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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雜s]'개, 자동차, 의사'...피하고 볼 일

-달리기 편-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필독서'로 보는 중앙마라톤 42.195km

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입력 : 2013.11.10 08:11|조회 : 19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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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단풍이 절정에 달한 거리를 하염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은 1년에 며칠 누릴 수 없는 낭만이다.
더구나 보통땐 차로 가득 차던 드넓은 서울 복판 도로를 전세내 낙엽을 밟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는 호사다. 이맘때면 오전기온이 사람이 가장 잘 달릴수 있다는 영상 6~9도가 된다.
11월 첫째주 열리는 중앙마라톤을 해마다 빼먹고 넘어갈 수 없는건 그래서이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 8시 출발인데, 7시가 넘어 눈을 떴다. 이런…
무슨 일이든 한 두 번, 횟수가 쌓이다 보면 '첫경험'이 주던 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일상'이 된다. '일상'은 '숙달'과 '편안함'일수도 있고, '느슨함'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다.
바나나 하나 먹고 화장실 들렀다가 20년째 입고 있는 러닝팬츠와 회사 로고를 새긴 10년된 유니폼을 후다닥 걸쳤다.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막기 위해 러닝복 위에 대용량 쓰레기 봉지(출발때까지 1회용 보온 장비론 이만한게 없다)에 머리구멍을 뚫어 뒤집어 쓴 채 자전거를 타고 출발점인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7시50분.

3월에 열리는 동아마라톤은 광화문에서 출발해서 잠실운동장으로 골인하고, 11월 중앙마라톤은 잠실운동장에서 출발해 수서를 돌아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순환코스다. 서울에서 열리는 양대 대회의 골인점이 이곳이고, 그 외 크고 작은 마라톤이 열리는 한강변을 끼고 있으니 잠실이 서울의 '마라톤 8학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년마다 꼬박꼬박 허리가 휠만큼 전세금 올려주며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이유에 '눈 뜬 뒤 얼마 안돼 주로에 설 수 있다'는 것도 하나 억지로 끼워넣어 쓰린 속을 달래본다.
 (서울=뉴스1)  3일 오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 앞에서 열린 2013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13.11.3/뉴스1
(서울=뉴스1) 3일 오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 앞에서 열린 2013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13.11.3/뉴스1

출발선에 설때마다 느끼는 건 가벼움이 주는 자유다. '달리는 현자' 조지 쉬언의 말처럼 "러너에게는 가벼운게 좋은 것이다. 러너의 삶은 몇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달릴땐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기가 철학인 이유를 보려면 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마라톤 출발총성이 울릴 때 걸치고 있는 건 팬티와 런닝 한장, 운동화 한켤레가 전부다. '2시간 3분 23초'의 세계신기록 러너 케냐의 윌슨 킵샹 키프로티치도 걸치고 있는 건 나하고 다를게 없다. 프로와 아마추어 장비의 가격차가 가장 적은 운동중의 하나가 마라톤이다.

물론 도로 위에도 '차별'은 있다.
수천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들은 엘리트들 선수들이 먼저 출발한다. 아마추어들도 기록에 따라 서너 등급으로 나뉘어 시차를 두고 출발한다. 내 가슴에 달린 있는 배번은 '4시간 이내~3시간 30분' 주자를 의미하는 B그룹.
나쁘지 않은 '계급'이다. 기록이야 '도토리 키재기'인 아마추어 마라톤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더해 주는 재미와 동기부여를 무시할 순 없다. 학생이 성적으로 규정되고, 골프가 핸디로 서열이 갈리듯, 러너들의 통성명에는 직장도 직위도 필요없다. '김 아무개, 3시간30분 정도 뜁니다' 이게 관등성명이다.
행복한 삶의 첫 관문이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부모 잘 만나는 것일 정도로, 출발이 다르면 따라잡기가 좀체 힘든게 인생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D 그룹에 속해 있어 출발 총성이 울린 뒤 한참 뒤에야 출발선을 넘어설수 있다 하더라도 더 힘들게 그 시간을 벌충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출발선을 통과하는 시간부터 '넷타임'으로 기록을 잴 수 있게 만든 무선인식(RFID) 제품 '스피드 칩(한국제품이다)'은 수천년간 별로 변한게 없는 아마추어 달리기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발명품이다.

