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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내가 사랑스럽다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3.08.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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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오~. 권태응의 ‘감자꽃’을 끝내 처분하고 말았다” 소주잔이 두어순배 돌았을까? 선배가 하소연했다. “누구요?” “권태응 몰라? 감자꽃? 자주꽃 핀 건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속내는 “나야 모르지” 싶은데 정색한 기색이 심상치않아 유순하게 대꾸했다. “왜요?” “왜는, 우라질, 재산세 내려고 팔았지”

속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고서동호회 회원일 정도로 옛 책에 애착이 많은 양반, 이사할때마다 처치곤란의 책들 때문에 형수의 구박을 감수해야했던 양반이다. 그 양반이 애면글면 아끼던 책 중 독립 운동가였던 권태응 선생의 동시집 ‘감자꽃’을 인터넷 경매로 46만 원에 팔았단다. 이제나 저제나 재개발 기다리는 아파트 한 채 지닌 죄 감당을 ‘감자꽃’으로 대신했단 사연이다. 듣다보니 족히 보름 남짓 된듯한데 아직도 술자리 하소연의 제 일성이다. “근데 그래도 그건 양반여. IMF땐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팔았잖나. 아 진짜 그 생때같은 책을..” 진짜 몇 날 며칠 배를 곯아 책 팔아 밥 먹었다는 옛사람 아무개의 일화에 비하면 가소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은 고와도 울근불근 화통한 성정의 선배다. 그 잦아드는 넋두리에 담긴 일말의 처연함이라니..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그 형이 그 책과 보낸 세월이 얼말까? 그 귀애하는 심정이, 그 귀애하는 눈길이, 그 귀애하는 손길이 그 세월동안 얼마나 분주히 가 닿았을까? 고승 법정 스님조차 마음 한 자락을 닦아주고 살펴주던 난 한포기에 얽어맸다 고백하지 않았던가.

한 세월을 같이 보낸 물건도 그럴진대 그 세월을 같이 보낸 사람이라면 어떨까? 얼마 전 떠나보낸 선배가 생각난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항상 입에 달고 살던 선배다. 술이 취해 말이 어눌해지면 단어를 고르면서 뒷머리를 쥐어뜯는 습관이 감히 귀여웠던 선배였다. 그 천진한 미소와 그 순박한 제스처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확실히 아끼던 물건, 아끼던 사람과의 별리는 슬프다. 하지만 아무리 슬프단 들 자신과의 이별만이야 할까? 이 세상의 시작을 같이 해서 한번의, 촌각의 헤어짐도 없이 함께한 ‘나’란 존재. 죽음이란 말이 그토록 공포스러운 것은 그런 존재와의 이별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영혼의 존재를 전제해서 말이다.

최근에 유명한 두 사람이 명을 달리했다. 김종학PD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두 사람의 별세가 다른 부음에 비해 충격적인 건 그만큼 유명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인들이 처했던 어려움과는 무관하게 인지도 면에서 충분히 성공한 반열에 든 이들의 죽음은 언제나 일반인들에게 여파를 남긴다. 가족과 지인들의 슬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 본 경험 없는 이들이 없을 테니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긴 어렵지 않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과의 이별을 받아들였을까? 누구나 한번은 맞아야할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스스로와의 이별, 죽음을 맞기 위해선 많은 세월,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선배와 헤어져 들어와 술기운과 장마철 습기로 꿉꿉해진 몸을 씻어내며 거울을 들여다보니 소복하게 솟아오른 중년의 똥배가 민망하다. 하지만 어쩔거나. 장동건과 바디체인지가 될 것도 아닌데.. 죽으나 사나 함께 갈 몸인데.. 그러고 보니 제법 귀여운 맛도 있어 보인다. 남에게 자랑할 만 못하다 해서 스스로 사랑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거울 속 나에게 한마디 건네 본다. “어이, 배불뚝이, 자네 제법 사랑스럽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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