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매뉴얼 강박과 한국 매뉴얼 무시, 정반대 결과

1970년 남영호 침몰 319명 사망.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273명 사망. 2014년 세월호 침몰 수색중. 미숙한 '대리운항'과 안일한 '구조신고' 등이 빚은 대형참사가 20여년 주기로 반복됐다. 한국은 수차례 사고를 겪으면서도 '안전사고 매뉴얼'에는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해 한국해운조합은 서해 훼리호 사고 20주년을 맞아 해양사고의 경각심을 높히고 여객선 종사자와 이용객의 안전의식 강화하겠다며 '여객선 안전 동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은 전국 연안여객선 180척에 두루 배포됐다.

매뉴얼은 간단한 팸플릿이나 이해하기 쉬운 만화 등 형태로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고 때마다 이러한 '매뉴얼'은 종적을 감춘다. 애써 만든 매뉴얼을 '교육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해운조합이 만화 형태로 만든 안전 매뉴얼. 인재를 예방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자료=한국해운조합

'매뉴얼 강박증'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우 "융통성이 없다"는 냉소를 받을 정도로 매뉴얼을 신봉한다. 이러한 강박증은 대형 사고를 겪을 때마다 빛을 발휘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는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날 지진은 1960년 칠레 대지진(9.5)과 1964년 알래스카 지진(9.2),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9.1) 등에 이어 4번째로 강력한 규모로 기록됐다.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을 덮쳤고 도쿄 등 수도권 일대 건물은 무너졌다. 사망자와 실종자 2만여명. 참사였다.


놀라운 점은 재앙 앞에서도 침착한 일본인들의 모습이었다. 전세계에는 사고 피해자들이 차분하게 줄을 서고 요원의 안내에 따라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평소 자연 재해에 대비해 충분히 훈련받고 대응 매뉴얼을 숙지해 왔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매뉴얼 강박이 '책임'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당시 일본인들은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다는 이유로 헬리콥터를 이용한 생필품 투하를 허가하지 않을 정도로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피해 주민들은 민간 헬기를 통해 물건을 전달받을 정도로 '예외'는 없었다.

일본에서 매뉴얼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나온 노하우로 평가받는다. 잘 숙지한다면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믿을 만한' 서류가 매뉴얼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매뉴얼은 '귀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매뉴얼을 내팽게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형중 고려대 국방사이버대학 교수는 "항공기 조종사나 승무원의 경우 높은 수준의 숙련도가 요구돼 진입장벽이 높고 이는 책임의식으로 연결된다"며 "승객의 목숨을 도맡는 점에서 선박 항해사도 마찬가지지만 항공기와 비교하면 모든 수준이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장에게도 안전과 관련해 높은 수준의 '책임'을 묻는 한편 그에 따른 처우도 제공해 승객 안전성을 함께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