순환코스 마라톤의 재미중 하나는 선두주자와 후미주자를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마라톤은 출발후 1시간30분 정도 지나면 우승 후보를 볼 수 있다. 나는 기껏 15킬로미터를 조금 지날 시점에 이 사람들 벌써 30킬로미터를 향해 달리고 있다. 100미터를 17~18초에 뛰는 속도로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러닝 머신'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맨 앞에서 달리고 있던 주자는 케냐의 제임스 쾀바이. 이 대회만 세 번째 우승했다. 이번에 풀 코스에 처음 도전해 2위를 한 마크 코릴도 케냐 선수다. 한참 뒤에 한국 선수가 지나간다. 그나마도 대단한 거다.

한국 사람이 케냐 사람들보다 잘 달리는 건 몇 백년 몇 천년 이내에는 불가능하다(이봉주 같은 아주 예외 한두명 빼고).
왜? 우리와는 다른 DNA가 케냐인, 특히 킵샹 쾀바이 같은 선수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는 칼렌진(Kalenjin) 부족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역사상 2시간 10분 이내에 달린 미국인은 17명이다. 칼렌진 부족은 2011년 10월 한달 동안 2시간 10분 이내 기록을 낸 사람만 32명이다, 페이스북에서 본 유머다. 한국인 가운데 2시간 10분 이내 기록을 낸 사람은 10명이다. 칼렌진 부족의 기록에 대해서는 팀 녹스 '달리기의 제왕' 제 6장 참조)

이들은 화살이 발명되기 전부터 이른바 ‘지속사냥 PERSISTENT HUNTING)’으로 동물을 잡았던 최고 사냥꾼들의 후예다. 고상한 말로 '지속사냥'이지, 아프리카 대평원에서 영양 한 마리를 찍어 그 한 놈만 죽어라고 지쳐 쓰러질때까지 쫓아가서 몽동이로 때려 잡거나 목졸라 죽이는 무식한 방법이다.(아프리카 남부 코이산족은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거리라면 게임이 안되지만 수십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는 장거리 경주에선 사람을 이길 동물이 별로 없다. 치타나 사자 영양 처럼 온몸이 털로 덮여 있는 네다리 단거리 고수들은 두발로 달리는 사람처럼 달리면서 복사열을 적게 받고, 또 열을 발산할 수 있는 기제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장거리 러너'로서 인간의 장점에 대해선 베른트 하인리히 '우리는 왜 달리는가' 참조)
이런 사냥꾼의 후예들과 비교하면 일찍이 수렵문화를 접고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조상들의 DNA는 애초부터 달리기보다는 걷기에 적응돼 있을 터이다.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3일 오전 서울 잠실종합경기장에서 열린 2013중앙서울마라톤 대회에서 제임스 킵상 쾀바이(30, 케냐)가 2시간6분25초로 결승점에 1위로 도착하고 있다.  3연패를 달성한 제임스 킵상 쾀바이도 세계 신기록 보유자 윌슨 킵샹 키프로티치 처럼 칼렌진 부족출신이다.2013.11.3/뉴스1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3일 오전 서울 잠실종합경기장에서 열린 2013중앙서울마라톤 대회에서 제임스 킵상 쾀바이(30, 케냐)가 2시간6분25초로 결승점에 1위로 도착하고 있다. 3연패를 달성한 제임스 킵상 쾀바이도 세계 신기록 보유자 윌슨 킵샹 키프로티치 처럼 칼렌진 부족출신이다.2013.11.3/뉴스1

25킬로미터 반환점을 돌면, 그때부터는 나보다 후미 주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면서 가는 맛이 쏠쏠하다. 저렇게들 힘들어 하면서 뛰는 사람도 있는데 난 양호한거지..하는 위안도 할 수 있다. 달린다기보다는 걷는다는 말이 맞는 주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때쯤이다.
혼자서 더 이상 앞길을 개척해 갈 에너지를 상실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회 안전망’이라는게 있다. 마라톤에는 ‘회수차’가 있다. 준비가 부족해서, 부상을 당해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혹은 애초에 객기로 도전했다가,,,더 이상 뛰지 못하고 뒤처진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이다.

