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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연준을 향한 순진한 환상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47>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3.12.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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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전인가 신문에 실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현직 의장들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적완화 축소가 최대 이슈로 부상한 시점이기도 했지만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박정태 칼럼]연준을 향한 순진한 환상

 벤 버냉키 현 의장과 앨런 그린스펀, 폴 볼커 전 의장이 나란히 있는 사진 아래로는 FRB 탄생 100주년(12월23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제서야 '아, 벌써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FRB가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는 1907년 금융위기였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금융시장의 패닉과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의 정책수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거대 금융규제기관의 출현을 경계한 은행자본가와 의회의 강력한 반대로 몇 차례나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결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의회의 크리스마스 휴회기를 틈타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출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설립된 FRB는 지금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이 됐다.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빛을 발해 이름 그대로 최후의 해결사로 나선다. 1년에 8번 정례회의를 열어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금리는 물론 주가와 환율, 성장률과 실업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FRB 의장의 기자회견이나 의회 청문회, 각종 연설 내용은 금융시장에 즉각 파급되고, 이들에게는 마법과 같은 명성이 뒤따른다. 가령 18년 넘게 의장으로 재임하며 미묘한 수사(修辭)와 모호한 화법으로 유명했던 그린스펀은 1990년대 미국경제의 활황기를 이끌었다며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내년 1월 퇴임하는 버냉키는 그린스펀과 달리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지만 천문학적인 시중자금 공급과 제로금리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FRB의 이런 막강한 영향력과 화려한 명성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불확실성의 시대'를 쓴 경제학자 존 케네스갤브레이스는 FRB의 주요 활동, 즉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위험을 차단하려는 정책들을 "우리 시대의 가장 명망 높은 사기이자 가장 우아한 현실도피"라고 갈파했다.

 실제로 FRB 설립 이후에도 경기침체는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인플레이션 역시 끈질기게 지속돼왔다. 1929년 주식시장 붕괴에 이어 1930년대 대공황이 진행되는 동안 FRB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고, 1970년대 오일쇼크와 물가앙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2000년에 터져버린 닷컴주 투기붐과 최근 금융위기의 발단이 된 모기지시장의 과열 역시 사전에 차단하기는커녕 오히려 거품이 커지도록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FRB는 늘 뒤늦게 처방에 나서고 그마저도 지나고 나면 부족했거나 과도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FRB가 경제를 잘 조율해나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의 바탕에는 순진한 환상이 깔려 있는데, 금리를 내리면 경기가 살아나고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안정되리라는 식의 생각이다.

 경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정책수단이 실물경제에 파급되기까지는 아주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재고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금리가 인하됐다고 갑자기 투자를 늘릴 기업은 없다. 하루아침에 소비가 늘지도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경제학자도 내일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오늘 현재 상황조차 저마다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유수의 경제연구소들이 내놓은 내년도 경기전망과 성장률 예측치를 한 번 보라. 전부 제 각각이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대부분 틀릴 것이다.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단할 수 없으면 처방하지도 못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덤벼드는 것은 무지한 오만일 뿐이다. 경제학은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FRB의 한계는 그런 점에서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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