‘팝(pop)’도 남아 있었다. 패스트볼에서 볼 스피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볼이 타자 앞에서 솟아 오르며 특유의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팝’의 존재 여부이다.

류현진의 패스트볼이 위력적인 것은 ‘팝’이 세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약해지기는 했으나 팝이 있는 패스트볼에 기교와 한국 타자 경험이 더해져 올시즌에는 좋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다. 스스로 말했듯 한국프로야구 첫해였던 지난 시즌에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적응을 하고 나자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박찬호는 2010 시즌 뉴욕 양키스에서 앤디 페티트와 함께 뛰었다. 지난 6월1일로 검토하고 있었다던 박찬호의 한화 은퇴식이 연기됐다.

현재로서는 박찬호와 한화의 연결 고리가 없는 상태이다. 그가 가진 노하우가 한화 구단의 리빌딩에 보탬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더욱 아쉽다. 박찬호의 전격 은퇴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본인만 알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앤디 페티트가 뉴욕 양키스에서 2010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했는데 2011년 한 해를 쉬고 2012년 현역으로 복귀했음을 고려하면 ‘혹시 박찬호가 내년 시즌에?”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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