사회에서 '저소득층, 차상위층'이 살아가기가 중산층 이상보다 훨씬 고달프듯, 마라톤도 후미주자들이 겪는 고통이 훨씬 크다. 어느 '개념' 마라토너가 우승한뒤 인터뷰에서 힘들지 않느냐는 (참 어리석은)질문에 “난 두시간 조금 넘게 뛰면 되지만, 아직도 뛰고 있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훨씬 힘들 거다”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냥 힘든게 아니고 가끔은 험한 꼴도 겪게 된다. 선두 주자에게 박수를 쳐주던 길가 구경꾼들이나 운전자들의 인내심은 1시간 넘게 교통차단을 겪다보면 한계에 다다른다. 똑바로 앞으로 걸어가기도 힘든데, ‘무능력자’ ‘빨리 아웃시켜야 할 대상’이란 욕들으며 뛰는 건 더 힘들다.

“길 전세냈냐” “니들이 뭔데, 누구 맘대로...왜 우리가 불편을 참아야 해” 이런 불만은 고스란히 뒷 주자들한테 쏟아진다. (마라톤 대회 시간에 아이 학원 태워다 줘야 하는 내 아내가 늘 하는 말이다.. “공공행사니까, 좀 참아주면 안돼” 라고 대들어 보지만 “지들 놀자고 하는게 무슨 공공행사는…”라고 눈꼬리가 올라가면 그냥 꼬리를 내리는게 현명한 자세다. ‘공공, PUBLIC’의 정확한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무거운 다리 질질끌며 힘들게 한발한발 옮기다 보면, 교통 통제를 뚫고 길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오토바이와 부딪히기도 하고, 심지어 홧김에 자동차 머리를 들이 미는 운전자들의 위협도 맞닥뜨리게 된다. 쉬언은 러너들의 적 세가지(자동차 개 의사) 중에 자동차를 맨 앞에 뒀다.
이들은 다 피하는게 상책이다. 달려드는 개나 자동차와 싸워 봤자 남는게 없다. 러너가 꼭 기억해 둬야 할 말이다. (의사가 왜 적이냐고? '관절다친다 어쩐다' 하면서 달리기같은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라는게 의사들이니까)

30킬로미터 지점.
180그램짜리 초경량 러닝화조차도 무거워진다. 그래도 5킬로미터마다 있는 급수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물 한컵씩을 마시며 200미터를 걷는 '워크 브레이크(Walk Break:제프 갤러웨이의 '마라톤 나도 할 수 있다')'를 하며 페이스를 유지한 덕에 나를 추월해 갔던 주자들을 다시 한명 한명 제친다.

맨발로 풀코스를 뛰고 있는 러너가 앞에 보인다. 달리기 관련 논쟁거리가 되는 것중의 하나가 맨발 달리기, 내지는 '러닝화의 위험성'이다.
인간은 수만년 전부터 맨발로 뛰어왔고, 발 구조도 그렇게 돼 있다. 맨발로 뛸 때 자연스럽게 가장 부상이 적은 주법, 즉 앞꿈치부터나 발바닥 전체가 착지하는 방법으로 뛰게 돼 있다는 것이다.
나이키같은 회사가 쿠션 러닝화를 발명하면서부터 뒷꿈치부터 내딛는 주법이 '상식'으로 자리잡았지만, 실상 뒷꿈치부터 내딛는 방식은 관절과 인대의 부상을 불러오는 가장 큰 주범이라는 것이다. (스콧 주렉 '호모 러너스'에서).

