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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주인이 되는 첫걸음, 마음과 떨어지기

[웰빙에세이] 내 마음을 길들이고 넘는 법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3.08.24 09:15|조회 : 1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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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넘으려면? 마음을 길들이려면? 마음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 마음을 따라 가면 안 된다. 마음과 떨어져야 한다. 마음과 떨어져서 마음을 똑 바로 보고 공부해야 한다. 제대로 공부해서 마음의 속성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마음이 되면 마음을 바라볼 수 없다. 마음과 거리를 만들고 마음을 바라보아야 마음공부도 할 수 있다. 마음을 알고, 마음을 길들이고, 마음을 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마음과 떨어지기! 내가 쓰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속상할 때, 열 받을 때, 맥 빠질 때, 심란할 때 쓰는 방법이다. 모든 걸 다 쓸 필요는 없다. 대개 상황에 따라 한두 가지면 된다.

1. 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

첫째, 무상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덧없다. 왔다가 간다. 변하고 사라진다. 정지된 것은 없다.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다.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게 변하니 무상이고, 나도 변하니 무아다. 틱낫한 스님은 가르친다. "무상은 시간의 관점에서 본 무아이며, 무아는 공간의 관점에서 본 무상이다."

무상이 곧 무아이니 누가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모든 것이 꿈결이다. 나의 삶은 꿈과 같다. 당신의 삶도 꿈과 같다. 나의 삶은 '그림자가 꾸는 꿈'이다. 내가 그림자다. 그 그림자가 꿈을 꾼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아니 한 번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흐르고 나도 흐르니까. 욕망도 헛되고, 집착도 헛되다.

나는 정말 무상을 아나? 내 마음에서 욕망과 집착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니 나는 아직 무상을 모른다. 끝없이 탐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별 것 아닌 일에 자존심 내세우니 나는 아직 멀었다. 마음은 원래 무상을 모른다. 그러니 무상의 자리로 가서 마음과 거리를 만든다. 그곳에서 무상을 모르는 마음을 바라본다. 무상을 모르는 내 마음의 욕망과 집착을 바라본다.

2. 나는 조건이라는 함정에 빠진 조건 없는 영혼이다

둘째, '완전한 수용', '순수한 긍정'을 떠올린다. 시비하고 분별하는 것은 결국 나의 견해일 뿐이다. 찬성과 반대, 내 편과 네 편, 맞고 틀리고,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이런 견해가 곧 나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는 아니다. 단 하나의 조건도 없는 완전한 수용은 모든 시비와 분별을 무력화한다. 모든 이중성을 무너뜨린다. 그곳에서 마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완전한 수용,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완전한 사랑이라고 하자. 모든 걸 받아들이는 사랑, 아무 조건이 없는 사랑, 용서하고 화합하고 합일하는 사랑! 나는 그런 순도 높은 사랑을 하고 있나? 한 적이 있나? 내 사랑은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다. 주면 받아야 한다. 못 받으면 섭섭하다. 원망이 쌓인다. 내 사랑에는 미움이 동행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대에 못 미치면, 내가 준 것만큼 되돌려 주지 않으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사랑은 갑자기 미움으로 변한다. 내 사랑은 변덕스런 마음의 것이다. 가슴의 것이 아니다.

완전한 수용, 조건 없는 사랑에는 시비와 분별이 없다. 분리와 고립이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 따지고 가를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여여하다. 있는 그대로다. 나는 순리를 따라 강물처럼 흐른다. 드넓은 바다가 되어 너울너울 파도의 춤을 춘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하나다. 만물은 하나다. 내 안에 만물이 있다. 만물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정말 그것을 아나? 내 마음에 시비와 분별이 있으니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내 사랑에 조건과 이유가 많으니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시비하고 분별하는 마음 안에 있다. 그러니 완전한 수용, 순수한 긍정, 조건 없는 사랑의 자리로 가서 마음과 거리를 만든다. 그곳에서 시비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바라본다. 시비하고 분별하는 마음이 제멋대로 금을 긋고 담을 쌓는 것을 바라본다. 마음을 넘은 공(空)의 자리에는 어떤 금도, 어떤 장벽도 없으리라. 시인 루미는 말한다. "그대는 조건이라는 함정에 빠진 조건 없는 영혼이다. 마치 일식에 가려진 태양처럼."

