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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홀린 오지 숲길

[웰빙에세이]올해의 아름다운 길 5選··· 집다리길, 해령길, 만령길, 화악령길, 물안길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3.11.18 11:40|조회 : 1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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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추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나무는 이제 몸을 싹 비웠습니다. 화창한 봄날에는 꽃눈을 맞았는데 어느 새 해가 기울고 있습니다. 낙엽비도 다 내렸으니 곧 첫눈이 오겠지요.

올해도 많이 걸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나만의 산책길 네 곳을 만들었습니다. 제 인터넷 필명에서 한 자씩 이름을 따서 강길, 산길, 들길, 꽃길입니다. 올해도 이 길을 즐겨 걸었습니다. 이 길은 매일 걸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이곳에 핀 꽃은 하루도 같지 않습니다. 이곳을 흐르는 물도, 이곳에 서있는 산도, 이곳에 펼쳐진 들도 매일매일 색깔과 모습과 향기를 바꿉니다. 강길, 산길, 들길, 꽃길은 언제나 새 길입니다.

다른 길도 틈틈이 찾아 걸었습니다. 그중 각별히 나를 홀렸던 길을 꼽으라면 다섯 곳입니다. 나는 편안한 숲길이 좋습니다. 산으로 치면 등산로보다 임도가 좋습니다. 느긋하게 산허리를 감고 도는 숲길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길섶에 핀 야생화를 만나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놀고, 스치는 바람결을 즐기다가 앞자락이 탁 트이는 마루턱에 서면 가슴도 활짝 열립니다. 나는 눈을 감고 세상의 기운을 흠뻑 받아들입니다. 천지와 하나가 되어 걸림 없는 자유가 됩니다.

올해 나를 사로잡은 다섯 곳은 이런 길입니다. 이 길에도 나만의 이름을 붙여야겠습니다. 집다리길, 해령길, 만령길, 화악령길, 물안길! 이제 이 길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과 같이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이 길 또한 나 혼자 걷기 아깝습니다.

먼저 집다리길. 화악산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하는 임도입니다. 길은 화악산을 빙 두르며 몇 갈래로 나눠집니다. 화악산 둘레길이라 할 만 합니다. 긴 코스는 15km를 넘어 대여섯 시간 걸립니다. 너무 길면 지암삼거리나 조개골삼거리 쯤에서 끊어 되돌아오면 됩니다.

집다리길 자작나무숲
집다리길 자작나무숲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해 찾아든 이 길에 나는 홀딱 반했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푸른 산수국이 꿈결 같았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짙은 숲길! 꽃과 나무, 물과 바위, 빛과 그늘이 어울려 춤추는 길! 지암삼거리 쪽으로 가는 길에는 환상적인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자작나무 5만 그루를 심어 가꾼 숲입니다. 햇살이 비치면 이 숲에도 정령이 깃들어 환한 빛을 냅니다. 나는 신비로운 기운에 숙연해집니다. 가을 단풍도 빼어납니다. 울긋불긋한 단풍 터널과 흩날리는 낙엽과 눈부신 햇살에 취해 종일토록 걸을 수 있습니다.

집다리길 늦가을
집다리길 늦가을
다음은 해령길. 해산령에서 비수구미(秘水九美) 마을로 내려가는 깊은 계곡길입니다. 해산터널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 옆으로 길 입구가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6km를 편안하게 내려갑니다. 크고 맑은 계곡이 걷는 내내 함께 합니다. 1194m 해산은 우람합니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합니다. 정말 그랬을 것 같습니다.

평화의 댐 근처인 비수구미 마을은 파로호 깊숙한 곳의 오지입니다. '秘水九美'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입니다. 비수구미 가는 길이 바로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숲의 나라, 물의 나라입니다. 비수구미 마을은 오래전 화천댐과 파로호가 생기면서 길이 막혀 오지 중의 오지가 됐습니다. 지금은 파로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게 가장 편합니다. 아니면 평화의 댐 근처에서 비포장길로 빠져 나와 주차한 다음 20여분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파로호를 마주한 이 길도 아찔하게 아름답습니다. 앞의 두 가지 방법이 아니면 해산 자락을 타고 넘거나 저처럼 해산령에서 걸어 내려와야 합니다.

해령길 비수구미 계곡
해령길 비수구미 계곡
얼마 전 조카와 함께 만추의 이 길을 걸었습니다. 단풍은 기울고 낙엽이 흩날렸습니다. 햇살이 드는 쪽은 철없는 진달래가 피어 봄날 같고 그늘 진 곳은 눈서리와 살얼음이 끼어 한겨울 같았습니다. 봄과 가을과 겨울이 섞인 이 길은 지금도 좋지만 녹음 우거지고 물 넘치는 여름에 꼭 와야 할 길이었습니다.