마라톤계의 다큐멘터리 무협지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본 투 런(Born to Run)'은 첨단 마라톤 신발과 각종 훈련기법으로 무장한 '프로'들을 비참하게 만든 멕시코 타라우마라족의 이야기이다. 미국 서부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열리는 150킬로미터 '리드빌 트레일' 울트라 마라톤대회에 샌들 신고, 망또 걸치고 홀연히 나타나 세계 챔피언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총총히 사라진 타라우마라 족 러너들.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 치와와 주에 흩어져 사는 타라우마라 족은 케냐 칼렌진에 버금가는 신비한 '달리기 종족'이다. 이들을 부르는 타라우마라어 이름 '라라무리'의 뜻 자체가 '달리는 사람들'이다. 타이어 조각을 이어 만든 샌들로, 최소한의 발바닥 보호만 하면서 거의 맨발처럼 뛰어 100킬로미터 전세계 선수권대회를 휩쓴 타라우마라족이야 말로 맨발, 혹은 쿠션이 없는 최소한의 신발을 신고 달리는 맨발달리기의 효용성을 보여준다는게 '맨발 학계'의 주장이다.

하기야 서양인들의 동양(페르시아)공포증을 처음으로 씻어준 BC 490년 마라톤 전투의 전령 필리피데스도 샌들을 신고 뛰었다. 필리피데스(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는 하루에도 100~200킬로미터씩을 예사로 뛰어야 했던 전령(day-runner)이었다. 아테네연합군의 승전보를 알리러 마라톤 평원으로부터 42.195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오기 전에도 스파르타에 출병을 요청하러 240킬로미터를 왕복했던 초인이었다. 그런 필리피데스도 맨발이나 다름없었다.(마라톤 전투 상황과 필리피데스의 역할에 대해선 니콜라스 세쿤다 '마라톤 BC 490')

맨발로 뛰건 운동화 신고 뛰건,
초반엔 '감속'이 안돼서, 후반엔 '가속'이 안돼서 문제인 건 인생이나 마라톤이 비슷하다. 마구 들이대고 질주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젊은 시절은 마라톤으로 치면 25~30킬로미터 정도까지 내달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흔히 하는 유머로 인생 3대 위험이 '초년급제, 중년상처, 노년빈곤' 이라는데, 달리기도 초반 화려한 질주만큼 치명적인 게 없다. 25킬로미터, 30킬로미터까지는 '이대로 가다보면 오늘 무슨 일 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아갈 듯 하다가도 거짓말처럼 30킬로미터가 지나면 힘이 쭉 빠지는게 대부분 마라토너들이다. 40대 후반 월급쟁이들 어깨가 축 내려가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회사에서 '급 비겁' 모드로 돌아서는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초반부에 에너지를 축적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온 주자는 속도가 줄지 않는다. 엘리트 선수들만이 아니라 초보자를 포함한 모든 러너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러닝 페이스는 ‘이븐 페이스(Even pace)’이다. "우리 몸의 에너지와 산소는 일정한 페이스로 달릴때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다."(초보자 입문서로는 이홍렬 '동네조깅에서 진짜 마라톤까지')

35킬로미터를 지나면 이젠 적어도 피니시 라인까지 갈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아 있는 마지막 힘으로 한번 질러봐야 하는 순간이다.
속도를 더 높여 정말 죽을 힘을 다한다. 달려서 미국을 횡단하는 등 초장거리 울트라러너로 유명한 딘 카르나제가 젊을 적 육상코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려야 하는 순간이다. “달리기를 마친뒤 기분이 좋다면 최선을 다한게 아니다. 지옥처럼 고통스러워야 한다(If it felt good, you didn't push hard enough. It suppose to hurt like hell” -'울트라 마라톤 맨'에서) 골인했는데 힘이 남아 있으면 얼마나 허탈한가.

대부분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끝마치는게 우리 인생이다. 어디서 질러야 할지 알지도 못하고, 질러야 할지 판단도 미루다가, 언제부터인지는 지를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문이 가슴에 와 닿는거다.

