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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ze] 하루키를 읽지 않는 남자들을 위하여

머니투데이 ize 김혜원 기자 |입력 : 2013.07.16 11:19|조회 : 10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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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가 신작 를 발간했다. 출간 첫 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1천부가 팔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사람들이 줄까지 서며 이 책을 샀다 한다. 하루키의 소설이 늘 그렇듯 주인공이 또 자신의 정체성과 대결하는 이야기에 지겹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역시 많이 팔릴 것이고, 사람들은 한동안 하루키를 대화 소재에 올릴 것이다. 특히 남자라면 더욱 더. 하루키 소설이야말로 늘 평범한 외모에 내성적인 성격의 남자주인공이 여자들과 잘도 사귀지 않던가.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 때,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하루키에 대해 적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당신의 연애가 더 행복해질지 모를 일이다. 다만 는 세 권 합쳐 무려 1,962 페이지고, 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난다. 또 여전히 하루키를 읽지 않고 사는 남자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하루키에 관한 이 10가지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하루키가 그랬죠..”로 시작하는 말들을 술술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맥주
하루키는 맥주 예찬가다. 그의 에세이는 물론 소설에도 맥주가 자주 등장한다. 총 152쪽 분량의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56번이나 등장할 정도다. 하루키가 좋아하는 맥주의 브랜드로는 ‘블루리본’, ‘삿포로’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하와이 마루이 브로이’ 맥주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 실전
1. 페이스북 관심사에 하루키의 < 상실의 시대 >가 뜨는 일문학과 그녀. 그녀와 조별발표 후 뒷풀이를 함께하게 되었을 때.
① 병맥주를 시킨 뒤, 하루키가 에세이집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에서 “캔 맥주 보다는 병맥주인 편이 좋다”라고 한 발언을 인용해라.
② 맥주를 마시며 “갈증이 났을 때 차가운 맥주만한 것이 없지” 라고 말해라.
③ 자연스럽게 맥주의 종류에 대한 대화로 넘어가, 하루키가 좋아하는 맥주인 블루리본에 대해서 언급하고, < 1Q84 >의 아오마메가 상상하는 1926년의 카페에서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가 필센맥주였다는 것도 같이 언급해라.

2. 여자 선배가 소주를 권한다면 소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를 인용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치자.
여자선배: “왜 맥주 따윌 마시는 거야?”
나: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소변으로 나와 버리는 거야. 원 아웃 일루 더블 플레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아.”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1Q84
< 1Q84 >는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지만, 총 세 권 1962페이지로 너무 길어서 다 읽기가 쉽지 않다. 여기 < 1Q84 >를 읽은 척 하는 간단한 방법 세 가지가 있다.
① < 1Q84 >는 잘 발음하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절대로 [아이큐팔사]라고 읽는 실수는 하지 않도록 하자. [아이큐팔사]가 아니라 [일큐팔사]이다. (여기서 ‘Q’는 ‘Question’의 ‘Q’) < 1Q84 >를 가장 있어보이게 읽는 방법은 일본어 표기 그대로 [이치큐하치욘]이라고 읽는 것이다.
② < 1Q84 >는 완전한 3인칭으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첫 장편소설이다. 절반 정도가 3인칭으로 전개된 장편소설에는 < 해변의 카프카 >가 있다.
③ 스포일러 주의: “아오마메는 살아있다”고 말해라. < 1Q84 >를 2권까지 만 읽은 사람은 아오마메가 덴고를 살리기 위해 자살했다고 알고 있겠지만, < 1Q84 >의 3권에는 아오마메와 덴고가 미끄럼틀에서 재회해 20년 전처럼 손을 꼭 잡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까지 언급한다면 당신이 < 1Q84 >을 삼권까지 읽었다는 사실쯤은 너끈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실전
1. < 1Q84 >의 결말에 대한 논쟁이 벌여졌을 때 다음과 같은 근거를 대며 < 1Q84 > 4권이 나올 것임을 주장해라.
- 후카다 에리코가 쓴 소설인 < 공기 번데기 >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리틀 피플’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다.
- < 1Q84 > 3권 마지막 페이지에는 ‘끝’이라고 쓰여 있지 않고, ‘Book 3 끝’이라고 쓰여 있다. 진정한 ‘끝’이 남았다는 증거다.
- 두 주인공이 과연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의 광고 간판 호랑이 그림의 좌우가 반전된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2. 위의 방법대로 < 1Q84 >를 읽은 척 하다가 실제로 책을 읽지 않았음이 발각될 위기에, 야니체크의 관현학곡 ‘심포니에타’를 들어본 척 하라. “심포니에타는 살인한 직후 아오마메의 심리를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음악이지. 나는 첫머리에 나온 팡파르가 좋더라” 라고 말하면 그들이 당신을 더 이상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딸기 쇼트케이크
하루키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을 이해하는 ‘척’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의 연애는 매우 쉬워 질 수 있다. 다음은 하루키의 소설 < 상실의 시대 >에서 완벽한 사랑을 원하고 있냐는 와타나베의 물음에 대한 미도리의 답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에요.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선배에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예요, 그러면 선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예요.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쇼트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죠. 그러면 나는 ‘흥, 이따위 것 이제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것예요.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예요.” 설사 당신이 소설 속 와타나베처럼 ‘그런 건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더라도 미도리를 이해하는 척 해보자. 당신의 연애는 매우 편해질 것이다.