다음은 만령길. 만산령 꼭대기 근처에 있는 임도입니다. 973m 만산을 넘어가는 만산령은 긴 고갯길입니다. 청명한 초가을 오후, 만산령 끝자락에 멋진 장승공원이 있다기에 구운리 만산동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올랐습니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그런데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산 높고, 계곡 깊고, 고개 깁니다. 산천어밸리 지나고, 풍차펜션 지나고, 비례바위 지나고…. 두 시간 가까이 걸어 그 곳에 이르렀습니다. 별난 장승들이 줄지어 환영하는 곳! 6년 전 조각하는 분과 부인이 터를 잡고 만든 그 곳은 만산령 꼭대기의 천국이었습니다.

만령길
만령길
만산동 맑은 계곡은 이곳에서 두 줄기 개울을 만나 본격적으로 아래로 펼쳐집니다. 조각하는 주인장은 이곳에 음기가 강하기 때문에 남근을 닮은 장승들을 도열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령길은 이 곳을 중심으로 4km 가량 빙 둘러 있습니다. 인적 드문 높은 곳에 자리한 하늘길입니다. 전망이 틔이고 하늘이 넓게 열려 눈이 시원합니다. 고요한 길에 새소리가 맑습니다. 나무들은 해를 향해 비스듬히 몸을 세웠습니다. 깎아낸 암벽과 바위들도 사선으로 시루떡 같은 지층을 이뤄 인상적입니다. 해령길이 여름길이라면 만령길은 겨울길입니다. 한 겨울 눈 쌓인 이 길을 걸으며 시린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도 순백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겨울에 이 길을 꼭 걸을 것입니다.

다음은 화악령길. 화악산 삼일계곡 끝에 있는 임도입니다. 1468m 화악산은 중후하고 수려합니다. 화천쪽 삼일계곡을 굽이굽이 오르다보면 산마루에 가평쪽으로 넘어가는 화악터널이 있습니다. 이 터널 앞 약수터에서 오른쪽으로 난 숲길이 화악령길입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공군부대와 포병부대에 이르는 옛길인데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이 길로 화악산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화악령길
화악령길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습니다. 단풍이 시작된 그 길에 가을꽃들이 피어 아름다웠습니다. 배초향 꽃향유 구절초 까실쑥부쟁이 벌개미취 왕고들빼기꽃 미역취 산국…. 그 사이사이에 금강초롱 각시투구꽃 동자꽃 용담 이질풀 같은 보기 드문 야생화들이 얼굴을 내밉니다. 나는 깊은 산속에 숨은 야생화 꽃길에 홀려 행복하게 걸었습니다.

이 길 입구에 있는 약수터는 물맛이 정말 산뜻합니다. 서울 정릉에 사신다는 나이 지긋한 부부는 20여 년간 이 물만 담아 마신다고 했습니다. 물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해 그늘진 곳에만 두면 두 달이 되도 그대로라고 합니다. 이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가평 쪽으로 터널을 건너면 망망대해처럼 시야가 트여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먼 하늘에 산들이 굽이치며 달립니다. 1000m가 넘는 명지산과 연인산의 줄기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안길. 화천 서오지리 곁인 춘천 신포리와 원평리 사이에 숨어 있는 물길입니다. 북한강을 은밀하고 깊숙하게 품어 안고 있습니다. 물과 숲과 길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이국적이기까지 해서 어떤 때는 스위스나 캐나다의 전원을 걷는 기분입니다. 절반은 포장된 길인데 지나는 차가 드물어 한적합니다. 마음이 번잡하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따라 번잡한 감정도 흘러갈 것입니다. 두둥실 떠가는 구름 따라 복잡한 생각도 떠갈 것입니다.

물안길
물안길
어디든 빨기 가기 위해 서둘러 걸으면 마음도 바빠집니다. 이런 걷기는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걷기 위해 걸으면서 걷는 것을 즐기면 그것은 일종의 명상입니다. 이런 걷기는 몸과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行禪이고, 순례일 것입니다. 나의 걷기는 어떤 것인지 오늘 산책길에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작은경제연구소에서는 덜 벌고,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상생의 '지속가능경제'를 실험합니다. 머리 덜 굴리고 마음 덜 쓰는 '평화경제', 몸 더 움직이고, 가슴 더 여는 '행복경제'를 실천합니다 - 강산들꽃(江/山/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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