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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虛舟, 그리고 '충청도 핫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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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虛舟, 그리고 '충청도 핫바지'

  • 뉴스1 제공
  • 2013.12.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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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봉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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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첫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은 혼란에 휩싸였다.

YS(김영삼 당시 대통령)계 의원들이 김종필(JP) 대표최고위원에 대해 2선 퇴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자당이란 노태우 정부 때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여소야대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 1월 보수대연합을 기치로 YS의 통일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쳐 탄생한 정당.

당내 혼란상황과 맞물리면서 JP 출신지역인 충청권에선 신당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JP는 '뜻밖의 행운'까지 잡게 됐다. 지방선거 판세를 일거에 뒤집게 될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신당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게됐던 것이다.

해프닝이란 김윤환(허주.虛舟) 당시 정무장관이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국상황과 관련해 나눴던 얘기가 와전돼버린 상황을 뜻한다.

김 장관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기자로부터 'JP 신당이 창당되면 TK(대구·경북) 정치인들도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대구·경북이 핫바지냐?"라는 식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대전 지역의 모 일간지 기자가 나중에 이 얘기를 전해듣는 과정에서 김 장관의 TK 핫바지 발언은 '충청도 핫바지' 발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신문은 '김 장관 충청도 핫바지 발언'이란 식의 제목아래 대서특필, 충청지역 민심에 불을 댕겼다.

허주는 파문이 일자 대전으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해명했고 해당 언론사도 정정보도문을 냈으나 파문은 확산되기만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자당을 탈당한 JP는 6월 지방선거를 석달 앞두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자유민주연합 창당대회를 열어 "우리가 핫바지유?"라며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특히 JP의 탈당이 '3당 합당에 이용당한 뒤 YS에 의해 팽(烹)당한 것'이란 여론까지 가세하면서 충청권 민심은 더욱 요동쳤다.

이같은 상황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정당인 자민련의 창당을 가능케 했던 셈이다.

지방선거는 자민련 돌풍으로 막을 내렸다.

자민련은 충청권 광역단체장 3명과 강원도지사까지 차지했다. 당시 전국 15개 광역단체장 선거결과 민자당 5, 민주당과 자민련 각 4, 무소속 2명이 당선됐다.

자민련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충남 15석 전부를 휩쓸었으며 대전에선 5석중 4석을 차지했다. 충청권에서 여당 성향이 가장 강했던 충북에선 11석 중 2석을 가져갔다.

JP, 虛舟, 그리고 '충청도 핫바지'





이듬해 총선에선 자민련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YS에 맞서 이런저런 이유로 탈당했던 박준규· 김복동· 유수호· 박철언 등 TK 정치인들이 합세했던 것이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경우 YS 집권초기 재산공개 파문에 휩쓸리면서 의장직 사퇴와 함께 탈당해버렸다.

3당 합당 당시 내각제개헌 합의 등의 문제로 YS에 맞섰던 박철언 전 의원은 YS가 출마했던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을 지원했었다.

자민련은 총선에서 지역구 총 253석중 41석(전국구 포함 50석)을 차지함으로써 신한국당 121, 새정치국민회의 66석에 이어 3당으로 부상했다.

신한국당이란 지방선거에 참패한 뒤 개명한 민자당이었으며 새정치국민회의는 정계복귀한 DJ(김대중)가 민주당내 자신의 세력을 흡수, 창당한 것이다.

자민련은 대전의 7개 의석을 모두 휩쓸었으며 충남의 13석중 12석을 차지했다. 충북에서도 8석중 3석을 가져갔다.

게다가 대구의 13개 선거구중 8곳에서도 이겼다. 이곳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2석을 얻었을 뿐이었다.

자민련은 경기, 강원, 경북에서도 당선자들을 배출했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TK 소외론으로 '반(反)YS정서'가 확산되고 있었는데 이는 '반 YS'란 측면에서 ‘충청도 핫바지'와 맥을 같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두차례 선거를 통해 '충청도 핫바지'는 '可恐(가공)'할 위력을 보였다.

JP, 虛舟, 그리고 '충청도 핫바지'





그러나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읍소했던 JP가 'TK 핫바지론'을 초래하기도 했다.

자민련이 JP와 김용환 수석부총재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 체제로 굳어지면서 당내 TK 인사들은 비주류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TK 핫바지론이 제기되는 등 양측간 갈등이 고조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이목은 자민련내 TK 측이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쏠리기 시작했으며 독자적인 정치행보를 지향한 'TK 플랜'이 추진되기도 했다.

"대구·경북이 핫바지냐"고 했던 허주의 발언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독자행보 움직임은 TK인사들에 대한 당직 배려 등 JP 측의 회유전략에 따라 '찻잔속의 태풍'처럼 힘을 잃어갔다.

