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8500억 원' 사회적 대기업의 34세 부회장

↑ 28일 서울크리에이티브랩에서 열린 <따뜻한 세상을 위한 임팩트 비즈니스> 출간기념회에서 저자인 니콜라 아자르 그룹SOS 부회장과 번역자인 안은정 미스크 연구원이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photoguy@

연 매출은 미국 달러로 7억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치면 8550억여 원이다. 자회사는 44개, 고용인원은 1만여 명이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 규모다.

그런데 이 기업의 사업 목표는 한국에 있는 여느 대기업과는 다르다. ‘빈곤 그리고 사회적 배제 퇴치하기’.


프랑스의 그룹SOS(www.groupe-sos.org)는 사회적 기업이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 소외계층의 건강, 노약자 부양, 주거, 교육, 고용 문제를 해소하고자 1984년 설립됐다.

이 기업은 프랑스 등 30여국에서 2011년에만 100만여 명 이상의 소외층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의료 등 핵심사업 분야에서 일반인 대상 양질의 서비스로 수익을 내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를 지원하는 구조를 정교하게 마련한 덕분이었다.

그룹SOS는 다른 사회적 기업에 자금과 자문도 제공한다. 자회사인 CDI(www.lecomptoirdelinnovation.com)는 2000만 유로, 우리 돈 296억 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 프로젝트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Impact) 있는 분야에 투자해 이익을 낸다. 한국에선 지난해 2월 출범한 임팩트투자·컨설팅업체 미스크(MYSC)에 일부 지분을 투자했다.


니콜라 아자르 그룹SOS 부회장(34) 겸 CDI 대표를 28일 서울크리에이티브랩에서 열린 그의 책 출간 기념회 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프랑스에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영역이 800여년 동안 발전했지만 한국에서는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형 ‘엄친아’가 사회적기업을 선택한 이유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임팩트 비즈니스’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그의 책의 원래 제목은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 세계와 자본주의를 구하는 20가지 기업’이다.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빈곤에 관한 논쟁과 국가의 역할부터 국가와 시장의 대립을 넘어서는 사회통합 메커니즘까지 광범위한 이슈를 사회적기업가의 관점에서 알아둘 내용을 중심으로 다뤘다.

유럽 최대 사회적기업의 부회장이라지만 경영인에게는 꽤 버거울 만한 이슈를 책 한권에 담아냈는데도 통찰이 만만치 않다. 약력을 보니, 그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가며 국제경제와 정책, 산업 영역을 두루 섭렵했다.

독일의 베를린자유대에선 유럽경제학을 공부했다. 석사 학위는 3개다. 프랑스 소르본 파리1대학 국제경제학, 시앙스포 파리 공공정책학, HEC 경영대학원 등. 프랑스 산업연맹에선 사회적 공무를 담당했고 이탈리아에선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국무총리 보좌관을 지냈다. 속된 말로 ‘엄친아’형 인재다.

그런 그가 왜 다음 직장으로 사회적기업, 임팩트투자회사를 선택했을까. 그는 “MBA과정에서 금융을 배울 때 세계 금융위기로 금융과 경제의 균형이 깨지는 걸 봤다”며 “금융이란 도구를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금융위기 후 금융기관에 대한 혐오가 높아졌다. 사람들이 금융이 해롭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금융이 해롭다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 금융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고 남을 해칠 수 있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망치처럼. 난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금융을 좋은 데 쓰일 수 있도록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일에 매력을 느꼈다.”

◇“연 60% 성장”...금융시장의 루키

↑니콜라 아자르 그룹SOS 부회장 겸 CDI 대표 ⓒ이동훈 기자 photoguy@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모양이다. 그가 선택한 임팩트 투자, 사회적기업 분야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임팩트 투자로 집행된 금액은 약 1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JP모건은 현재 전체 금융자산 중 0.2% 수준인 이 분야가 앞으로 2년 안에 1%, 약 50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자르 부회장은 “임팩트 투자는 프랑스에서만도 지난 2년 간 5배가 성장했다”며 “2009년 이후 연간 60%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새로운 금융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수익률도 일반 금융상품 못잖다. 2000만 유로 규모 펀드를 운용하는 CDI의 경우, 연 평균 5% 수익률을 내주고 있다. 한 사회적기업에 5억 유로 안팎을 주식 혹은 전환사채 형태로 5~7년 가량 중장기 투자해 얻은 성과다.

그가 분석한 비결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들의 경기조정력. 세계 경제위기가 사회적기업의 생존력을 드러나게 했다. 그는 “2008~2009년 영국에서 중소기업 43%가 매출 감소를 겪은 반면, 사회적기업은 20%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창출력 면에서도 일반 부분보다 나았다. 2010년 프랑스의 전체 민간 부문 고용 증가율은 1.8%였지만, 사회적 경제 분야는 2.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 800년 걸릴 일, 한국은 5년 안에 해낼 수도"

하지만 유럽과 한국은 경제, 금융의 기반이 다르다. 프랑스만 봐도 GDP의 10% 가량을 사회적 경제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금융법은 협동조합도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허용한다.

그는 "사회적 경제가 800여년에 걸쳐 발전한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에 금융법을 개정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특수조항을 만들었다"며 "프랑스는 오래 걸렸지만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한국은 5년 안에 그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핵심은 금융법 개정이다.

"한국에선 사회적기업육성법,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사회적 경제 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자본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도록 해줘야 한다. 제도권 금융이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금융법을 개정하고 좋은 금융수단을 발전시켜야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지난 2006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발전했던 마이크로파이낸스, 즉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미소금융 분야가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두 가지의 교훈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너무 빠른 자금 유입은 '위장 사회적기업체'에 대한 투자를 불러올 수 있다. 둘째,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투자하는 전통적 투자 자금이 사회적기업에 대거 유입되면 사업 성격 자체에 변화가 생기거나 사회적 목적보다는 수익 사업에 치중할 수 있다. 빈곤과 맞서 싸우는 본래의 미션을 잃은 일부 미소금융처럼 말이다.

◇"민주체제에서 1%는 소수...99%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을 믿어야"

사회적 경제, 영향투자가 부상하고 있다지만 전 세계 경제 규모, 금융자산 규모로 봤을 때엔 아직 영향력이 미미하다.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상위 1%의 탐욕을 사회적 경제가 막을 수 있을까?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1%의 탐욕이 이 모든 일을 만들었다. 탓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민주주의 체제는 과반수가 움직인다. 1%는 결코 과반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1%는 계속 99%한테 계속 '내가 너를 통제한다'고 주입한다.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우리 99%이다. 99%의 사람들이 큰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믿어야 한다."

어쩌면 그의 말은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시대를 만난 아이디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