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만 173兆…늪에 빠진 中 철강업 탈출구가 없다

경기둔화와 과잉생산으로 철강가격이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져 중국 철강업계가 생사기로에 서 있다.

"철강 1톤의 이윤이 고기볶음(炒肉) 한 접시보다 못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중국 최대 민영철강회사인 사강그룹의 선원룽 회장(69)은 철강업계가 직면한 전대미문의 위기를 호소했다.


면화공장 기계조립공으로 출발해 사강그룹을 세계 8위의 철강회사로 성장시켜 '철강황제'로 불리는 선 회장이지만 최악의 경영환경에는 손을 내저었다. "20년 전에 철강 1톤의 이윤은 2000위안 이상이었고 경쟁이 심해진 10년 전만 해도 1000위안이 넘었는데 지금은 고기볶음 한 그릇의 이윤에도 못 미친다"고 털어놓았다.

셔지우웬 화링철강그룹 부장은 언론인터뷰에서 "강철가격이 1994년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을 제외하고 이런 상황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2008년에는 1,2달 만에 상황이 호전됐지만 이번에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강철가격이 더 떨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철강산업은 오랫동안 중국의 자랑거리였다. 중국의 지난해 철강 생산량은 7억7904만 톤. 경기둔화로 한국과 미국 등 철강 선진국의 생산량이 4.4%, 2.0% 감소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7.5% 증가했다. 중국이 전 세계 철강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8.5%로 올라섰다. 나머지 모든 국가의 생산량을 합쳐야 비슷한 수준일 정도로 중국의 철강생산량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자랑이던 철강업은 어느 순간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연 10% 이상의 고속성장 엔진이 꺼지자 과도한 설비투자 후유증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먀오창싱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사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철강포럼에서 "지난해 중국 철강업계의 평균 자산부채율이 70%까지 상승했고, 총 부채액도 1조 위안(약 171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리우전쟝 중국철강협회 부회장도 "올해 1-2월 회원사 손실액이 28억 위안(약 4800억 원)에 달한다"며 "올 1분기가 아마도 중국 철강업계가 2000년대 들어 수익이 가장 적은 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대출을 갚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린 산시성 최대 민영철강기업인 하이신철강의 공장 내부 모습.

실제로 중국 철강기업들이 수요 부진에 따른 실적악화와 금융부채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산시성의 최대 민간 철강기업인 하이신철강이 지난달 만기도래한 은행대출을 갚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렸다. 하이신철강은 6개의 용광로가 정지됐고, 철광석 등 원자재 구매를 중단하는 등 사실상 공장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주거래은행인 공상은행이 채권상환을 촉구하고 있고,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만이 중국 철강업계가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하이신철강 사태를 현장 취재한 증권일보는 "하이신철강은 결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부실기업을 추려내 도태시킨 후에야 중국 철강업계가 비로소 정상궤도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셔지우웬 부장도 "대다수 국가들은 철강기업이 소수로 집중돼 있어 시장변화에 잘 적응하는데 중국은 몇 백 개의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정책시행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가 뒤늦게 철강을 조선, 태양광, 시멘트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과잉설비 업종으로 지정하고 올해 2700만 톤의 노후설비를 폐쇄키로 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달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가 철강 산업의 과잉생산에 대해 명확한 임무가 있다"고 말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