게다가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 등 3당체제를 형성했던 당시 정치상황 역시 이들에겐 독자세력화 등으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기 쉽지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지방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이어 자민련은 대통령 선거에서 또 다시 주가를 한껏 끌어올리게 됐다.

JP는 1997년 대선에서 후보직을 사퇴하고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DJ와 후보단일화, 대선승리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회의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된 자민련은 총리직과 일부 각료직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DJ가 내각제개헌 약속을 파기한 것 등을 이유로 공동정부는 2년만에 붕괴됐고 자민련은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민련은 1999년을 시한으로 했던 내각제개헌 합의가 무산되자 2000년 초 공동정부 파기를 선언한 뒤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의석이 33석이나 줄어든 17석(전국구 5석 포함)에 그쳤다. 당시 총선때는 전체 의석수가 273석으로 이전보다 26석 줄어든 영향도 물론 있었다.

자민련은 15대 총선 때 전 의석을 석권했었던 대전에서 6석중 절반인 3석밖에 건지지 못했다. 충남에서도 11석중 6석, 충북에선 7석중 2석에 불과했다.

제 1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충남 예산 출신인 이회창 총재에 대한 충청권의 지지세가 확산된데다 4년전 총선에선 충청권을 자민련에 양보했던 새천년민주당(국민회의 후신)이 공동정부 붕괴에 따라 후보를 출마시킨 것 등이 작용했다.

자민련의 지역구 의석은 충청권 외에 경기지역 1석을 합쳐 12석에 불과했다.

게다가 앞서 총선에서 8석을 확보했던 대구에선 전멸해 버렸다. 이곳에서 확산되던 '반 DJ' 정서가 자민련으로까지 번진 데 따른 것이다.

급기야 2004년 총선에선 지역구 4석에 그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 비례대표(이때부터 전국구가 비례대표로 바뀜)를 한 석도 얻지못했다.

비례대표 후보 1번이었던 JP는 국내 최다선으로 기록될 '10선 의원'의 꿈을 접은채 정계를 떠나게 됐다.

JP가 퇴장한 이듬해 자민련은 당소속 심대평 충남지사가 탈당, 국민중심당을 창당하고 의원 3명도 잇따라 당을 떠나는 바람에 김학원 의원 한명만으로 연명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로 내몰렸다.

급기야 당 대표였던 김 의원도 2006년 3월 당을 해산하고 한나라당에 개별입당해버렸다.

충청도 핫바지론을 지렛대로 급부상했던 자민련이 창당 11년만에 공중분해돼버린 셈이다.

자민련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충청도 핫바지론은 그후에도 지속됐다. 정치적 '약발'은 예전같지 않았지만.

JP, 虛舟, 그리고 '충청도 핫바지'





특히 이명박 정부때인 2009년의 세종시 수정안 논란과정만 봐도 그렇다.

수정안 저지의 중심엔 충청권을 기반으로 창당됐던 자유선진당이 있었다.

선진당은 2007년 대선때 무소속 출마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축으로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 국민중심당 세력이 합세, 2008년 2월 창당된 것이다.

선진당은 창당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18석(비례대표 4석 포함)을 차지, 자민련에 이은 충청권 정당으로 부활하는 듯했다. 대전 6곳중 5곳과 충남 10곳중 8곳을 가져갔으며 충북에선 8곳중 1곳을 이겼다.

여세를 몰아 선진당은 2009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충청도 핫바지론을 다시 이슈화하며 지역민심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듬해 지방선거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광역단체장 중에선 충청권의 대전시장만 차지하는 데 그쳤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대전에선 5곳중 3곳, 충남에선 16곳중 7곳, 충북에선 12곳중 3곳에서만 이겼다.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중 충청 이외지역에선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12년 총선에선 충남에서만 3석을 얻는데 그쳐 비례대표를 포함, 5석에 불과한 군소정당으로 전락해버렸다.

이후 선진통일당으로 개명해 활로를 모색했으나 한계에 부딪히자 대선국면에서 한나라당과 합당함으로써 정치권에서 퇴장하게 됐다.

창당한 지 5년도 채 안된 때였다...

요즘 충청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회의원 의석수 증설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호남권에 비해 인구가 많음에도 국회의원 의석수는 적다며 늘려달라는 요구가 충청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잇따르고 있으며 헌법소원도 진행중인 것이다.

그러나 의석수 증설문제는 여야 모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어 해법찾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국회 선거구획정위가 열릴 경우 논란은 더욱 확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차기 지방선거를 6개월밖에 남겨두지 않고 있어 정치권은 충청권 여론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없는 처지이다.

핫바지론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충청권 정당은 없다.

때문에 이 지역 여론이 여, 야 어느쪽으로 쏠릴 것인지 주목되나 속단키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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