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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白圭)의 상덕(商德)

[김영수의 궁시파차이(恭喜發財)]<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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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규(白圭)의 상덕(商德)
먹고 입는 문제를 다루는 '치생'(治生)의 원조로 꼽히는 백규는 기원전 5세기 초, 즉 전국시대 초기에 활약한 이론과 경험을 모두 겸비한 수준 높은 경제 전문가였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탄탄한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이론을 남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다소 지나치지만 독특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사업상의 노하우를 철저하게 의식하고 관리하는 오늘날 전문 경영인의 모습을 이런 그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백규는 시세의 변화에 민감한 상인이었다. 상인으로서 그는 경제 상황은 말할 것 없고 정치와 사회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남들이 내다팔면 사들이고, 남들이 사들이면 내다파는 효율적인 사업관 내지 경영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갖추어야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근검절약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았으며, 잔꾀로 돈을 벌지 않았다. '상도'(商道)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상도'를 '상덕'(商德)의 차원으로 승화한 참다운 경영인의 모범이었다. 사마천은 이런 백규를 두고 "직접 체험했고, 그 결과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백규의 경제사상에서 가장 기본은 '시세의 변화를 낙관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경제 문제를 대하는 당시의 인식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백규는 특유의 지혜와 날카로운 상인의 안목으로 시세의 변화를 관찰하여 매매교역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고, 나아가서는 사회생산의 발전을 촉진했다.

이 같은 기본 사상에 입각하여 백규는 '남이 내다팔면 나는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나는 내다 판다'는 원칙으로 치부했다. 당시 상황에서 백규는 간단한 물물교환 방법을 취하여 상품을 교역했다. 즉, 서로에게 있고 없는 물건을 교환하여 사회적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했다. 그의 뛰어난 점은 그가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통찰했다는데 있다. 다른 사람은 물건이 남아돈다고 생각하여 내다 팔 때 그는 대량으로 사들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여겨 사들일 때 그는 급히 필요로 하는 곳에 내다 팔았다. 쉽게 말해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내다 팔아 이익을 얻고 재부 축적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다. 2000여 년 전에 살았던 백규는 이런 점을 깊이 인식하여 '남이 내다팔면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내다 판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한나라 때 귀족 집안 주방의 모습. 어떤 면에서 주방은 경제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한나라 때 귀족 집안 주방의 모습. 어떤 면에서 주방은 경제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백규는 분초를 다투어가며 경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재빨랐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곧 돈'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일찍 깨우치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물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의 축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노복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거친 음식이라도 달게 먹었고, 하고 싶은 것을 자제할 줄 알았다. 그는 오늘날 사치와 향락에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는 일부 졸부들과 못된 재벌들이나 그들의 못된 자식들과는 전혀 달랐다. 진정한 경제인과 경영자들이라면 백규의 이런 사상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백규는 전체 국면을 살피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거시적 안목으로 경제무역과 재부의 축적이란 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경영과 사업에서 작은 이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고, 삐뚤어진 논리와 얄팍한 꾀로 이익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의롭지 못한 재물은 더더욱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화물의 교역과 유통을 생산의 발전과 긴밀하게 연계시켜 경영상 자본이 축적되고 생산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그는 많은 것으로 모자란 것을 보충하거나 구제할 것을 주장했다. 즉, 각종 상품이 교환되고 유통되면서 서로 생산의 발전을 촉진하도록 돕게 하고, 무역과 화물교환이 진정으로 경제와 생산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백규의 경제사상은 소박하면서 심오하다.

그는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옻은 내다 팔았으며,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 팔았다. 이러한 경영은 단순히 이익을 남겨 돈을 버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내려가면 그것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대신, 농가에서 필요한 실이나 옻을 내다 팔아 그들의 수요에 부응했고,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라면 곡식을 내다팔아 식량을 공급했던 것이다. 이는 경제무역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다리와 같은 작용을 했다. 그는 경영인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돈을 불리려면 값싼 곡식을 사들이고, 수확을 늘리려면 좋은 종자를 썼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모범을 보였고, 돈을 벌기 위해 속이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소박하면서 성실한 경영인으로서 고상한 '상업도덕', 즉 '상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상도'는 오늘날 경제인들이 갖추어야 할 정확한 길을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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