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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일제 쇠말뚝, 더 독하게 뽑아낸 뚝심

머니투데이
  • 박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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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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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하 민족정기선양위원장…"반성않는 日통탄, 말뚝 녹여 종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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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의 말 바위 인근에 위치한 쇠말뚝의 흔적. 십자가 부분에서 쇠침을 빼냈지만 일제 침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사진=박상빈 기자
노인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5년 5개월만에 다시 찾은 그 곳.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말바위'까지 서두르지 않고 그는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은 뜨거워도 비 온 뒤 숲은 선선했다. 2007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1일까지 4개월간 자주 찾은 곳. 소윤하씨(69)는 이 곳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박아 놓은 쇠말뚝을 뽑았다.

말바위는 삼청공원 입구에서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바위 이름. 모양이 말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야기도 있고, 조선시대 말을 탄 문무백관이 시를 읊으며 쉬던 자리라 해 일컬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말바위 인근에 접어드니 바위에 새겨진 구멍 3곳. 흙은 메워져 있지만 상처는 뚜렷했다. 쇠말뚝을 빼고 남은 흔적. 5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소씨는 사단법인 민족정기선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8년전 41세때이던 1985년부터 '일제 쇠말뚝 뽑기' 운동을 펼쳐왔다.

북한산 구기지구 독박골에 위치한 말뚝의 흔적을 설명하는 소윤하 위원장. /사진=박상빈 기자
북한산 구기지구 독박골에 위치한 말뚝의 흔적을 설명하는 소윤하 위원장. /사진=박상빈 기자
2004년 여름. 말뚝을 뽑았다고 인근 군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일제 것인지 감정을 부탁했는데 출입제한 장소라 현장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 후 잊혀진 말바위 쇠말뚝 이야기는 3년 후에야 다시 들렀다.

"2007년 자주 가던 종로구의 한 밥집에서 쇠말뚝 이야기를 다시 접했죠. 철조망에 둘러싸여 민간인이 들어가지 못했던 말바위 등산로는 참여정부 때 개방됐어요. 머릿 속을 스치는 3년 전 들었던 군부대의 말뚝 이야기가 떠올랐죠. 혹시 남은 말뚝이 여전히 있지 않을까. 곧바로 산을 찾았어요."

있었다. 말바위 초입에 구멍 3곳이 있었다. 군부대가 말뚝을 뽑았다는 곳. 말바위 부근에서 일본인들이 박아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쇠말뚝 1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화강암 재질의 바위 위에 시멘트가 덮여 있었다. 그 위로 쇠말뚝의 구부러진 부분이 도드라져 있었다.

말뚝을 뽑기 위해 가방 속에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망치와 정을 꺼냈다. 시멘트를 우선 깨고 쇠말뚝 주변의 돌을 최소한으로 제거해 말뚝을 뺄 공간을 만들었다. 참으로 '징하게도' 말뚝을 깊이 박아 놨다. 제거작업은 2007년 가을을 넘겨 이듬해 마무리됐다.

쇠말뚝 크기는 직경 2.5㎝, 길이 60㎝나 됐다. 뽑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수십년간 쌓은 노하우가 어디 가나. 뺄 공간을 만든 후에는 쇠말뚝이 빠지도록 망치로 치며 흔드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소나무에 고무줄을 매달아 말뚝을 고정시켜 망치로 내리쳤다. 작업을 도운 소나무는 휘어져 있었지만 푸르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는 가도 싶었다.

힘들 땐 바위 위에서 잠시 눕기도 했다. 행인들과 대화도 했다. 명륜동에서 서대문을 향해 가기 위해 지나는 공원에서 한 70대 노인이 말했다. "이제 뽑네요. 어렸을 적 일제가 박은 것 다 기억나는데." 가슴이 울컥했다. 말뚝을 뽑고 난 뒤 처음 맞는 삼일절에 정안제(正安祭 바르게 평안을 비는 제사)를 열었다.

소 위원장은 일제가 쇠말뚝을 박은 이유에 대해 여러모로 궁리를 해 봤다. 정확히 떨어지는 답은 없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구전되는 말뚝에 대한 유래는 공통적이다. 조선에 '큰 인물' '인재' '장수(將帥)' '부자(富者)'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동안 말뚝을 뽑으러 다니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제혈침의 시론'이라는 글도 썼다. 일본 스스로 자료를 내거나 이유를 설명해 말뚝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답이 없다. 몇몇 일본인의 양심 선언과 제보를 통해 확인된 쇠말뚝은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꺾기 위한 혈침이라는 흉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 위원장은 장소를 옮겼다. 이번엔 북한산 구기지구에 있는 '독박골'. 독박골의 일제 말뚝에서도 태어나지도 않은 조선의 인재를 향한 일본의 저주가 날선 칼에 묻은 핏방울 처럼 섬뜩했다.

독박골에는 기자신앙(자식이 없는 부녀자가 자식을 낳기 위해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바위에 말뚝의 흔적이 있었다. 여기서도 말뚝을 제거했다. 빈 구멍이 4곳, 쇠말뚝이 3곳 박혔던 바위. 빈 구멍의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일제 말뚝의 같은 형태로 판단됐다. 3곳에는 직경 3㎝, 길이 80㎝ 말뚝이 박혀 있었다. 여기에선 2001년 광복절(8월15일)부터 31일까지 보름 이상 산 속에 텐트를 치고 말뚝을 뽑았다.

소윤하 위원장의 자택에 모아 있는 쇠말뚝의 모습들. / 사진=박상빈 기자
소윤하 위원장의 자택에 모아 있는 쇠말뚝의 모습들. / 사진=박상빈 기자
경복궁을 지키는 북악산과 북한산은 한반도의 심장이다. 일제는 '조선의 심장'에 쇠말뚝을 비수처럼 꽂아 넣었다. 서울뿐 아니라 아직도 찾지 못한 쇠말뚝은 한반도의 이곳 저곳을 짓누르며 고통을 안기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에게 '미신이다' '미쳤다'라는 얘기도 했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쇠말뚝은 일제가 조선, 나아가 대한국민들의 앞 날을 암담하게 하기 위해 박은 흉물이라는 점이에요. 일제의 의도와 반대로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하려 이것들을 빼냅니다. 현재를 위한 일이라면 시간과 돈을 없애가며 말뚝을 뺄 이유가 없어요. 내가 사라지더라도 영원히 남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노력인거죠."

1985년 첫 말뚝을 뽑은 이후 지난 2월28일까지 28년간 제거한 일제의 말뚝은 376개. 그 중 상당수는 과천에 위치한 반지하의 좁은 집에 보관했다.

국권이 희미해져가던 1894년 처음 박힌 일제 말뚝 이후 조선은 점점 불행해져만 갔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침'을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나라가 성장한 시기의 시작점과 같다. 소 위원장의 희망은 여전히 말뚝이 뽑히지 않아 힘든 삶을 사는 북한에서 말뚝을 뽑는 것이다.

"집 안에 모아 놓은 말뚝과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북한에서도 뽑아야 할 말뚝 모두를 녹여 커다란 종을 만들고 싶어요. 패망 이후에도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지금도 주변 국가에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죠."

올해도 어김없이 광복절이 왔다. 해방 68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일제의 흔적은 여전하다. "한반도에 박혀 있는 우리 것 아닌 일제의 쇠말뚝을 계속해 뽑아갈 겁니다. 삶을 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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