3. 나는 'now here'가 아니라 'no where'다

셋째, '지금 여기'를 떠올린다. 내 마음은 '지금 여기'에 없다. 그것은 먼 훗날을 헤맨다. '내일 또 내일'을 외친다. 과거를 떠돈다. 흘러간 영화에 잠긴다. 옛 상처를 씹는다. 여기 말고 저기를 배회한다. 이것 말고 저것, 이 자리 말고 저 자리, 이 사람 말고 저 사람을 원한다. 내 마음은 '지금'에 머물 수 없다.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어디에 있나? 지금 여기에 있나? 나 또한 마음 따라 멀리 외출중이니 지금 여기에 없다. 나는 'now here'가 아니다. 나는 'no where'다. 그러니 지금 여기의 자리로 가서 마음과 거리를 만든다. 마음과 함께 과거 아니면 미래로 달아난 나를 붙잡아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온다. 더 좋은 곳, 더 뛰어난 것, 더 높은 자리, 더 멋있는 사람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는 나를 붙잡아 '바로 여기 이곳'으로 데려온다. '지금 여기'의 자리에서 '그때 저기'에 있는 마음을 바라본다.

4. 나에게 죽음은 가장 큰 두려움이다

넷째, 죽음을 떠올린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마음은 죽음이 두렵다. 죽음은 마음이 가진 것을 모두 회수해간다. 과거의 모든 기억과 미래의 모든 꿈을 걷어간다. 평생 이룬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간다. 마음의 종말이 곧 죽음이다. 마음은 죽음 너머를 모른다. 그러나 마음 너머엔 죽음이 없다. 나는 몸과 마음을 벗어나 우주의 에너지로 돌아간다. 나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에너지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 속에서 삶은 우주적 농담이고, 죽음도 우주적 농담이다.

나는 정말 그것을 아나? 내 마음에 죽음의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으니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나에게 죽음은 농담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안에 있다. 그러니 죽음 너머 영원한 우주 에너지의 자리로 가서 마음과 거리를 만든다. 그곳에서 죽음을 겁내는 마음을 바라본다. 죽음이 거짓인 줄 모르는 나, 우주가 건네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나를 바라본다.

5. 나는 사이코드라마에 홀딱 빠져 있다

다섯째, 영화를 떠올린다. 내 마음은 하루 종일 종알댄다. 시시콜콜한 사연들을 쉬지 않고 엮어낸다. 그것은 마음이 연출하는 두서없는 심리극이다. 1년 365일 눈만 뜨면 시작하는 사이코드라마다. 나는 그것을 한편의 영화라 치고 극장 관람석에 앉는다. 그것이 아무리 웃겨도,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기가 막혀도 영화는 영화일 뿐! 내가 무대 위로 뛰어 오를 순 없다. 내가 스크린 속으로 달려들 순 없다. 나는 단지 영화를 보는 자다.

나는 정말 그럴 수 있나? 보는 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나? 그것은 어렵다. 나는 영화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나는 주인공이어야 한다. 어디든 빠지면 안 된다. 멋있어야 한다. 영화는 성공해야 한다. 재밌어야 한다. 대박이어야 한다. 나는 내 마음이 감독하는 사이코드라마에 푹 빠진 자다. 영화의 인기에 매달린 자, 흥행에 목숨 건 자다. 나는 뒤죽박죽 드라마에 휩쓸리고 휘둘려 고단하다. 바쁘다. 정신없다.

그러니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를 관람석으로 끌고 나와 거리를 만든다. 나는 관객이다. 구경꾼이다. 나는 끼어들지 않는다. 나와 무대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넘지 못할 선이 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상은 아무리 웃겨도,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기가 막혀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빛과 어둠과 색의 향연일 뿐이다. 나는 관람석에 편히 앉아 영화를 즐긴다. 영화는 상영 중이고, 나는 지켜보는 중이다. 나는 보는 자다.

나는 정말 그럴 수 있나? 보는 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나? 한편의 영화를 보듯 삶을 관조할 수 있나? 그것은 어렵다. 나는 틈만 나면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영화에 푹 빠져 도무지 거리를 만들 수 없다. 선을 지킬 수 없다. 영화만 있고 그것을 보는 자는 없다. 그러니 노는데 정신 팔린 아이를 불러다 앉히듯 수시로 나를 불러 앉힌다. 마음의 부름에 혹하는 나를 붙잡아 제자리에 앉힌다. 그 자리에서 찬찬히 마음이 상영하는 사이코드라마를 감상한다.

마음과 거리 만들기! 마음을 바라보고, 마음을 알고, 마음을 넘는 것도 여기서 시작할 것이다. 마음과 떨어지기!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길들이고,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도 이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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