* 실전
1. 프라이드치킨이 먹고 싶다는 여자친구. 그러나 땀 뻘뻘 흘리며 사 온 프라이드치킨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여자친구에게.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너는 < 상실의 시대 >의 미도리를 닮았구나. 네가 프라이드치킨을 먹고 싶지 않아지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지한 것 같아.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다른 걸 사다주지. 무엇이 좋아? 양념 치킨? 훈제 치킨?”

2. 야밤의 공원, 으슥한 벤치에 앉아 ‘썸녀’에게 스킨십을 시도한 상황. 가만히 있던 그녀가 갑자기 정색할 때.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너는 < 상실의 시대 >의 미도리를 닮았구나. 네가 갑자기 (스킨십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지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지한 것 같아.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다른 데이트를 준비할게. 무엇이 좋아? 칵테일 한 잔? 심야 영화?”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재즈
하루키는 재즈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되기 전에 ‘피터 캣’이라는 이름의 재즈 카페를 직접 운영한 적이 있으며, 6000여장의 음반을 소유한 콜렉터이다. 작가가 된 이후에는 <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 재즈의 초상 > 같은 재즈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루키가 좋아했던 재즈 몇 곡을 외워 두는 것은 ‘하루키 좀 아는 놈’으로 보이는 동시에 ‘재즈 좀 듣는 분위기 있는 놈’으로 보일 수 있는 좋은 소스다.

* 실전
1. 하루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에서 했던 대사를 응용해서 당신의 학창시절을 하루키스럽게 각색하라.
여: 자기는 언제부터 재즈를 좋아했어요?
남: 원래는 팝음악을 좋아하다가 아트 블래키&재즈 메신저스의 콘서트 영상을 보고 재즈에 완전히 한 방 맞았어요. 프레디 하버드의 트럼펫, 웨인 쇼터의 색소폰, 시더 월턴의 피아노, 그리고 블래키의 드럼…… 아무튼 굉장했어요.
여: LP 음반도 사고 그랬겠네요.
남: 당시에는 레코드가 막 단종 되던 시기라서 가격이 무척 뛰었어요. 먹을 것도 안 먹고 용돈을 모아야만 간신히 한 장씩 살 수 있었죠. 블루노트 레이블이 붙은 호레이스 실버 < 송 포 마이 파더 > 같은 건 2만 8천원이나 내고 오리지널 음반을 샀죠.

2. 여자친구를 변변치 않은 옥탑방에 데리고 갔을 때, 하루키를 이용해서 무마해라. 우선 적당한 재즈 음반을 준비한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 Workin' with the miles davis quintet > 정도가 괜찮겠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해 보자. “옥탑방에서 재즈를 듣노라면, 신기하게도 연주가 온몸에 스며들어. 멋지고 훌륭한 방보다 오히려 변변찮은 옥탑방에서 맥주를 종이컵에 따라 느긋하게 마시면서 듣는 편이 훨씬 잘 어우러지지 않아?” 우수에 찬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덧붙여도 좋겠다. “요즘 들어서는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재즈의 신’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두부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두부를 좋아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여름 저녁은 맥주와 두부, 토마토와 풋콩 가다랭이 말린 것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겨울에는 삶은 두부, 기름에 튀긴 두부, 구운 두부, 어묵국 등을 먹으며 어쨌든 춘하추동을 불문하고 하루에 두부를 두 모는 먹는다고 한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에서 그가 밝힌 맛있는 두부 먹는 세 가지 요령은 다음과 같다.

