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훈수 "韓 최악 전력난, '좋은 시절' 끝났다"

올 여름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돼 산업계가 바짝 긴장해 있다. 대규모 동시정전(블랙아웃) 사태가 빚어질까봐서다. 현재 국내 원자력발전소 23기 가운데 9기가 가동을 멈춘 상태다.


원전 때문에 전력난을 겪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발생한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원전 제로'(0)를 선언했다. 최근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원전 재가동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일부 일본 기업들은 이미 전력난을 피해 한국행을 택했다.

일본 언론들이 최근 우리나라의 전력난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 '동병상련'과 '거봐라' 하는 감정이 뒤섞여 있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한국의 대기업들이 누려온 아늑한 전력사정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며, 전력난을 피해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문은 올해 한국에 유례없는 전력난이 예고돼 거국적인 절전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삼성그룹을 필두로 한 대기업들의 위기감은 약해보인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삼성그룹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2015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에너지 사용량을 20% 줄인다는 내용의 3대 에너지 절감방안을 발표했는데, 정작 전력을 많이 쓰는 반도체용 클린룸 등 스마트폰 관련 시설은 절전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신문은 익명의 한국전력공사 중견 간부의 말을 인용해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대기업들이 실질적인 정전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간부는 "전력난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비공개 정전 메뉴얼이 있다"며 "이는 정부와의 협의사항으로 삼성전자 (77,100원 ▼2,500 -3.14%) 반도체공장의 전력 공급 중단 순서는 끝에서 두 번째"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북한과 긴장 관계에 있는 한국에서는 군사기지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시설의 전력 유지가 최우선된다며, 그 다음 우선 공급 대상은 서울 등 대도시의 관공서 시설로 삼성의 주요 공장도 이에 준하는 범주에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실제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은 풀가동 되고 있다며, 이 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일본 기업들의 동향에도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일례로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전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통신모듈을 공급하는 일본의 무라타제작소는 "올 여름 생산 계획을 변경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확인해줬다. 인덕터를 공급하는 일본의 TDK 역시 "(삼성으로부터) 생산조정 요청은 아직 없었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삼성에 부품을 대는 일본 기업들의 한국 현지 공장도 특혜를 누리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용 터치패널을 생산하는 스미토모화학의 한 임원은 "(공장이 있는) 평택에서는 정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문은 한국의 저렴한 전깃값도 문제 삼았다. 일본에서는 전력 피크 시간대에 절전에 적극적인 기업에 저렴한 요금이 적용돼 절전 효과가 크지만, 한국에서는 전깃값이 워낙 싸 절전 유인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용 전력의 평균 단가는 1킬로와트당 92.8원으로 일본의 2분의 1내지 3분의 1밖에 안 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에서는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도쿄전력이 9일 동안 총 27회의 계획정전을 실시했지만, 기업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전깃값 인상폭도 산업용이 가정용보다 컸다고 덧붙였다. 첨단소재기업 도레이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생산시설을 짓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신문은 기업들에게 아늑한 한국의 전력 사정이 계속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원전 파문에 따른 전력난이 만만치 않은 데다 대기업 특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고, 한국전력의 적자가 누적돼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한국도 에너지 자원이 없기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일 간 전기요금 격차는 곧 좁혀질 것이라며, 전력난을 피해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 기업들의 전략 변화를 촉구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올 여름 전력난이 이 흐름을 단숨에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