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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마운드 내려온 박찬호는 지금 행복할까

장윤호의 체인지업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입력 : 2013.07.27 09:05|조회 : 10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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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을 통해 만들어낸 박찬호 작품.
↑ 화면을 통해 만들어낸 박찬호 작품.
박찬호를 주제로 기획한 전시회 ‘The Hero-우리 모두가 영웅이다!’를 보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마침 박찬호가 예술 작품화한 자신의 형상 앞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밝은 웃음에 정겨운 몸짓까지 그는 행복해 보였다. 필자와 눈이 마주치자 ‘어! 오셨어요.’라며 성큼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손힘이 셌다. 살짝 퍼머 염색을 한 듯한 머리 스타일에 티셔츠, 흰색 바지 차림.

필자에게 그런 박찬호의 모습은 너무나 생소했다. 메이저리그라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무대,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를 거치며 야구장의 가장 높은 곳인 마운드에서 외롭게 싸우던 ‘승부사’의 모습이 여전히 머리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난 박찬호는 ‘패셔니스타’ 같았다. 강인했던 근육이 부드러워진 듯 몸매도 가벼워 보였고 밝고 화려했다. 필자가 저도 모르게 꺼낸 첫 인사는 “아니, 점점 더 젊어지십니까.”였다.

큐레이터 없이 혼자 천천히 박찬호의 족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박찬호가 남긴 이면의 기록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10년 가까이 그를 옆에서 취재했지만 혹시라도 놓치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가 궁금했다.

↑.RR이 앞에 새겨진 모자가 더블A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 모자. 그 오른쪽이 뉴올리언스 제퍼스, 왼쪽은 LA 다저스 등이다.
↑.RR이 앞에 새겨진 모자가 더블A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 모자. 그 오른쪽이 뉴올리언스 제퍼스, 왼쪽은 LA 다저스 등이다.
↑ 뉴욕 양키스 모자 안쪽에 직접 쓴 글 ‘지금 던질 공이 무엇인가’
↑ 뉴욕 양키스 모자 안쪽에 직접 쓴 글 ‘지금 던질 공이 무엇인가’

야구 모자 안쪽에 써 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던질 공이 무엇인가. 넌 목표 지점을 향해 공 하나만 최고로 던진다. Aggressive. Attack to target. I can do it. So. Just do it Chopp. 61.’.

이 글에서 ‘Chopp’는 필라델피아 시절 얻은 별명 ‘Chopper’를 줄인 것이다. ‘61’은 그의 배번. ‘차퍼(chopper)’는 ‘큰 칼, 혹은 작은 도끼’를 말하는데 필라델피아에서 불펜 투수로 활약할 때 어려운 위기 상황에 등판해 잘 막아낸다고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후반기에 ‘저니 맨’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팀들을 옮겨 다녔다. 필자는 도대체 글이 써져 있는 모자가 어느 팀 것인지 살펴보았다. 2010년 뉴욕 양키스 시절이었다.

2008년 LA 다저스에서 재기에 성공한 그는 2009년 필라델피아로 옮겨 내셔널리그 챔피언의 일원이 됐고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마운드에도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해 이듬해 2009년 월드시리즈 상대이자 우승팀 뉴욕 양키스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팀과 계약했으나 불펜으로만 27경기에 나서 35 1/3이닝을 던지며 2승1패, 평균 자책점 5.60으로 부진했다. 양키스는 기대 이하의 투구를 하고 있는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7월31일 방출했고 8월4일 피츠버그가 그를 영입했다. 박찬호는 피츠버그에서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인 124승 기록을 세우고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뉴욕 양키스에서 썼던 모자에 담긴 ‘공격적이 돼야 한다(Be aggressive). 목표 지점을 공략하라(Attack to target). 나는 할 수 있다(I can do it). 그러니 찬호야 해라(So. Do it Chopp 61)’라는 글이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지켜 나가보려고 했던 박찬호의 절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 박찬호는 마운드에서 자신이 느낀 고독을 ‘외로운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 박찬호는 마운드에서 자신이 느낀 고독을 ‘외로운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박찬호의 모자들 가운데 ‘저게 어느 팀이지?’ 의아하게 만들었던 것들도 있었다. 5년간 6,500만달러의 빅딜을 성사 시키며 화려하게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었던 그는 첫해인 2002시즌부터 햄스트링 허리 등 부상이 겹치며 최악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재활 기간 중이었던 2003-2004시즌 텍사스의 더블A 팀인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에서 뛰었을 때 모자였다. 또 하나는 2007시즌에 몸 담았던 ‘뉴올리언스 제퍼스’ 모자이다. 샌디에이고로 이적해 텍사스와 맺었던 5년 계약 기간을 채우고 2006시즌 후 다시 FA가 된 박찬호는 2007시즌 뉴욕 메츠와 계약하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경쟁에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뉴욕 메츠 트리플A 팀인 뉴올리언스 제퍼스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결국 박찬호는 뉴욕 메츠에서 겨우 1경기 선발 등판 기회만을 갖고 5월4일 방출됐다.

텍사스 시절의 부상에 이어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 또 그를 기다렸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기록에 2007시즌은 단 1경기 선발 출장만 있다. 나머지 기간은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피땀을 흘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그가 그 때 야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이 필자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전시회에는 그의 124승 공이 모두 진열됐다. ‘1996년 4월6일 메이저리그 첫 승, 2005년6월4일 100승, 2010년 10월1일 124승 메이저리그 마지막 승리’라는 기록도 적혀있다.

박찬호는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는 책을 출판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팬들을 만나고 있다. 전시회를 나오는 길에 박찬호가 두 딸과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접했다. 그가 마운드를 내려와 가족에게 돌아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행복해보였다.

그러나 야구를 떠난 박찬호가 여전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투수로서의 끝이 있었지만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에게 아직 시작은 없는 것이다. 야구로 돌아오지 않고서도 박찬호의 행복이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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