① 제대로 된 두부 가게에서 된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살 것. (슈퍼는 안 된다)
② 집에 돌아오면 즉시 그릇에 담에 물을 부은 후, 냉장고에 집어넣을 것.
③ 사온 그날 안에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두부 가게는 반드시 집 근처에 있어야 한다. 멀리 있으면 일일이 부지런을 떨어가며 사러 갈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 실전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는데 사귄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돈도 없다. 그럴 때는 재빨리 슈퍼에 가서 맥주와 두부를 사 와서 이렇게 말해보자. “하루키 부부는 쌀밥을 먹지 않고 두부를 주식으로 먹는대요. 저녁식사로 맥주와 샐러드 그리고 두부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지. 식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습관이니까 그런 걸 계속 먹고 있노라면, 그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 거예요. 남들이 하는 보통 식사를 하면 위에 부담이 가는 거야. 어쩌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네요. 이런 소박한 저녁이라도 괜찮아요?”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고양이
하루키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은 그의 일상과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8년간 방랑자 같은 해외 생활할 때에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상태라 근처에 있는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것으로 ‘고양이 굶주림’ 상태를 충족시켰다고 하니 그의 고양이 사랑은 알만하다. 심지어 그가 유럽으로 가면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편집자에게 맡기고 그 보답으로 건낸 것이 < 상실의 시대 >라는 소문도 있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의 소설에는 < 스푸트니크의 연인 >, <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 등이 있고, < 해변의 카프카 >에서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것이 직업인 다나카 상이 등장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상대와 데이트를 할 때, 하루키는 당신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 실전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을 때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하루키 좋아하세요?”와 “고양이 좋아하세요?”다. 만약 그 사람이 둘 중에 하나를 좋아하거나, 둘 다 좋아한다면 운이 좋은 것으로 그 다음 단계를 실행하면 된다.

1. 상대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데 키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하루키는 고양이를 두 부류로 나누죠. ‘따봉’ 고양이와 ‘꽝’ 고양이. 시계 같은 것과 마찬가지래요. 길러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혈통도 믿을 수 없고, 외견상으로도 절대로 알 수가 없죠. ‘따봉’ 고양이를 만날 확률은 대충 3.5마리에서 4마리당 1마리 꼴의 확률이래요. 꽤 귀한 셈이죠. 그치만 어떤 고양이가 ‘따봉’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기준이 미묘하게 다른 일이잖아요? 인간에 빗댈 경우 기준과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재수가 좋은 편인 가봐요. ‘따봉’인간을 만났으니 말이예요.”

2.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자랑을 하루 종일 하는 상대에 맞장구 칠 때.
“맞아. 고양이는 정말 신비로워. < 1Q84 > 2권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 한 청년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고양이의 마을에 내렸대. 고양이들이 상점에서 쇼핑도 하고, 관청에서 일도 보고. 청년은 그 광경이 너무 신기해서 매일매일 몰래 관찰했대. 역에는 기차가 항상 정차했지만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던 청년은 기차를 타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들에게 발각되었는데, 이상하게 고양이들이 눈앞에 그를 두고도 지나가는 거야. 청년은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역으로 갔어.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도 그 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았지. 그는 그제야 그 자신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알았대. 열차가 그를 위해 역에 정차하는 일은 다시는 없겠지. 고양이를 보고 있을 때면 그 청년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해.”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마라톤
65세 하루키의 인생은 마라톤(장거리 달리기)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가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해 30년 넘게 계속 달리고 있는 그는 그냥 동네 조깅 정도가 아니라 마라톤 풀코스를 30년 넘게 완주 했고,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 삼종 경기에도 여러 차례 도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마라톤에 대해 쓴 책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에서 소설을 쓰는 과정이 마라톤에서 자신과 싸우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실전
마라톤에 참가한 당신. 하루키의 마라톤 철학을 활용해 옆 라인의 매력적인 상대에게 말을 붙여보자.

1. 출발선에서.
“달리기 좀 하시나 봐요. 자세가 남다르네요. 저도 매일 아침 달리고 있어요. 가끔 오늘처럼 대회도 참가하고요. 매일 달린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럴 때 마다 하루키가 했던 말이 위로가 돼요.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 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 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도 힘껏 달리시길 바랄게요.” 단, 멘트만 치고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이 진정한 고수임을 잊지 말자.

