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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으로 출근하는 대한민국 고위공무원들

[박재범의 브리핑룸]

박재범의 브리핑룸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입력 : 2013.09.02 07:15|조회 : 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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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두일(無頭日)'이란 말이 있다. 회사 상사가 출장이나 휴가로 자리를 비운 날을 뜻하는 조어다. 직장인 입장에선 상사가 없는 날 만큼 편한 날도 없다. 좋은 의미로 여유가 생기는 날, 나쁜 의미로 긴장이 풀리는 날이다. 직장인이라면 한마음일 거다.

같은 직장인인 중앙부처 공무원도 다를 바 없다. 직장의 수장(머리)이 없는 날은 얼굴빛부터 다르다.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한 부처의 넘버2인 차관을 지낸 전직 관료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다. "아무리 좋은 상사도 없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그래도 '무두일'은 아주 가끔 있어야 맛이다. 우두머리가 매일 자리를 비운다면 무두일의 기쁨(?)과 여유(?)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 물론 상사가 없다고 밑에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상사의 유무가 생산성에 역할을 미친다면 조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다.

# 무두일을 떠올린 것은 2013년 세법개정안 논란을 보면서다. 세법 개정안은 1년 농사의 결과물이다. 작게는 기획재정부 세제실, 크게는 대한민국의 생산물이다. 개개인, 자영업자, 학교, 기업 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기에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외부 연구기관의 이름을 빌려 풍선을 띄어 보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 간을 보기도 한다. 경제부처의 정책중 정무적·정치적 고려를 해왔던 게 세법 개정안이었다. 경제논리로만 접근하거나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번엔 '대실패'를 했다. 조세 저항은 쓰나미에 가까웠다. 곧바로 수정안을 만들 정도로 체면을 구겼다. 여러 분석이 나온다. 모순(증세없는 복지)이 낳은 필연적 결과물, 경제 원리에 매몰된 경제 관료의 오만이 빚은 참사….

분석에 맞춰 데칼코마니같은 해법이 따라 붙는다. 복지 공약 수정, 증세 필요성, 그리고 경제 관료 문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세법 개정안을 준비한 관료들이 종종 강조한 올 세제개편의 변수가 하나 있다. 과거와 달라진 변수, 바로 '세종' 시대다.

# 무두일, 2013년 세종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매일이 무두일이다. 사무관들은 세종청사를 지킨다.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서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 부처장관은 집무실에 앉은 날이 거의 없다. 차관, 1급 공무원은 서울 사무실이 더 익숙하다. 국장들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택시와 기차, 커피숍에서 보낸다.

문제는 서울의 이들조차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거다. 그렇다보니 수평적 논의보다 수직적 보고·지시에 익숙해진다. 정책 하나를 만들어 보고하면 그걸로 끝난다. 혹 다른 파트에서 검토할 게 있으면 장관이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쪽에선 전후맥락도 모른 채 뒤치다꺼리를 한다. 검토 후 문제가 있어도 끝난 사안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한 관료는 "크로스 체크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장관이 모 국장의 보고를 받다가 차관보를 부를 수도, 짬이 나 차관들을 불러 차 한잔을 마실 수 없는 현실 탓이다. 세법 개정안도 그랬다. 논리적으로 '완벽(?)했던' 세법 개정안에 대해 더블 체크, 크로스 체크를 했다면 '완전'한 정책으로 빛을 봤을 것이란 얘기다.

# 공직 사회의 무두일, 대한민국 고위관료들의 유목민 생활은 진행형이다. 언제 끝날지, 끝나긴 하는 건지 불명확하다. 어찌 보면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출장비, 시간 소요 등은 값싼 '비효율'이다. 협업과 부처 칸막이 해소를 강조하는 정부가 오히려 스스로는 수직화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세법 개정안보다 더 큰 것을 잃고 있고 더 큰 것을 잃게 할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정부도 안다. 추경호 기재부 1차관이 일요일 오후마다 간부들과 회의를 여는 것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 혹자는 21세기, 스마트 워크 시대를 말하기도 한다. 충분히 소통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가능한 소통이라면 대한민국 정부부처 장관과 고위관료들을 자기 책상에 앉혀놓고 스마트워크를 해도 되지 않을까. 부처 내에서 스마트워크를 하라고 하면서 청와대와는, 국회와는 '스투피드(stupid) 워크'를 하라는 것은 불경이 아닐지.

청와대와 국회가 세종에 올 게 아니라면 장관과 고위관료들만이라도 일터로 보내주자. 대한민국 계열사 사장이, 임원이 자기 회사가 아닌 길바닥으로 출근하는 것은 비정상 아닌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제일 먼저 할 정상화 대상은 세종의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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