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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가벼움의 의미, 느림의 즐거움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36>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3.07.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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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가벼움의 의미, 느림의 즐거움
올 들어 새로 시작한 일이 있다.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고전 문학을 강의하는 것인데, 뜻밖에도 수강생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엊그제는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강의했다. 제목부터가 이런저런 상황에 패러디 돼 꽤 많이 알려진 소설이지만, 사실 술술 읽혀지지는 않는 사색을 요하는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강의하기도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나는 우선 제목의 참을 수 없는(unbearable)이 무슨 의미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서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인내하고 봐준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란 "도저히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을 수 없을 만큼 가볍다"는 의미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수천 톤 무게의 강철보다 더 무겁게 짓누르는, 그래서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존재라는 말이다. 언뜻 모순 같지만 쿤데라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는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이렇게 모순된 제목을 붙인 대표적인 소설이 켄키지의'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인데, 알다시피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혹은 네 번째 인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도 경제도 우리 인생과 마찬가지인데, 두 번 세 번 반복할 수 없고 시간이 흐른 다음 수정할 기회도 없이 어느 날 완료돼 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요즘 금융시장의 핫이슈인 출구전략, 그러니까 양적완화 축소를 떠올렸다.

전세계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지만, 그 역시 어떤 결정이든 쉽게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달리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정답이 있을 수 없고, 한번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그 충격과 후유증이 상당히 클 것이기 때문이다. 5년 전 달러화를 마구 찍어대고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끌어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의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어디다 비교할 수 있겠는가? 1950년대? 아니면 1970년대? 실업률, 인플레이션, 유가, 성장률, 주요 경제 여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지금과 똑같았던 시기는 없었다 .아니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것도 유사 이래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ed는무슨 결정이든 내려야 한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서는 배우처럼 처음이 곧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쿤데라의 소설을 좋아한다. 직설적이지 않은 다소 모호하고 애매한 비유 속에서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 '느림'에 대한 르몽드의 서평에는 재미있는 우화가 하나 나온다.

옛날 중국에 추앙추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게 한 마리를 그려달라고 했다. 추앙추는 열두 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황제는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그는 그림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 추앙추는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승낙했다. 그렇게 10년이 다 지났을 때 추앙추는 붓을 들어 먹물에 찍더니 한순간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완벽한 게 한 마리를 그려냈다. 그렇다면 이것은 느림을 칭찬한 것인가 아니면 속도를 칭찬한 것인가?

너무 어려운가? 아 참, 주식 투자는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 인생과 달리 잘만 하면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 경험에 의해 판단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는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느림의 즐거움을 느껴보시기를. 느림은 게으름이나 따분함이 아니라 여유와 한가로움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면, 한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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