2. 결승선에서 아까 출발선에서 만난 상대에게.
“완주 축하드려요, 역시 자세가 남다르더니. 저는 마지막 5키로는 마음속으로 ‘맥주 맥주’ 하면서 달렸어요. 하루키의 말대로 42킬로미터를 완주하고 난 다음에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맥주 한 잔 하실래요?”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야구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야구를 좋아한다. 실제로 하루키는 야구팀 야구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다. 하루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도 어느 봄날 야구장에서 데이브 힐튼이라는 선수가 2루타를 쳤을 때였다. 하루키는 텅 비어 있는 구장의 외야석은 여자와 데이트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맥주를 마시거나 치킨을 먹어가며 옥외의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마음에 내키면 야구 경기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실전
1. 동기끼리 모여 야구를 보러 갔다. 마음에 두고 있는 여 동기가 우리에게 묻는다. 야구의 규칙이 뭐냐고. 다른 놈들이 A부터 Z까지 복잡하게 말 할 때 하루키 식으로 말해보자. “베이스를 한 바퀴 씩 밟고 홈으로 돌아오는 횟수만큼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

2. 한화 팬인 그녀를 위로하며
“하루키가 야쿠르트의 팬이잖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정이 깊어가는 기분으로 응원을 한대.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이렇게 된 게 옳은지 어쨌는지에 관해서도 확신이 들지 않은 채 그냥 좋아하는 거야. 그가 야쿠르트를 좋아하면서 얻은 건 패배에 대한 관대함이래. 지는 것은 싫지만 그런 일을 일일이 마음에 깊이 묻어 두고 있다가는 도저히 오래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체념을 한 거지. 정리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위대한 개츠비 >
하루키의 팬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들이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 위대한 개츠비 >, 레이몬드 카버의 < 대성당 >, 그 외에도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이나 샐린저의 < 호밀밭의 파수꾼 > 등이다. < 상실의 시대 >의 와타나베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루키의 팬들은 그 작품을 읽어야 진정한 하루키의 팬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실전
여자가 하루키의 굉장한 팬일 때. 하루키가 여러 소설에 거쳐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권한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므로 대충 얼버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스콧 피츠제럴드의 묘에 대해서 언급해보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묘비에 뭐라고 세워져 있는 줄 알고 있어? 그의 묘비에는 < 위대한 개츠비 >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조류를 거스를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라고. 아름다운 문장이야. 하지만 하루키의 말처럼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겠다고 하는 결의는 분위기상 피츠제럴드의 묘비명으로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이 이상으로 대화가 깊어지는 것을 막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copy;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 이진혁 (핑퐁 스튜디오)
성적판타지
22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42년 째 아내와 ‘잘’ 살고 있는 하루키지만, 그의 에세이나 소설을 보면 엉큼한 소년의 섹스 판타지가 자주 나타난다. 특히 쌍둥이 여자친구에 대한 욕망을 자주 드러낸다. 소설 < 1973년의 핀볼 >에는 쌍둥이 여자친구와 동거하는 설정이 나오고, 에세이집 <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에서는 “나는 옛날부터 쌍둥이에게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여자 쌍둥이와 데이트를 해 봤으면 하는 게 내 오랜 꿈이다. 양쪽 옆구리에 똑같은 얼굴의 여자가 한 명씩 있어 준다면 여러 가지 일들이 훨씬 수월해 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정말 그렇지 않을까?” 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하루키의 성적 판타지는 ‘낯선 여성’과의 하룻밤이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 양을 둘러싼 모험 >, < 상실의 시대 > 등 하루키의 거의 모든 소설에는 낯선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 실전
다음은 당신이 판타지를 실현했을 때 써 먹을 수 있는 유용한 팁이다. 눈을 떴는데 이름도 모르는 낯선 여자가 옆에 누워 있을 때

여: “누구예요...당신은?”
당신: (최대한 침착하게) “기억 안나?”
여: “처음부터 설명해줘요.”
당신: “무덥기는 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지. 나는 오후 내내 풀에서 수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깐 낮잠을 자고 나서 식사를 했어. 여덟시가 좀 지났을 때였지. 나는 자동차를 타고 산책을 나가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항상 그렇게 하지. 그런데 30분가량 지나니까 갑자기 누군가 만나고 싶어졌어. 바다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만나고 싶어지고 사람을 보고 있으면 바다가 보고 싶어지거든. 그리곤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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