38킬로미터.
수서역 지나 탄천1교로 올라채는 오르막은 마지막 고비다. 표고 20미터 정도 올라가는 언덕에 불과하지만, 보스턴 마라톤 코스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 오르는 다리가 이만큼 무거울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뉴욕마라톤 뛸 때마다 장벽처럼 주자의 앞길을 가로막고 마지막까지 남겨놓았던 기력을 무자비하게 앗아간다는 센트럴파크 언덕길이 이같을까. 하루키의 말대로 다리의 근육은 이때부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러너 무라카미의 경험담은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3일 열린 중앙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점인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고 있는 5시간대 이후 주자들. 남들보다 1~2시간을 더 뛰어야 했던만큼 이들이 겪은 '고통'도 더 크다.
3일 열린 중앙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점인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고 있는 5시간대 이후 주자들. 남들보다 1~2시간을 더 뛰어야 했던만큼 이들이 겪은 '고통'도 더 크다.

드디어 잠실운동장 메인 스타디움.
가장의 눈물겨운 완주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대부분 첫번째 완주일 가능성이 크다. 두세번 계속되면, 그 다음엔 마라톤을 나갔는지 조깅하고 오는지 관심 밖이다.)과 친지 동호회원들의 박수, 그리고 사회자의 마지막 격려 방송을 들으며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손기정이다.
마라톤이건 인생이건 처음 출발할 때보다 골인지점에 찾아 주는 사람이 훨씬 사람이 많다. 태어나는 날은 병원에서 부모와 눈 마주치는 걸로 의식을 마치지만, 장례식장에는 사돈팔촌에 직장 동창 다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마라톤 골인했다고 봉투에 돈 넣어주는 사람은 없지만).

3시간 48분.
신발 하나 공짜로 받아보자고 3킬로그램 살을 뺀 효과인지, 이븐 페이스(even pace)로 달렸다.
무게 1킬로그램마다 풀코스 기록 3분이 줄어든다는게 정설이다. 그렇다. 가볍게 비워야 멀리 빨리 갈 수 있는 거다. 40~41킬로미터 구간 랩 타임이 가장 빨랐으니, 적어도 기진맥진하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골인 지점의 스퍼트로 마무리한 레이스는 정말 즐겁다.

42.195킬로미터 달리기를 책한권 분량으로 풀어낸 대단한 '썰(說)꾼' 마크 롤랜즈의 비유에 따르면 달리는 동안 러너의 사유는 '스피노자-흄-데카르트-싸르트르'를 거친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은 결합체로 움직이는 스피노자기(期),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데카르트기, 사유가 육신을 벗어나 춤추는 단계 흄기, 의식이 아예 텅 비는 싸르트르기...(마크 롤랜즈 '철학자가 달린다')

이런 거창한 언어의 유희까지는 아니더라도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온전히 자신의 육신에 귀기울이는 흔치 않는 기회가 주는 정화효과,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근육의 파르르한 진동은 고통을 참아낸 사람들에게 약속된 정직한 마조히즘이다.

러너들의 참았던 말문은 스타디움 주변을 거대한 잔치마당으로 만든다. 동호회 회원들끼리 둘러앉아 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치면서 "다음엔 서브-3 할 수 있을 거같아" "선수 할 일 있나, 다음에도 살살 구경하면서 뛰자구" "다음엔 내가 이넘의 짓을 하나 봐라" 침들이 튄다.

'다.음.에'...그건 마라톤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마라톤의 30킬로지점은 '조금만 더 버티면 끝난다'는 희망이 몸을 지탱해준다.
하지만 인생의 30킬로 지점을 지나는 '4말5초(40대말 50대초반)'는 '이러다 그냥 끝나 버리겠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인생은 다시 뛸 수 있는 마라톤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엔..." 대회가 끝난뒤 동호회원들과 '애프터'를 하고 있는 러너들.
"다음엔..." 대회가 끝난뒤 동호회원들과 '애프터'를 하고 있는 러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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